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플러스가 신용등급 하락으로 인한 잠재적 자금이슈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서울회생법원에 기업회생절차 개시를 신청했다고 이달 4일 밝혔다 |
홈플러스가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에 들어선 건 사모펀드의 무리한 차입인수(LBOㆍ레버리지드 바이아웃) 부메랑 때문이다. 국내 대표 사모펀드로 꼽히는 MBK파트너스는 지난 2015년 영국 테스코로부터 홈플러스 경영권을 7조2000억원에 인수했다.
통큰 베팅을 위해 선택한 게 LBO다. 아직 인수하지 않은 회사(피인수기업) 자산을 담보로 대출받아 인수자금으로 활용하는 방식다. 직접적인 인수 비용을 줄이고, 차입금에 대한 이자가 비용으로 산정돼 법인세를 낮출 수 있어 미국 등에서 자주 활용되는 인수합병(M&A) 방법이다. 단점은 고금리와 업황 악화로 ‘돈(이익) 벌어 이자를 못 갚으면’ 빚 상환을 떠안은 피인수기업의 재무상태가 악화할 수 있다.
김경진 기자 |
MBK가 홈플러스를 품에 안을 수 있었던 것도 LBO를 활용해 역사상 최고가인 7조2000억원을 베팅해서다. 인수자금 중 2조7000억원을 홈플러스 부동산을 담보로 대출받았다 여기에 기존 대출금 1조3000억원을 승계하면서, 금융권에서 빌린 돈만 인수액의 56%(4조원)에 이른다. 나머지 자금은 블라인드 펀드(2조5000억원)와 상환전환우선주 발행(7000억원)으로 채웠다. 무리한 차입매수에 당시 신용평가사들은 홈플러스의 신용등급을 줄줄이 하향(A1→A2)했다. 한국기업평가는 2015년 11월 수시 평가에서 “대주주 변경 과정에서 인수자금의 상당 부분이 외부 차입 조달로 (홈플러스) 재무구조가 훼손되는 등의 불확실성이 존재한다”고 우려했다.
코로나 19 기점으로 쿠팡 등 이커머스 공세에도 마땅한 대책을 내놓지 못한 것도 LBO 영향이 크다. MBK는 당장 대규모 차입금과 이자를 갚기 위해 부동산 매각에 주력했기 때문이다. 특히 비효율적인 점포 대신 입지가 좋아 장사가 잘되는 안산점, 대구점, 대전두산점 등 알짜 매장(부동산)을 줄줄이 매각했다. 인수 시점인 2015년 142개였던 홈플러스 점포 수는 지난해 127개로 15곳 줄었다. 매각 대금은 빚 갚는 데 사용하고, 마트 경쟁력은 떨어지면서 재무구조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2021년 영업적자를 낸 후 3년간 5931억원의 누적적자를 기록했다.
복잡한 채무구조가 숨겨져 있다는 점도 문제다. MBK가 일부 매장은 매각 후 다시 재임차(세일즈앤리스백)하는 방식을 택했다. 매각 자금으로 인수 차입금을 갚아나가는 동시에 매장 영업으로 번 돈으로 대출 이자를 갚을 수 있어서다. 하나증권에 따르면 홈플러스 점포 임차료(리스) 부채는 지난해 2월 결산 기준으로 3조8501억원에 달한다.
김상만 하나증권 연구원은 “매각 후 재임차 형식으로 일부 채무 형식은 일반차입금에서 리스 부채로 바뀌었다”며 “매각된 점포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부동산 펀드가 조성되면서 채무를 둘러싼 이해관계자 구성은 더 복잡해졌다”고 말했다.
홈플러스 매장을 자산으로 편입한 리츠(부동산투자회사)와 부동산 펀드서도 대규모 개인 투자자 피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 이런 유형의 부동산 펀드는 홈플러스로부터 임대료를 받아 투자자에게 배당하기 때문이다. 홈플러스가 임대료를 밀리기 시작하면 투자자의 손실이 커질 수 있다. 정부는 홈플러스 매장을 기초 자산으로 편입한 부동산 펀드(리츠 포함) 규모를 1조원 수준으로 예상한다. 뿐만 아니라 개인 투자자에게 팔린 홈플러스 단기채권 규모는 2000억원대다. 강민국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 3일 기준 홈플러스 어음(CP)ㆍ단기사채 등 단기채권 판매 잔액(5049억원) 가운데 증권사에서 개인에게 2075억원이 팔린 것으로 파악됐다.
김경진 기자 |
최근 해외에서도 피인수기업의 자산을 담보로 인수자금을 조달하는 LBO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진다. 일본은행(BOJ)은 지난해 5월 ‘LBO 금융 동향 및 리스크 관리’ 보고서에서 ”M&A 시장에서 LBO가 인수자금 조달수단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며 “수익성이 높지만, 금리변동에 따른 리스크가 크다”고 강조했다.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의 박주근 대표는 “기업의 장기적 성장보다 단기적 수익 회수에 집중하는 사모펀드 특성상 LBO는 피인수기업의 재무 상태를 훼손할 수 있다”며 “적어도 인수자금의 50% 이상을 차입하는 M&A는 규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금융당국도 이번 홈플러스 사태를 계기로 대형 사모펀드 점검에 나서는 분위기다. 17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감원은 최근 운용자산 규모 상위 30개 대형 사모펀드에 펀드 관련 내역 등을 제출하도록 했다. 업계에선 금융당국이 사모펀드에 대한 내부통제 현황을 파악하는 사전작업을 시작으로 점검에 나설 것으로 예상했다.
염지현 기자 yjh@joongang.co.kr
▶ 중앙일보 / '페이스북' 친구추가
▶ 넌 뉴스를 찾아봐? 난 뉴스가 찾아와!
ⓒ중앙일보(https://www.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