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강하는 임경수 소장. [사진 = 정읍시] |
“열악한 환경에 놓인 환자들을 차마 두고 갈 수 없어서 이렇게 눌러앉게 됐네요.”
한국 응급의료계 거장 임경수 전 정읍아산병원장은 고부보건지소장으로 일하게 된 이유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16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임 소장은 국내 응급의료체계의 기틀을 닦았다고 평가받는 명의 중 한명으로 꼽힌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그가 생전 한 번도 살아본 적 없는 전북 정읍에 자리를 잡은 이유는 아주 작은 인연에서 시작됐다.
임 소장은 2022년 1월 처음 정읍에 내려왔다. 33년간 근무했던 서울아산병원에서 퇴직하고, 정읍아산병원장으로 부임한 것이 인연이 됐다.
평생을 국내 최고로 손꼽히는 병원에서 근무했던 그가 마주한 지방 농촌지역의 의료 현실은 ‘참혹’했다.
임 소장은 “와서 보니까 생각보다 너무 열악했다. 전국 장애인 발생률이 5.1∼5.6%인데 정읍의 장애인 발생률은 10%에 달했다”며 “주된 원인은 의료시설과 의료진 부족, 또 그로 인한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같은 만성질환 관리 소홀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정읍의 면적이 서울시의 1.2배 정도 된다. 그런데 인구는 10만명 안팎이다. 의료시설이 부족하다 보니 병원에 진료 한번 가려면 송파구에서 명동까지 택시를 타고 가야 하는 꼴”이라며 “이런 상황이니 환자들이 약을 제때 복용하지 않고, 질병관리가 전혀 되지 않아 중증 장애로 이어지는 것 같다”고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했다.
임경수 정읍 고부보건지소장. [사진 = 연합뉴스] |
임 소장은 지난해 9월 정읍아산병원장직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두 달만인 11월 고부면 보건지소장으로 부임했다. 그의 결정에 주변인과 가족 모두 만류했으나 그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다.
응급의료계에서 임 소장 정도의 경력이 있는 의사라면 연봉 4억∼5억원은 족히 받을 수 있었으나 그는 월급 300만원도 되지 않는 공중보건의의 길을 택했다.
임 소장은 “사실 모두가 말렸다. 공중보건의가 되고 보니 받고 있던 사학연금도 끊기고, 보건지소 옥탑에 있는 5평짜리 방에서 지내는 것도 힘들고, 어려운 일이 한둘이 아니었다”며 “그런데도 나만 바라보고 있는 환자들을 두고 떠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연고도 없는 정읍에서 이렇게 공중보건의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매주 월∼목요일 나흘은 정읍에 머물며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진료를 본다. 또 틈틈이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같은 만성질환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고부면 내 44개 마을을 돌며 특강을 하기도 한다.
임 소장은 공중보건시스템이 좋은 방향으로 개선된다면 자신과 같은 시니어 의사들이 공중보건의로 지방에 내려와 봉사하는 길이 열릴 것이라고 제언했다.
그는 “막상 근무해보니까 지금 같은 상황이면 어떤 의사도 공중보건의로 근무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일단 공중보건의로 근무하면 사학연금이 끊기는 사학연금법 개정이 이뤄져야 하고, 시니어 의사를 공중보건의로 채용할 수 있는 관련법 개정도 필요하다. 여기에 지자체에서는 공중보건의 거주환경을 개선하는 지원도 필요해 보인다”고 강조했다.
임 소장은 앞으로 공중보건시스템을 개선해 농촌지역 장애 발생률을 낮추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그는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누군가는 나서서 현행 제도를 바꿔야 한다”면서 “주변에 퇴직한 시니어 의사 중 5∼10%는 귀촌을 해서 봉사를 하고 싶어 한다. 다만 임금이나 거주환경 같은 현실적인 조건이 개선되지 않으면 쉽지 않은 일이다. 정부 부처가 관련 방안을 마련하도록 적극적으로 의견도 개진하고, 법 개정이 되도록 노력할 계획”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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