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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 선생인 척 아이 데려가도 알 수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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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늘봄학교 후 마중 나온 학부모들


"엄마가 아직 안 오셨나 보다. 나가면 안 되니까 여기서 조금만 기다려보자."

지난 13일 오후 3시쯤 서울 영등포구의 한 초등학교 정문 앞에서 늘봄학교 강사가 차례로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더니 한 1학년 남학생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교문 밖에는 하교하는 아이들을 데리러 온 학부모와 학원 차들로 북적였습니다.

강사는 마중 나온 학부모와 인사하랴, 자꾸만 어디론가 사라지는 아이들을 인솔하랴 정신이 없어 보였습니다.

이튿날 오후 3시쯤 서울 양천구 한 초등학교 앞 늘봄학교 강사들도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습니다.

한 강사는 저 멀리 뛰어가는 아이가 누구에게 향하는지 실눈을 뜨고 쳐다봤고, 또 다른 강사는 아이를 옆에 낀 채 지각한 학부모에게 전화를 걸고 있었습니다.

늘봄학교 강사 및 실무자들이 초등학교 정문 앞으로 나와 학생들을 일일이 대면 인계하게 된 지 약 2주가 지났습니다.

늘봄학교 강사는 늘봄 과정을 운영하는 외부 강사이며, 늘봄실무사는 프로그램 편성·운영·행정업무 등을 위해 채용된 인력을 말합니다.

이들은 아이들의 하교 안전을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겁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늘봄학교 대면 인계 원칙은 교육부가 지난달 발생한 대전 초등학생 피살 사건 이후 내린 지침입니다.

초 1·2학년을 대상으로 한 늘봄학교는 방과후 수업과 돌봄교실을 통합한 개념으로, 지난해 12월 기준 전국 초등 1학년 83.4%가 참여하고 있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늘봄실무사 A 씨는 "저희 학교는 늘봄학교 대상 학생이 500명인데, 문제는 대면 인계 업무를 하는 사람이 저 혼자라는 점"이라고 밝혔습니다.

A 씨는 "우려대로 어제는 한 학생을 잃어버렸고 그 학생을 찾다가 다음 수업 종료 시간에 더 많은 학생을 잃어버렸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학부모 민원이 폭주하고 아무도 도와주지 않자 정신이 아득해지고 창밖으로 몸을 던지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고까지 토로했습니다.

대전에서 늘봄실무사로 근무하는 김 모(32) 씨도 "지난주에만 저희 학교는 아이 2명을 하교 시간에 잃어버려서 학부모 민원이 들어왔다"며 "하교를 도와주는 자원봉사자가 6명이나 있는데도 일일이 대면 인계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고 했습니다.

서울에서 늘봄학교 강사로 일하는 최 모(43) 씨는 "아이들이 많다 보니 아이를 데려간 사람이 실제 학원 선생님인지, 학부모인지 일일이 확인하기 어렵다"며 "무늬만 '안전 귀가'라며 지침을 하달하고, 업무 부담은 모두 현장에 떠미는 꼴"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솔직히 학원 선생님인 척 아이를 데려가도 확인 못 한다"며 "어느 태권도 학원인지 하나씩 확인할 여력이 안 된다. 그렇게 하면 하교 지도만 한 시간 넘게 걸릴 것"이라고 했습니다.

학교 강사들이 모이는 온라인 카페 글을 올린 한 작성자도 "교문에서 학부모님, 학원차에 대면으로 인계해야 하는데 아이들이 우르르 빠지다 보니 한두명은 만나는 모습을 못 봐 (따로) 연락해서 확인했다"며 "매주 이러면 힘들 것 같아 고민이 된다"고 적었습니다.

이들은 교육부의 지침이 불명확해 학교마다 대면 인계 운영 방식이 제각각이라는 점도 지적했습니다.

김 씨는 "'대면 인계'라는 원칙이 있지만 학생·학부모마다 원하는 귀가 방식이 모두 다르다"며 "누구는 학원에 가야하고, 누구는 직접 데려가겠다 하고, 누구는 늘봄을 듣다가 방과 후 수업으로 빠지기도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각자 원하는 하교 방식이 있는데 그 모든 것을 실무자가 감당하기엔 벅차다"고 덧붙였습니다.

실제로 온라인 카페에는 "학생 사정으로 수업 중간에 집에 가야 한다면 어떻게 하시나요? 학부모님이 직접 실습실로 와서 데려가게 해야 하나요?" 등 돌발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묻는 게시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최 씨의 경우 대면 인계 후 별도로 학부모들에게 귀가 문자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는 "제가 담당하는 학생이 29명이고 옆 반 선생님은 33명을 담당하는데, 그렇게 저희는 매일 학부모들에게 30번씩 문자를 보내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교육부 지침에 따라 학부모 동행이 어려운 경우 대리인 위임장, 자율귀가 동의서를 제출해야 하는데 일관된 양식이 없는 점도 꼬집었습니다.

현재 많은 학교가 자율 귀가 동의서와 위임장에 "학생 신변안전에 문제가 생길 경우 학교 측에 이의제기 혹은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달아 서명하도록 하는데, 이에 대한 학부모들의 원성이 커 문구를 교체하는 소동도 있었습니다.

김 씨는 "저희는 '학교에 책임을 묻지 않겠습니다' 정도로 문구를 완화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렇다 보니 늘봄학교가 취지에 맞게 운영되지 못한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김 씨는 "늘봄학교는 '보육'이 아닌 '교육'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래서 채용되는 강사들도 안전·관리보다는 콘텐츠에 집중하도록 훈련된 분들"이라며 "그분들로서는 '내가 이러려고 여기 온 게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교육부가 배포한 '늘봄학교 길라잡이'에 따르면 늘봄학교는 초등학생의 성장·발달을 위해 교육과 돌봄 자원을 연계한 종합교육 프로그램이라고 정의돼있습니다.

프로그램도 초등학생의 발달 단계와 특성을 고려한 적응·놀이·체험·학습활동으로 구성됐습니다.

영어, 코딩, 체육 등 수업별로 강사도 따로 둡니다.

과거 방과후 학교 강사로 일한 최 씨는 "방과후 학교는 돈을 내고 듣는 수업이다보니 학생 수가 그리 많지 않은데, 늘봄은 무상이니 인원수가 기본적으로 많다"며 "커리큘럼대로 진행하기도 힘든데 수업 앞뒤로 학생 인솔까지 해야 하니 제대로 운영되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학부모들은 이게 교육에 도움이 되는 줄 알고 기대가 크지만, 사실 현장은 '보육'과 별다를 게 없다"며 "전혀 수업이 진행되지 않는데 참관수업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다"고 덧붙였습니다.

늘봄실무사 김 씨는 신학기부터 늘봄학교가 운영되면서 이제 막 유치원을 뗀 아이들의 상태를 당국이 고려하지 못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최소한 2학기 때부터 운영했어도 이 정도 혼란은 없었을 거라는 설명입니다.

김 씨는 "새 학기라는 개념을 반영하지 못한 것 같다"며 "2학기만 돼도 아이들은 학교생활에 적응해 강사의 지도를 더 잘 따랐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교 안전을 책임지는 전담 인력을 확충해야 한다고 주장도 있었습니다.

김 씨는 "현재 늘봄지원인력(자원봉사자)이 있지만 정식 채용 과정을 거친 분들이 아니다 보니 책임감을 갖기가 어렵다"며 "잠깐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교 안전을 위한 상시 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최 씨도 "자원봉사자라고 하지만 사실상 교문 앞에 서있기만 한다. 하교 지도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습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 관계자는 "늘봄실무사와 강사가 대면 인계에 관한 모든 업무를 감당하기에 인력이 턱없이 적다"며 "대면 인계가 어떻게 이뤄져야 하는지도 명확하지 않아 현장에 있는 분들이 혼란을 많이 겪고 있어 대책이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

(사진=연합뉴스)

유영규 기자 sbsnewmedi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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