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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면 국가 혼란 걷잡을 수 없어… 정치인부터 냉정 되찾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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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후 주말에만 147만명 거리로
탄핵 찬반 갈린채 극단 선동 판쳐
광장의 열기 위험수위 넘어
권성동 “헌재 승복… 당 공식 입장”
조선일보

일러스트=이철원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15번의 주말 동안 전국 주요 집회에 147만여 명(경찰 추산 누적 인원)이 모인 것으로 16일 나타났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가 임박하면서 광장에 모이는 탄핵 찬성·반대 진영의 열기가 위험 수위에 도달했다는 우려가 나온다. 주말인 15~16일 서울 도심엔 11만명 넘는 인파가 몰려 각각 ‘탄핵 각하’ ‘윤석열 파면’ 구호를 외쳤다. 정치권도 장외 여론전에 가세해 군중과 같은 주장을 했다.

전문가들은 “윤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가 탄핵 결과 승복 공식 의사를 제대로 밝히지 않고, 정치권이 계속 갈등·분열을 조장하면 대한민국 사회가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하지만 여야는 16일에도 서로가 탄핵 결과 승복에 대한 ‘진정성’이 없다며 네 탓 공방을 벌였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는 “당의 공식 입장은 헌재의 판단 결과에 승복하겠다는 것”이라며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공개적으로 명확하게 승복 메시지를 내지 않는 것은 헌재를 겁박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자 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는 “헌재 판단 존중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며 “행동으로 (승복)하는지 지켜보겠다”고 했다. 야권에선 권 원내대표 ‘승복 발언에 ‘치졸한 연막’ ‘피노키오도 울고 갈 거짓말’(민주당 황정아 대변인) ‘평소 안 지키던 사람이 꼭 저런 약속을 하자고 나댄다’(조국혁신당 김보협 수석대변인) 같은 거친 반응이 이어졌다. 지난 12일 한 유튜브에서 탄핵 결과 승복 입장을 밝혔던 이재명 대표는 이날 공식 메시지를 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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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조선디자인랩 이연주


◇“이대로면 국가 혼란 걷잡을 수 없어… 정치인부터 냉정 되찾아야"

본지가 계엄·탄핵 정국 주요 집회 인파를 추산해 본 결과 주말마다 평균 10만명이 광장에 나왔다. 이런 집회가 1년 내내 이어진다면 500만명 넘는 국민이 시위에 참여하는 셈이다.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작년 12월 14일에는 여의도 등지에 24만9000명이, 3·1절엔 15만명이 거리에 나왔다. 탄핵 심판 선고일엔 서울 도심에만 시위대가 최소 30만명이 몰려들 것으로 경찰은 예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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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현국


거리의 군중을 흥분시키려는 발언 수위는 연일 높아진다. 전광훈 목사는 지난 9일 “만약에 헌재가 딴짓했다? 국민 저항권을 발동해 한칼에 날려 버려야 돼”라고 했다. 시민단체 촛불행동 김민웅 대표는 윤 대통령을 향해 “반드시 처단” “수갑에 채워지고 포승줄에 묶여 질질 끌려 나와야 한다”고 했다. 극단 유튜버 발언은 더 심각하다. 탄핵 반대 유튜버 한정석씨는 “탄핵이 인용되면 그야말로 한강이 피로 물드는 내전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탄핵 찬성 유튜버 ‘사장 남천동’은 “기각되면 총 드는 수밖에 없다” “총 들고 주요 요인 암살하겠다”고 했다.

광장이 이렇게 달궈지는 상황에서 여야 정치인 발언은 더 냉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의힘 김상욱 의원은 지난 12일 “탄핵 기각이 된다면 저는 국회에서 죽을 때까지 단식 투쟁에 들어갈 것”이라고 했다. 같은 당 서천호 의원은 “공수처·선관위·헌재를 쳐부수자”고 했다. 조국혁신당 황운하 의원은 지난 1일 “지랄 발광을 하고 있지만 윤석열은 패배할 수밖에 없다”며 윤 대통령을 ‘망상 장애 괴물’로 표현하기도 했다. 모두 과도한 발언이라는 지적이 나왔고 일부는 사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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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일대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에서 태극기와 성조기를 든 참가자들이 '국회 해산' 등 팻말을 들고 "윤 대통령 복귀" 등을 주장하고 있다(위). 같은 날 경복궁 동십자각 일대에서 진행된 더불어민주당 등 야 5당의 탄핵 찬성 집회에서 당 지도부 등 참가자들이 윤 대통령 '즉각 파면'을 촉구하고 있다. 맨 앞줄 왼쪽부터 사회민주당 한창민 대표, 진보당 김재연 상임대표, 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 조국혁신당 김선민 대표 권한대행, 기본소득당 용혜인 대표. /뉴시스·연합뉴스


경찰은 탄핵 심판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소설 같은 최악의 상황’에 대비한다는 입장이다. 방화, 분신, 폭동 등 모든 가능성에 대비, 캡사이신과 삼단봉을 휴대할 방침이다. 선고 당일 경찰 210개 중대 1만2600여 명과 경찰 버스 900대, 폴리스라인 등 질서 유지 장비 3800여 개를 헌재와 광화문, 여의도, 용산 일대에 투입하기로 했다. 2017년 3월 10일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 선고 당시, 흥분한 탄핵 반대 시위대가 경찰 저지선과 충돌하는 과정에서 스피커가 떨어지고 인파에 짓눌리는 등 이유로 4명이 사망했다.

최근 한 탄핵 반대 유튜브엔 “2주 치 식량, 에어건, 삼단봉, 최루가스 준비를 끝냈다” “경찰서를 털면 되냐” 등 댓글이 줄을 이었다. 어느 인터넷 게시판엔 ‘고출력 손전등을 눈에 쏴서 무력화시키자’ ‘헌재 총공’ 등의 글이 올라오거나, 문형배 헌법재판관의 신변을 겨냥하자는 테러 모의 글도 있다. 윤 대통령 구속 취소 결정이 나온 직후에는 엑스(X)에 “윤석열 구속 취소함? 암살하라는 거지? 오케이. 칼 들고 윤석열 XXX 간다”는 게시물이 올라왔다. 경찰 관계자는 “현재 상황은 박근혜 탄핵 때보다 10배는 위중하다”며 “아스팔트 대규모 유혈 사태에도 철저히 대비하고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정치권이 이제라도 냉정을 찾고 자중하며 광장의 열기를 정상적 의회 정치의 장에서 소화시켜야 한다고 지적한다. 특히 윤 대통령과 이 대표 측이 탄핵 결과에 승복하겠다는 공개 메시지를 공식 회견 등을 통해 제대로 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재열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계엄 이후 지금까지 여야 정치권은 팬덤에 편승해 시위대를 쫓아다니고 자극적인 말만 쏟아내고 있다”며 “타협이라는 정치 메커니즘이 전혀 작용하지 않는 준(準)내전 상태에서 정치권은 지금 강 대 강으로 대치할 게 아니라 윤 대통령 탄핵 심판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형사 재판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든 승복하겠다는 메시지를 내고 자중할 때”라고 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치권이 진영 논리에 편승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력을 차지하려는 쉬운 싸움, 쉬운 정치를 하고 있다”며 “여야가 공동으로 헌재 결정 승복 메시지를 제대로 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여야는 사회 갈등을 완화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공당으로서의 사회적 본분으로 돌아갈 때”라며 “더는 자극적 언사로 국민을 선동해선 안 된다”고 했다.

박성민 정치 컨설팅 ‘민’ 대표는 “정치는 갈등의 시작이 아니라 해결 과정이자 종결, 화합이어야 하는데, 지금은 오히려 정치권이 각종 선동으로 국민을 광장으로 내몰고 있는 상황”이라며 “계엄, 탄핵 국면을 현명하게 풀어나가야 할 유력 정치인들이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선관위, 법원, 헌재를 공격하다 보니 70년 동안 가꿔온 민주주의가 붕괴하기 직전인 상황이 됐다”고 한다. 각계 원로 사이에서도 “이러다간 70년 번영을 쌓아 올린 주춧돌마저 붕괴할지 모른다” “하루아침에 정정이 불안한 아프리카·남미 후진국처럼 전락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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