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개호보험 제도를 도입해 노년층으로 진입하기 전 경증 환자일 때부터 지원·관리를 시작해 중증 환자가 늘어나는 것을 예방하고 있다. 노인이 되기 전 보험료를 내고, 노인이 되면 자연스럽게 혜택을 받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
# 일본 도쿄에 사는 75세 스즈키 씨는 최근 건망증이 심해져 걱정이 많았다. 그는 집 근처 ‘시니어 종합 지원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상담사는 스즈키 씨의 건강 상태를 점검한 후, 치매 검사가 필요할 수 있다는 의견을 전했다. 다행히 공적 개호(요양)보험에 가입된 그는 요양 등급을 받아 병원에서 무료로 정밀 검사를 받을 수 있다는 안내를 받았다. [헤럴드경제=박성준 기자] 지난해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한국에 있어 일본은 고령 사회에 따른 사회적 문제를 대비할 수 있는 좋은 참고 사례가 될 수 있다. 지난 1994년에 고령사회, 2007년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은 노인 인구가 10명 중 3명에 달한다. 하지만 스즈키 씨처럼 일본의 노인들은 잘 정비된 시스템 덕분에 어렵지 않게 요양 서비스를 이용한다. 일본은 어떻게 초고령화 사회를 헤쳐 나가고 있을까.
미야자키 유스케 일본생명보험 부장은 지난 12일 서울 광화문 생명보험교육문화센터에서 열린 한-일 생명보험협회 세미나에서 “일본생명은 지방정부, 지역 기업, 주민들을 연결하는 중심축이 되어 포용적인 지역사회를 만들고자 한다”면서 “생명보험업을 중심으로 자산관리, 건강관리, 장기요양, 보육 등 다차원적인 안심을 제공하는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지역 밀착형 정책···40세·경증부터 관리
일본은 과거 1995년 ‘고령사회 대책 기본법’을 제정해 초고령화 사회에 대비했고, 2000년에는 한국의 장기요양보험 모델이 된 공적 개호보험 제도를 도입했다. 개호란 일본에서 ‘곁에서 돌봐준다’는 의미로, 간병과 유사한 의미를 담고 있다. 개호보험 제도는 고령자와 가족의 부담을 사회가 함께 나눠 안정적인 노인 돌봄을 제공하는 것이 목표다.
일본에선 만 40세 이상 국민이라면 의무적으로 이 개호보험에 가입해 보험료를 납부해야 한다. 만 65세 이상인 경우 질병 여부와 관계없이 누구나 장기요양이 필요할 때 보험 혜택을 신청할 수 있다. 만 40세 이상이거나 64세 이하라면 노화 관련 특정 질병이 있을 때 신청할 수 있다. 일본의 보험 제도는 노화 질병 초기일 때부터 중증 환자로 악화되는 것을 예방하는 데에 중점을 두고 있다. 2022년 기준으로 만 40~64세 일본 국민의 평균 부담액은 매월 6829엔(6만6826원) 수준이다.
반면, 한국에선 건강보험 가입자를 대상으로 하고, 65세 이상이거나 노인성 질환이 있을 때 장기요양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일본에서 개호보험을 이용하려면 지방자치단체에 개호 필요 인정을 신청해야 한다. 이후 조사와 심사를 거쳐 등급이 결정되며, 개호 등급에 따라 받을 수 있는 서비스가 달라진다. 등급은 요양 보호 정도에 따라 나뉘는데 중증의 경우 1~5단계, 경증의 경우 1~2단계로 나뉜다. 숫자가 높을수록 요양 보호 정도가 더욱 필요하다는 의미다.
특히 일본 보험 제도의 주요 특징 중 하나는 운영 주체가 지방정부라는 점이다. 기초자치단체나 특별구, 광역연합(기초자치단체로 구성된 연합체)이 재정을 관리하면서 서비스 비용의 70~90%를 부담한다. 요양과 관련해 발생하는 비용에서 이용자는 10~30%만 부담하면 된다. 지자체는 지역마다 노년층에 대한 사회복지 서비스를 중점으로 하는 지원센터를 두고 있으며, 일본 노인들은 필요한 서비스에 빠르게 접근할 수 있고 경제적 부담이 적다. 스즈키 씨도 이런 제도 아래 간편하게 치매 조기 검사를 무료로 받을 수 있었다.
개호보험의 또 다른 핵심 요소는 ‘케어 매니저(요양 서비스 관리자)’다. 이들은 개호 필요 등급을 평가하고, 맞춤형 요양 계획을 설계한다. 이들은 단순한 요양 보호사가 아니라, 노인의 삶 전반을 관리하는 전문가 역할을 맡으면서 개호보험 제도의 질을 높이는 데 이바지하고 있다.
또한, 개호보험을 이용하면 방문 요양사와 간호사가 목욕, 식사, 세탁, 배변 관리를 지원하고, 휠체어나 침대 등 보조기기를 대여할 수도 있다. 집 내부에 턱을 없애거나, 내부 난간 설치 등 주택 개보수 서비스까지도 가능하다. 하라 타다시 니치이학관(일본 최대 요양사업자) 부장은 “정기적으로 집을 찾아가는 서비스와 함께 24시간 응급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도 마련돼 있다”고 말했다.
지난 12일 서울 광화문 생명보험교육문화센터에서 열린 한-일 생명보험협회 세미나에서 하라 타다시 니치이학관 부장이 질문에 답을 하고 있다. [박성준 기자] |
빈틈은 민간보험이 채워···한국도 서둘러야
개호보험은 공적보험으로서 일본 국민의 복지 서비스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공적보험에서 채우지 못한 부분은 민간보험이 채운다. 일본에서는 치매보험, 장기요양보험 등 다양한 민간 보험상품이 보편화해 있다. 치매 진단 후 생활비를 지원하는 보험뿐만 아니라 요양 서비스와 융합한 전문 상담 서비스, 시설 연결 서비스 등도 제공한다.
특히 일본생명에서 시니어 종합 지원센터와 연계해 제공하는 ‘그랑에이지 스타’는 노년에 가족이 없어도, 가족의 역할을 대체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예컨대 입원하거나 요양시설에 들어갈 때 보증인의 역할을 해준다거나 병원 입원, 재산 관리, 사망 이후 장례·유품 정리까지도 도와준다. 일본 생보업계 1위인 일본생명 역시 지난해 일본 최대 요양 사업자인 니치이학관을 산하에 둔 니치이홀딩스(HD)를 인수해 적극적으로 요양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한국에서도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요양 문제는 사회적인 이슈로도 대두된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국내 65세 이상 인구는 20%를 넘어섰으며, 가구주 나이가 65세 이상인 고령자 가구 566만가구 가운데 214만가구는 1인 가구다. 이런 1인 고령자 가구 규모는 오는 2047년엔 400만가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최근 보건복지부 발표에 따르면 내년 치매환자는 100만명을 웃돌 것으로 보인다. 노인 인구 10명 중 1명이 치매환자인 셈이다. 치매환자의 52.6%는 독거노인이었으며, 주변 도움 없이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중증 치매 환자도 4명 중 1명이 혼자 사는 1인 가구였다. 환자 가족에게 가장 큰 어려움은 경제적 부담으로, 연간 환자 1인당 관리 비용은 1700만~3100만원에 달했다.
하지만 이를 지탱할 수 있는 사회안전망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일본의 장기요양 시장 규모가 120조원을 넘어섰지만, 한국의 시장 규모는 지난 2023년 말 기준 17조원에 불과하다. 한국 시장의 7~8배에 달하는 일본에서도 고령자 돌봄 관련 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요양사업에 뛰어든 보험사도 아직 소수에 불과하다.
최희정 웰에이징연구소 대표는 “개호보험은 사회 변화에 대응해 제도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데에 무게를 두고 있다”면서 “이는 한국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장기요양보험 제도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는 데에 필요한 계획과 인력 부족 문제에 대한 선제 대응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특히 이런 정책적 고민은 각 지역사회의 실정을 충분히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