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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 깨진 EU ‘美없는 독자 안보’ 천명… 무기 의존은 딜레마 [디펜스 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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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안보 흔드는 ‘트럼프 리스크’
美·우크라 정상회담 외교 참사로 끝나
군사·정보지원 일시 중단 유럽에 충격
안보 의존 우려 커지며 논란에 불붙여
F-35 등 美 무기 도입도 재검토 움직임
EU, 유럽산 무기로 재무장 구상 밝혀
전투기·드론 등 ‘바이 유로피언’ 기조
일각선 핵심 기술 개발 등 한계 지적
독자적 역량 강화 속 대안 확보 숙제
‘트럼프 리스크’가 유럽 안보 체제를 강타하고 있다. 유럽 안보를 책임지려 하지 않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기조는 1949년 창립 이래 서방 안보를 지탱해온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결속력마저 흔들었다. 유럽 각국은 미국산 무기에 대한 의존을 낮추고자 군사력 강화를 추진 중이다. 하지만 다른 장비로 대체할 수 없는 미국산 무기의 특성, 독자적인 역량 강화에 필요한 시간과 비용 문제 등 풀어야 할 과제가 많다. 미국에 대한 안보 의존 문제를 놓고 유럽의 딜레마가 더욱 커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깨진 신뢰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전례 없는 ‘외교 참사’로 끝난 미국·우크라이나 정상회담과 미국의 우크라이나 군사·정보지원 일시 중단 조치는 유럽에 큰 충격을 안겼다. 우크라이나처럼 한순간에 모든 지원이 끊어질 가능성이 현실로 나타나자 미국에 유럽 안보를 의존하는 것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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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공군 소속 F-35A 스텔스 전투기가 활주로에서 이륙하고 있다. 네덜란드 국방부 제공


논쟁은 미국이 유럽에 판매한 F-35 스텔스 전투기를 원격으로 무력화하는 킬 스위치(kill switches)를 은밀히 보유하고 있는지로 번졌다. 킬 스위치가 있다면 덴마크가 그린란드 문제를 놓고 트럼프 행정부의 압박에 맞서고자 F-35를 동원해도 실효성이 의문시될 수밖에 없다. 논란이 확산하자 제작사인 록히드마틴과 유럽 각국이 진화에 나섰지만 한 번 깨진 신뢰가 회복될지는 미지수다. F-35 킬 스위치 논쟁이 불거진 배경에는 미국에 대한 안보 의존이 과도했다는 유럽 내 우려와 그에 따른 두려움이 깔려 있다.

유럽이 쓰는 F-35는 미국에서 운용하는 자체 시스템을 통해 지속적인 소프트웨어·데이터 파일 업데이트와 유지보수 지원을 받는다. 이를 통해 임무 계획과 유지보수 진단까지 관리한다. 미국이 엄격하게 통제하는 부품 및 지원 체계에 접근하지 못하면 F-35는 한순간 고철로 전락한다.

F-35 외에도 의구심이 제기되는 무기는 여러 가지다. 영국의 핵 억지력은 미국과 공동 관리하는 트라이던트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에 의존한다. 지금까진 큰 문제가 없었지만 ‘트럼프 리스크’가 불거진 현 상황에선 영국 핵전략의 취약점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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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공중 정보·정찰·감시능력은 미국 기술로 유지되고 있다. 나토 등에서 사용하던 미국산 E-3 공중조기경보통제기는 미국에서 만든 E-7으로 대체될 예정이다. 노르웨이와 독일은 P-8A 해상초계기를 도입했고, 영국은 RC-135V 신호정보수집기를 운용 중이다. 스페인과 프랑스, 영국 등은 MQ-9 리퍼 무인공격기를 구매했다.

과거에는 미국과의 안보협력을 신뢰했으므로 미국산 무기 도입에 거리낌이 없었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일탈’은 기존의 인식을 흔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 포르투갈은 트럼프 행정부의 정치적 불확실성을 이유로 F-35 도입을 재검토하겠다고 최근 밝혔다.

◆쉽지 않은 미국 의존도 낮추기

유럽도 ‘미국 없는 안보 홀로서기’에 대비하고 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9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8000억유로(약 1258조원) 규모의 유럽 재무장 계획을 발표했다. 재무장 계획은 유럽산 무기를 우선 구매하는 것이 핵심이다.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는 재무장을 통해 EU의 군사력과 방위산업을 강화하고 일자리도 늘리겠다는 구상이다.

‘바이 유로피언’ 기조는 일부 분야에서 드러나고 있다.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는 유럽산 아스터 함대공미사일 200기 이상을 구매할 예정이다. 프랑스는 라팔 전투기 30대, 프리깃함 3척, 드론과 전자전장비 등을 도입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 같은 기조가 뚜렷해지면서 유럽 방위산업은 상당한 성장세가 예상되고 있다. 이탈리아 방산업체 레오나르도의 로베르토 칭골라니 최고경영자(CEO)는 군사전문매체 브레이킹디펜스에 “이탈리아와 다른 EU 국가들이 국방비 지출을 1%만 늘려도 60억유로(9조5000억원)의 신규 사업을 창출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독일에선 자동차·철도산업 기반이 방위산업으로 옮겨가는 모습도 보인다. 독일 슈피겔 등에 따르면 폴크스바겐이 방위산업 참여를 검토하고 있으며, 자동차 부품 기업인 컨티넨탈과 보쉬의 일부 인력이 방산 기업인 헨솔트로 옮겨갈 조짐이다. 독일·프랑스 합작 방산업체인 KNDS는 독일 작센주 괴를리츠 소재 프랑스 열차 업체 알스톰 기차 공장을 인수, 전차와 장갑차 부품 등을 생산할 예정이다.

일각에선 ‘바이 유러피안’에도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유럽은 예전부터 F-35 같은 5세대 스텔스기 대신 6세대 전투기 개발에 역량을 집중해 왔다. 하지만 유럽의 6세대 전투기 프로그램이 성과를 거두려면 앞으로 10여년이 더 필요하다. F-35를 외면하기가 쉽지 않은 이유다. 경항공모함에 탑재할 수직이착륙 전투기는 세계에서 미국산 F-35B가 유일하며, 운용을 위해선 제작사인 록히드마틴과 미 해병대의 지원이 필수다. 나토의 전술핵공유 플랫폼도 F-35A다. P-8A를 대체할 대형 해상초계기, 하이마스(HIMARS·고기동성 포병 로켓 시스템)와 유사한 다연장로켓 체계도 유럽산 장비 중에는 없다.

핵우산도 유사한 문제를 안고 있다. 프랑스가 라팔·미라지 전투기를 활용한 핵우산을 제안하고 있으나, 동유럽을 위해 프랑스 핵무기를 기꺼이 사용할 것인지에 대한 신뢰 문제와 더불어 F-35의 스텔스·정보융합 성능을 따라잡기 어렵다는 지적을 받는다. 독자적인 역량 강화를 외치지만, 빠른 대안 확보가 쉽지 않은 유럽으로선 미국에 대한 의구심과 신속한 군비증강의 필요성 사이에서 고심할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저스틴 브롱크 영국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 선임연구원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엑스(옛 트위터)에 “신뢰할 수 있는 플랜 B를 만드는 데 10년의 시간과 막대한 투자가 필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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