[사진 출처 = 연합뉴스] |
기업회생(법정관리) 절차를 밟고 있는 홈플러스가 납품사 결제 대금 등 상거래채권뿐만 아니라 일반인에게 판매한 자산유동화 전자단기사채(ABSTB) 등 금융채권까지 전액 변제하겠다고 밝혔다.
전날 홈플러스 대주주인 MBK파트너스의 김병주 회장이 소상공인 결제 대금 문제를 해소하고자 사재를 출연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금융채권 관련 비판 여론이 확산되자 긴급 진화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근본적인 ‘홈플러스 정상화’ 없이는 이 같은 조치도 당장의 비난을 모면하기 위한 미봉책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홈플러스는 17일 “증권사가 발행한 유동화증권 투자자들은 당사에 대한 직접적 채권자는 아니지만 그 변제에 대한 최종 책임은 당사에 있다”며 “해당 채권이 전액 변제되는 것을 목표로 관련 증권사들과 함께 회생절차에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상거래채권과 달리 금융채권은 법정관리 중에는 지급이 유예되지만, 정치권까지 ‘MBK 책임론’을 지적하자 자세를 낮춘 것이다.
홈플러스가 매달 수천억 원의 납품대금과 함께 6000억원에 육박하는 금융채권까지 갚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지난 1월 말 홈플러스의 순운전자본은 -8753억원이다. 순운전자본은 기업이 영업활동을 지속하는 데 필요한 자금으로, 기업의 단기 재무건전성을 나타내는 지표다. 유동자산에서 유동부채를 빼는 방식으로 산출한다. 순운전자본이 마이너스라는 것은 1년 안에 들어올 현금보다 나가야 할 돈이 더 많다는 뜻이다. 유통업체는 매일 현금이 회전하기 때문에 판매금 수취와 납품 대금 정산 시차에 따라 순운전자본이 마이너스를 보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홈플러스는 MBK가 인수한 뒤로도 매년 순운전자본이 -5000억원 안팎을 유지했다. 경쟁 업체인 이마트는 2023년말 기준 순운전자본이 2712억원이었다. 홈플러스가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협력업체들이 정산 시점을 앞당길 것을 요구하는 점을 감안하면 순운전자본은 더욱 빠듯해질 것으로 보인다.
순운전자본을 정상화하고 6000억원에 달하는 금융채권까지 갚으려면 홈플러스는 1조5000억원 안팎 자금을 수혈해야 한다. 이마저도 사측의 설명대로 매달 돌아오는 상거래채권이나 점포 임차료를 문제없이 상환한다는 가정에서다. 영업에 문제가 생기면 더 많은 자금이 필요해진다. 홈플러스가 영업력을 높이기 위해 점포 재단장 등 투자를 하거나 구조조정에 나서면서 퇴직금 등 추가 지출이 생기면 필요한 자금 규모는 더 커질 수 있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소상공인을 위해 사재를 투입하겠다면서 규모를 밝히지 않는 것은 국회나 소비자의 비난을 피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며 “김병주 MBK 회장이 사재 출연 규모를 밝히고, 홈플러스 영업 정상화를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제시해야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현금 확보가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자 홈플러스는 연일 세일 이벤트와 온라인 배송 확대에 사활을 걸고 있다. 홈플러스는 할인 행사인 ‘홈플런’ 열흘간(지난달 28일~이달 9일)의 온라인 ‘마트직송’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6% 증가했다. ‘즉시배송’ 매출도 두 자릿수 성장했다. 마트직송은 전국 홈플러스 매장의 상품을 고객 집앞까지 배송하는 서비스다. 즉시배송은 기업형 슈퍼마켓(SSM) 기반 1시간 이내 배달 서비스다.
온라인 부문이 홈플러스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를 넘어섰다. 지난해(2024년 3월~2025년 2월) 온라인 매출은 1조5000억원을 돌파했다. 전년 동기 대비 두 자릿수 이상 증가한 수치다.
온라인 매출은 특히 경쟁사 대비 현금 창출 능력이 크다. 홈플러스는 전국 매장에서 직접 고객에게 배송하는 방식을 쓴다. 이마트가 온라인 플랫폼인 SSG닷컴의 물류센터 ‘네오센터’를 운영하며 배송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같은 온라인 매출이라도 물류비용이 훨씬 적게 드는 셈이다.
홈플러스가 영업활동에 사활을 걸고 있는 또 다른 이유는 향후 매각도 염두에 둬야 하기 때문이다. 내부 자료에 따르면 MBK는 회생 절차가 안정화되면 기존에 추진하던 기업형 슈퍼마켓 사업부 매각을 진행하려는 것으로 파악된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지난해 6월께 매각 추진 발표 후 여러 기업과 협의를 진행해 왔다”며 “회생 절차가 개시돼 현 상황에서 매각 진행은 잠시 중단됐다”고 설명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