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세영(23, 삼성생명)이 눈부신 부상 투혼을 발휘하며 2년 만에 전영오픈 정상을 탈환했다.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숙적' 천위페이를 상대로 보인 감동의 투혼 드라마를 재현했다.
공식전 20연승과 최근 4개 대회 연속 우승 대업을 달성했다. 경기 뒤 인터뷰에서 "아임 어 킹, 나우(I'm a king, now)"를 소리높여 외쳤다. 여제 지위를 더 공고히 구축했다.
정상 컨디션이 아니었다. 다리가 무거웠다. 앞서 4강전에서 입은 허벅지 통증이 영향을 미치는 듯했다. 상대 크로스 헤어핀에 평소처럼 반응하지 못했다.
오른발을 차주면서 수비에 들어가야 하는데 그게 원활하지 않았다. 특유의 '질식 수비'로 상대를 피곤하게 하면서 경기 주도권을 쥐는 게 안세영 스타일인데 그 운용 방식이 전혀 작동되지 않았다.
그러나 예기치 않은 변수가 등장했다. '체력'이었다. 왕즈이가 2게임 중반부터 급격히 지쳤다. 끝내야 할 때 끝내지 못하니 안세영이 치고 나왔다. 체력적 우위와 감동적인 부상 투혼을 앞세워 2년 만에 전영오픈 정상 탈환에 성공했다.
출발은 불안했다. 1게임 초반 4-10까지 끌려갔다. 백핸드 공격이 거의 나오지 않았다. 왕즈이는 집요하게 안세영 왼편을 공략했다.
안세영은 이후 연속 3득점으로 힘을 냈다. 왕즈이 실책과 푸시를 묶어 점수 차를 좁혔다. 그러나 결국 7-11로 1게임 인터벌을 맞았다.
반등 계기를 마련하지 못했다. 11점을 먼저 내준 뒤에도 연속 3실점으로 스코어가 8-14로 바뀌었다.
안세영의 평소 스타일이 고스란히 드러난 장면이 나왔다. 10-16으로 뒤진 상황에서 왕즈이 대각선 스매시에 안세영이 몸을 날려 대응했다. 특유의 '다이빙 수비'에 관중석에서 탄성이 흘렀다. 왕즈이가 당황했다. 헤어핀이 네트를 넘지 못했다.
그러나 끝내 열세를 뒤집지 못했다. 1게임을 13-21로 내주고 2게임에 돌입했다.
2게임 들어 공격성을 키웠다. 적극적인 랠리 싸움으로 주도권 회복을 꾀했다.
6-6으로 팽팽히 맞섰다. 6-6 상황에서 명장면을 연출했다. 약 90초에 이르는 긴 랠리 끝에 안세영의 대각 공격이 네트를 맞고 넘어갔다. 왕즈이 체력을 뺏으면서 득점까지 거둬 분위기를 가져왔다.
하지만 허벅지가 정상이 아닌 안세영은 런지(한쪽 무릎을 굽혔다 치고 나오는 동작)를 보일 때마다 반응 속도가 늦었다. 반응 속도가 느리다보니 샷에 힘이 들어가고 정교성이 떨어졌다.
7-7로 맞선 상황에서 대각 클리어를 실수한 장면이 대표적이었다. 본인 실수로 실점하는 장면이 거의 없는 안세영인데 이날은 달랐다. 그답지 않은 내용이 경기 내내 이어졌다.
또다시 11점을 먼저 내주고 끌려갔다. 9-11로 2게임 중반에 들어섰다.
10-13으로 뒤진 상황에서 연속 득점으로 기세를 올렸다. 이후 왕즈이 실책과 점프 스매시를 묶어 14-14 동점을 이뤘다.
그러자 왕즈이 전략이 다시 나왔다. 안세영 오른편으로 꾸준히 공을 보내 몰아넣은 뒤 왼편으로 공을 길게 보내 실수를 유도했다. 다시 점수 차가 벌어졌다. 승기가 왕즈이에게 넘어가는 듯했다.
하지만 변수가 등장했다. '체력'이었다. 왕즈이가 지쳤다. 끝낼 수 있을 때 끝내지 못하자 안세영이 뒷심을 발휘했다. 18-18에서 연속 득점에 성공, 게임 포인트를 획득했다. 이때 왕즈이 실책이 또 나왔다. 21-18로 극적으로 2게임을 거머쥐었다.
3게임 초반 안세영이 분위기를 탔다. 7-3으로 앞서갔다. 결국 11점을 먼저 따냈다. 11-8로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
이후 난전이 이어졌다. 왕즈이가 추격하면 안세영이 달아나는 흐름이 지속됐다. 3게임 중후반까지 점수 차가 1~2점을 오갔다.
세계 2위 왕즈이는 만만찮은 적이 아니었다. 과감한 푸시와 대각 공격으로 14-13, 역전에 성공했다. 이어진 포제션서도 득점해 15-13으로 스코어를 바꿨다.
여기부터는 정신력 싸움이었다. 누가 먼저 지치느냐가 관건이었다.
안세영 뒷심이 더 매서웠다. 왜 현시점 배드민턴계 여제가 안세영인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수비 집중력에서 앞섰다. 점프 스매시, 대각 공격, 드롭샷을 섞어 착실히 점수를 쌓았다. 20-18로 매치포인트에 선착했고 결국 21-18로 3게임을 마무리했다. 대역전승 대미를 장식했다.
전영오픈은 세계 최고 권위를 지닌 배드민턴 대회로 꼽힌다. '배드민턴의 윔블던'으로 불린다. 안세영은 2023년 이 대회에서 한국 여자 단식 선수로는 방수현(은퇴) 이후 27년 만에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2년 만에 정상 탈환을 노렸다.
최근 기세가 매서웠다. 말레이시아오픈, 인도오픈, 오를레앙 마스터스를 잇달아 거머쥐었다. 전영오픈까지 시상대 맨 위에 오를 경우 4연속 우승 대업을 이룰 수 있었다.
난관을 마주했다. '천적' 야마구치 아카네(일본)와 준결승전에서 허벅지 부상을 입었다. 이 경기 2게임 후반, 안세영은 불편을 호소했다. 오른쪽 허벅지 뒤쪽을 계속 문질렀다. 경기를 승리로 장식한 뒤에도 무릎을 바닥에 대며 한동안 일어서질 못했다.
하지만 '셔틀콕 여제'는 부상 여파를 훌륭히 극복해냈다. 눈부신 부상 투혼으로 2년 만에 전영오픈 정상 탈환에 성공했다. 최근 4개 대회 연속 우승을 달성하며 여제 지위를 더 공고히 구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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