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 맥도널드 영국 케임브리지대 박사가 헤드셋을 착용한 상태로 개발한 VR 플랫폼을 체험하고 있다. 케임브리지대 제공 |
사람들 앞에서 발표나 연설을 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사회공포증’ 환자들을 위한 ‘두려움 완화 가상현실(VR) 플랫폼’이 출시된다. VR을 이용해 셀프 치료 효과를 얻는 시대가 열릴 것으로 기대된다.
크리스 맥도널드 영국 케임브리지대 몰입형테크놀로지랩 디렉터 연구팀은 15일 ‘세계 연설의 날’을 맞아 사용자에게 연설이나 발표에 대한 자신감을 심어주는 무료 VR 플랫폼을 공개했다.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누거나 발표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얼굴이 붉어지거나 목소리가 떨리거나 땀이 나는 등 사회공포증 증상이 나타나는 사람들을 위한 공포증 완화 훈련 환경을 가상 공간에 구축한 플랫폼이다.
연구팀은 케임브리지대와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 재학생들을 대상으로 플랫폼을 일주일간 사용하도록 한 뒤 사용 피드백을 받는 임상을 진행했다. 그 결과 참가자 100%가 설문을 통해 긍정적인 피드백을 전달했다. 매일 30분간 연설 세션을 수행한 뒤 자신감이 향상됐다고 답한 것이다. 참가자들은 ‘더 준비된 느낌’, ‘더 자신감 있는 느낌’, ‘덜 불안한 느낌’, ‘환경에 적응한 느낌’ 등에 대한 설문에 동의했다. 자세한 임상 연구 결과는 8월 22∼24일 영국 옥스퍼드에서 열리는 국제심리학연구 콘퍼런스에서 공개될 예정이다.
다른 사람을 대면했을 때 불안하거나 두려운 생각이 들며 굳은 표정 같은 신체적 변화가 나타나는 사회공포증을 치료하는 방법 중 하나는 ‘노출 치료’다. 환자가 공포를 느끼는 상황이나 대상에 일부러 노출되도록 만드는 행동치료다. 공포 대상이나 상황을 자꾸 회피하면 두려움이나 불안이 유지되거나 커지기 때문에 일부러 극복해야 할 대상과 대면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노출 치료는 환자가 불편하게 느끼는 실제 상황과 유사한 상황을 만들어 환자를 노출시키거나 상상을 동원해 머릿속에서 공포의 대상과 대면하도록 만든다. 가슴이 뛰거나 땀이 나는 등 변화를 유도해 이러한 변화는 극복할 수 있는 문제라는 사실을 학습시키는 ‘내면 감각 노출법’도 있다. 이 같은 기존 치료법의 단점은 다양한 상황을 구현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VR 플랫폼은 환자가 불편하게 느낄 만한 다양한 대상이나 상황을 가상으로 만들어낸다. 연구팀의 VR 플랫폼을 이용하면 소규모 사람들 앞에서 발표를 할 수도 있고 다수의 사람이 모인 경기장에서 연설을 할 수도 있다. 또 스튜디오에서 아나운서처럼 프롬프터를 읽거나 라디오 인터뷰에 대응하는 등 다양한 과제도 수행할 수 있다. 이 과정을 통해 자신감을 기르고 적응력을 높이며 심지어 연설에 대한 즐거움을 증가시킬 수도 있다는 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임상에 참여한 한 케임브리지대 학생은 “혼자 침실에서 발표 연습을 할 땐 사람들을 시각화할 수 없어 실제와 큰 차이가 있었다”며 “플랫폼을 이용하면 군중을 보고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돼 많은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문세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moon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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