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사 주지 덕문 스님 |
(구례=연합뉴스) 장아름 기자 = "매화는 저렇게 옹색한 곳에서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첫 봄꽃을 피워내죠. 우리 사회도 결국 꽃을 피우고 봄을 맞지 않겠어요?"
봄의 시작을 알리는 매화가 예년보다 다소 늦게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지리산의 천년고찰 구례 화엄사에 300년 넘게 뿌리 내린 홍매화와 들매화도 꽃망울을 틔웠다.
다음은 덕문 스님과의 일문일답.
-- 매년 3월 화엄사 홍매화·들매화 사진 콘테스트를 열게 된 취지는.
▲ 2020년 봄, 근래 10년 사이 홍매화가 가장 예쁘게 피었는데 코로나19 확산으로 방문객이 거의 없어 나만 보는 호사를 누렸다. 도심에서 마스크를 쓴 채 집단 우울증에 걸린 것처럼 다니던 사람들의 모습이 함께 떠올랐다. 산사에 와서 우울한 마음을 달랬으면 하고 이듬해부터 행사를 하게 됐다. 그냥은 안 올 것 같아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으면 상품을 주겠다고 했는데 전문 사진작가들까지 몰렸다. 올해는 화엄사 들매화에 이어 홍매화까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후 치르는 행사고 제가 주지로서의 소임을 마무리하는 해이기도 해 더 의미가 깊다.
지난해 3월 말 화엄사에 홍매화가 만개한 모습 |
-- 2017년 주지 취임 후 산문 야간 개방, 비건 버거와 굿즈 출시 등 파격적인 대중 행보를 보였는데.
▲ 산사의 여름밤, 눈 오는 겨울 새벽이 너무 좋은데 왜 나만 누리고 사나 싶은 생각이 컸다. 스님은 관리자일 뿐, 사찰에 오는 모든 분이 주인이다. 동국대 이사로 활동하고 필리핀 어린이 구호단체를 운영하면서 난치병을 겪는 어린이를 많이 봤다. 건강과 생명 존중을 위해 현대인들이 즐겨 먹는 음식에서 비건을 추구하고 우리 농산물이나 전통 상품이 잘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각 사찰의 특색 있는 상품을 만들어 젊은이들과도 가까워지고 싶었다. 작은 업체가 우리 농수산물로 상품을 만들어 수익금의 일부를 화엄사에 기부하면 지역과 아픈 어린이를 돕는 일에 사용하고 있다.
-- 화엄사는 음악제, 요가 축제, 모기장 영화음악회 등 다채로운 문화 행사를 선보이고 있다. 사찰이 대중에게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보는가.
▲ 대중이 언제든 사찰에 와서 세상에서 못 가져본 시간을 가지며 쉬어가고 마음을 귀의할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지역민들과도 간격을 좁히고 가장 많은 위로와 도움을 받도록 하고 싶었다. 우선 특색이 있고 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요가 축제의 경우 경건한 산사에서 다리를 쭉 늘리며 수련한 게 일견 경망스러워 보일지 몰라도 요가는 스님들이 가장 많이 하는 운동이자 수련과 맞닿아 있다. 자연과 전통이 어우러진 공간에서 요가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굉장히 조화로웠고 사람들을 웃음 짓게 한다. 세상사도 그렇다. 사람들이 진보·보수로 나뉘어 싸우는데 조화로움, 서로의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틀린 게 아님을 알려주고 싶었다.
-- 우리 불교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 종교가 세상을 걱정하고 길잡이 역할을 해야지, 세상이 종교를 걱정하면 안 된다. 우리가 전통을 고집하기보다는 전통을 잘 지키되 세상 사람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더 다가갔을 때 세상이 좀 더 나아지지 않겠나 싶다. 국민에게 좀 더 신뢰받고 친해지고 싶고 국민이 언제든 찾아와 한 박자 쉬어가고 자기를 돌아보며 정돈할 수 있는 공간이 됐으면 좋겠다.
화엄사 주지 덕문 스님 |
-- 12·3 비상계엄 선포와 대통령 탄핵 심판으로 국민이 불안과 혼란을 느끼고 있다. 위로의 말씀을 해주신다면.
▲ 지난 대선에서 0.73%(포인트) 표 차이로 갈리고 여소야대 정국이 되면서 예견됐다고 본다. 국가에 대형 사고가 생기거나 국론이 분열되면 지도자가 책임을 지고 위로해야 하는데 몇 년 동안 누구도 책임지거나 위로하지 않았다. 옳고 그름을 떠나 지난 몇 년간 서로 불편하고 조화롭지 못했다. 하물며 계엄이라니. 저도 5·18 민주화운동을 겪은 세대로서 그럴 수가 있나 하며 걱정이 깊었다. 사법 절차상 어떤 결론이 나더라도 양 진영이 당연히 승복해야 한다. 빨리 결론이 나서 국민들이 안심하고 불확실성이 없어져야 한다. 누가 원인을 초래했느냐를 떠나 지도층이 국민을 바라보는 공심(公心)이 없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사람이 멀리 상대방을 보는 데만 집중하는데 내가 낭떠러지나 물 위에 있는 건은 아닌지 내 발밑, 나 자신을 잘 살펴야 한다. 내가 있는 자리에서 희망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면 곧 봄이 오지 않겠는가.
-- 괴로움과 번뇌를 줄이고 마음을 잘 다스리기 위해서는.
▲ 저는 밤에 눈을 감으면서 죽고 아침에 눈을 뜨면 다시 태어난다고 생각한다. 하루를 마치면서 내가 하루 동안 무엇을 했고 이건 너무 과했구나, 내가 너무 들떴구나 마음 되감기를 해본다. 생각을 정돈하면 오늘보다 내일이 훨씬 낫고 시간이 축적되면 긍정적인 마음을 갖고 남을 미워하거나 타박하지 않는다. 그렇게 다음 생에 가게 되면 불편하지 않게 태어날 것 같다. 그렇게 정돈하면서 살면 안 보이던 것도 보이게 되고 훨씬 밝고 넓게 살아갈 수 있어 추천해본다.
areu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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