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6일 전용기에서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연방 정부 구조 조정에 속도를 내는 가운데 예산 삭감의 여파가 한국 안팎의 북한 인권 운동으로 확산하고 있다. 트럼프가 정부 부채 감축을 명분으로 각종 보조금을 줄이자 그동안 국내외 대북 인권 단체에 연간 약 1000만달러(약 145억원)를 지원해 온 국무부 민주주의·인권·노동국(DRL), 민주주의진흥재단(NED) 등의 관련 예산이 삭감됐다. 미 정부 지원을 받아 북한 인권의 실상을 알리는 동시에 북한 주민에게 자유 민주주의를 알려온 미국의 소리(VOA)와 자유아시아방송(RFA)은 15일부터 한국어를 포함한 신규 프로그램 송출이 중단됐다. 현장에선 “국내외 북한 인권 운동이 고사 위기에 놓였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그래픽=이철원 |
1983년 의회가 ‘전 세계 민주주의 확산’을 명분으로 만든 NED는 연 500만달러에 달하던 북한 인권 예산 집행이 사실상 중단됐다. 트럼프 정부 출범 후 하원 ‘코리아 코커스(caucus·의원 모임)’ 의장을 지낸 미 정가의 지한파(知韓派) 정치인인 피터 로스컴 전 의원이 이사장에 취임했지만, 정부효율부(DOGE) 수장인 일론 머스크가 최근 “(예산을 낭비해) 사악하며 해체돼야 한다”고 지목해 예산이 삭감됐다. NED는 한때 100국 이상, 2000개가 넘는 비영리 단체에 보조금을 지급했다. 2014년 9월 설립해 ‘전환기 정의(독재 이후 책임 규명)’를 위해 북한 인권 범죄 기록을 수집·관리하는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이 NED의 지원을 바탕으로 왕성한 활동을 벌인 대표적인 조직이다. 문재인 정부(2017~2022년) 당시 통일부가 북한과의 관계를 의식해 대북 인권 단체를 사무 감사 등으로 압박할 때 NED가 주는 지원금이 여러 단체에 ‘동아줄’ 역할을 하기도 했다.
NED는 차세대 탈북민 지도자 양성에도 적잖은 기여를 했다. 탈북민 출신인 지성호 전 국민의힘 의원은 대북 인권 단체 ‘나우(NAUH)’ 대표로 있으면서 NED 지원을 받았다. 이를 발판으로 그의 이야기가 워싱턴 DC 정가에 알려져 트럼프 1기(2017~2021년) 때인 2018년 의회 국정연설(SOTU)에도 초청됐다. 서울의 한 대북 인권 단체 대표는 “북한 인권 분야는 미 정부 자금 지원에 대한 의존도가 크다. (트럼프 정부의 예산 삭감으로) 당분간은 국내외 활동에 상당한 제약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미 일부 단체에선 무급 휴직이 시작된 가운데 자금 압박에 직면한 영세 단체들이 줄줄이 문 닫을 우려도 제기된다. 한국 정부의 올해 대북 인권 단체 지원 예산은 29억6000만원이다. 지난해에 비해 61.7% 증가했지만, 그간 미 정부가 지원한 규모와 비교하면 약 5분의 1에 그친다.
트럼프가 VOA·RFA의 기능·인력 최소화를 지시한 지난 14일 행정명령의 구조 조정 대상 명단엔 1968년 미 의회가 설립한 정책 연구소인 ‘우드로 윌슨 센터’도 포함됐다. 워싱턴 DC에서 한국 사정에 밝고 한반도 문제 연구 역량이 강한 몇 안 되는 연구소 중 하나다. 대미 공공 외교 필요성이 대두된 2000년대 초반부터 한국국제교류재단(KF)이 적잖은 예산을 들여 지한파 육성을 위한 전초 기지로 삼았다. 2015년엔 KF와 현대차가 300만달러를 후원해 만든 ‘한국역사 및 공공정책 연구센터’도 운영되고 있다. 그간 여러 한반도 전문가들이 근무하며 한국 문제를 연구하고 이를 공론화하기 위한 행사를 열었는데, 트럼프의 구조 조정 지시로 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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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김은중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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