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재생 에너지에 대한 지원을 줄이고 원유, 천연가스 등 전통 에너지 산업의 부흥을 다시 꾀하고 있다.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와는 상반된 모습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20일(현지 시각) 바이든 행정부의 친환경 정책을 변경·취소하는 ‘미국 에너지 해방(Unleashing American Energy)’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후 ‘국가 에너지 비상사태’(national energy emergency)를 선언하고 전력 공급을 늘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미래 먹거리인 인공지능(AI·Artificial Intelligence) 산업을 키우려면 막대한 전력이 24시간 끊임없이 공급돼야 하는데, 재생 에너지는 안정적인 관리가 어렵다는 점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씨에스윈드 홈페이지 캡처 |
미국은 풍력 시장에 지급하던 보조금을 전량 폐지하고, 전기차 보급 확대 정책도 철회하기로 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에너지 종류는 원유, 천연가스, 석탄, 우라늄 등 11가지라고 정의했다. 태양광, 풍력 등은 빠졌다. 재생 에너지는 미국 정부가 인정하는 에너지로 보지 않겠다는 의미다.
미국이 중국과 패권을 잡기 위해 경쟁하는 인공지능(AI·Artificial Intelligence) 산업은 365일, 24시간 안정적인 전력이 필요하다. 딥러닝 모델과 같은 복잡한 알고리즘을 다루려면 GPU와 같은 고성능 하드웨어가 작동해야 하는데, 전력이 끊기면 처리 속도가 느려지거나 데이터가 손상된다. 실시간 데이터 처리, 클라우드 서비스, 보안, 백업 시스템 문제로도 이어진다. AI 반도체의 경우 전력은 품질과 직결된다.
재생 에너지 발전설비는 날씨 영향을 많이 받아 간헐성과 불확실성이 크다. 전력이 과잉 생산되거나 공급이 중단될 우려도 있다. 석탄화력, 원자력은 이용률이 80% 이상이지만, 태양광은 가동 시간이 들쭉날쭉해 이용률이 15%대에 불과하다.
남은 전력을 에너지저장장치(ESS·Energy Storage System)에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송전하는 방식이 있지만, 근본적인 해법은 될 수 없다. 정용훈 한국과학기술원(KAIST)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교수는 “ESS에 남는 전력을 저장했다 비수기에 사용하면 된다고 말하는데, 비용과 양을 고려하면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 재생 에너지 간헐성 문제를 ESS로 극복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일러스트=챗GPT 달리3 |
트럼프 대통령이 재생 에너지 지원을 줄이려는 배경에는 노후 전력망 문제도 있다. 재생 에너지는 소규모 분산 형태로 지어지고, 가동률이 낮아 원전·석탄보다 더 많은 송전망이 필요하다. 미국 전역에 깔린 전력망 시설은 대부분 1960년대에서 1970년대에 걸쳐 구축됐다. 전체 송전망의 70%는 교체 시기에 진입한 것으로 보고 있다. 노후화된 전선은 고압전력을 운송할 때 에너지 손실이 크고, 날씨 변화에 취약해 손상 시 대규모 정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
지난해 8월 미국 에너지부(DOE·Department of Energy)가 발표한 ‘인공지능과 데이터센터 인프라의 전력 공급에 대한 권장 사항’ 보고서에는 전력 공급의 유연함을 강조하고 있다. 전력 산업의 급격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선 발전, 송배전, 배전 등 유연한 접근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AI 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선 전기가 필요할 때 더 생산하고, 덜 필요할 때 덜 쓰는 게 가능해야 한다. DOE 보고서는 재생 에너지는 AI 데이터센터에 쓸 수 없다고 선언한 것과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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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아 기자(inah@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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