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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한마디에... 세계 민주주의 전파하는 방송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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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A·RFA, 정부 보조금 끊겨
공산·독재국 주민의 ‘한줄기 빛’ 위기
조선일보

미국 워싱턴 DC의 '미국의 소리(VOA)' 방송 사무실 입구. /AP 연합뉴스


북한·미얀마·이란 등 독재 정권 통치 지역 주민들에게 세계 소식을 알리고 자유민주주의 메시지를 전달하던 미국의 국제 방송 미국의소리(VOA)와 자유아시아방송(RFA·Radio Free Asia) 등이 15일 신규 방송을 전면 중단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기능과 인력을 최소화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정부 기관 일곱 곳에 VOA·RFA 등을 운영하는 글로벌미디어국(USAGM)도 포함했기 때문이다. 트럼프 2기 연방 정부 구조조정 바람에, 80년간 전파를 통해 지속한 미국 공공 외교의 맥이 끊길 위기에 처했다. 뉴욕타임스는 VOA 직원들을 인용해 “이번 삭감이 너무 광범위해 사실상 문을 닫게 될 것”이라고 했다.

VOA는 1942년 2차 세계대전 당시 적국(敵國)인 일본·독일의 선전에 대응해 방송을 시작, 최근까지 50여 언어로 전 세계 3억명 이상에게 방송을 해왔다. 1950년 설립한 자유유럽방송(RFE·Radio Free Europe)은 냉전 시기 소련의 영향권에 있던 동유럽 공산국가들에 ‘바깥세상’ 소식을 상세하게 전달했다. 1996년 설립한 RFA는 언론이 통제되는 북한·중국·베트남 등의 내부 소식을 그곳 언어로 국제사회에 알리고, 미국의 입장과 국제사회 소식을 전하는 기능을 해왔다. USAGM 산하에는 이 밖에도 공산 정권 치하 쿠바 국민들을 상대로 방송하는 쿠바방송국(OCB), 이슬람권과 아랍 지역을 위한 방송 중동방송네트워크(MBN)도 있다. 이 방송들이 모두 송출 중단 위기에 놓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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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백형선


마이클 아브라모위츠 VOA 총국장은 15일 페이스북에 “오늘 아침 VOA 거의 모든 직원, 1300명이 넘는 기자·프로듀서 등이 (유급) 행정 휴가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VOA는 80년 이상 공산주의와 파시즘에 맞서 싸우고 전 세계 자유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에서 필수적인 역할을 해온 미국의 귀중한 자산이었다”고 했다. RFA도 이날 아침부터 연방 정부의 보조금 지급이 중단됐다고 밝히고 적막한 사무실 사진을 홈페이지에 올렸다.

USAGM은 의회 승인을 통해 배정받은 자금을 산하 각 방송국에 지급하는 식으로 운영돼 왔는데, 트럼프의 행정명령으로 이 절차가 전면 중단된 것이다. 트럼프의 이번 행정명령에 대해 단순한 예산 절감 차원을 넘어서 세계 민주주의를 선도해 온 미국의 가치를 스스로 훼손하는 조치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VOA와 RFA 등이 독재로 언론이 통제되는 지역에 자유민주주의의 메시지를 전파해 왔기 때문이다.

VOA·RFA·RFE 등이 서비스하는 언어 중에는 한국어를 비롯해 아프가니스탄어·페르시아어(이란어)·라오스어·크메르어(캄보디아어)·소말리아어 등이 포함돼 있다. 중국은 본토에서 쓰는 베이징어 외에 광둥어(홍콩어)·티베트어 서비스까지 있다. 프로그램 주파수도 현지에서 시청·청취할 수 있게 대부분 맞춰져 있다. 독재정권이 통치하고 있거나 민주주의가 온전히 자리 잡지 못했거나 내전 등으로 정정이 불안한 지역 주민들에게 ‘세상의 창’ 역할을 하려는 것이다. VOA는 미소 냉전 시기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동독 등 공산권의 민주화 과정을 생생하게 보도했다. RFA는 중국의 위구르족 무슬림 탄압 문제, 해외 비밀 경찰서 운영, 코로나 사망자 은폐 의혹 등을 보도했다. 이런 이유로 VOA·RFA·RFE 등은 여러 나라에서 “독재자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소리”라고도 했다.

두 방송은 한반도와도 인연이 각별하다. 일제강점기였던 1942년 개국해 2차 대전 종전(광복)과 6·25전쟁 발발 등 한국 현대사의 격변이 벌어질 때마다 소식을 국민들에게 전했다. 2000년대 이후부터는 한국보다는 북한을 핵심 청취 권역으로 정하고 한반도 정세와 탈북민들의 이야기 등을 다루는 방송을 집중 편성했다. 실제로 탈북민 여러 명이 RFA 기자로 근무했다. 이 때문에 북한은 2020년 RFA를 몰래 청취한 혐의로 어선 선장을 처형할 때 동료 100명을 데려와 참관시키는 등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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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소리(VOA)가 소속된 글로벌미디어국(USAGM)을 이끌고 있는 카리 레이크. /연합뉴스


트럼프는 1기(2017~2021년) 때부터 VOA의 순기능보다는 자신에 대한 비판적 보도에 집중하며 불만을 표명해 왔다. 특히 임기 말인 2020년 코로나 대응과 관련해 정부를 비판한 보도가 트럼프의 불만을 샀다고 알려졌다. VOA 소속 일부 기자가 최근 소셜미디어를 통해 반(反)트럼프 노선을 표출한 것도 트럼프를 불편하게 했을 수 있다. 정부효율부(DOGE) 수장인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부터 VOA 등의 폐쇄를 촉구해 왔다. 북한·베네수엘라 문제를 담당하는 리처드 그리넬 백악관 특임 대사도 “이 방송사들이 급진 좌파로 채워져 있고, 납세자 돈 10억달러(약 1조4500억원)를 불태우며 혼잣말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2기 USAGM을 이끌고 있는 카리 레이크가 친트럼프 색채가 짙은 폭스뉴스 출신이라는 점도 방송사들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요인이다. 레이크는 임명 직후 성명에서 “위부터 아래까지 이 방송사들은 미국 납세자에게 거대한 부패이자 부담”이라고 독설을 퍼부었다.

☞VOA

Voice of America(미국의소리)의 줄임말. 미국 정부가 운영하는 국제 방송 기관이다. 1942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적국이었던 독일 나치의 선전에 맞서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됐다. 전 세계 3억6000만명의 시청자에게 한국어를 포함해 약 50개 언어로 방송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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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김은중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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