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정병혁 기자 = 지난 4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간호사들이 이동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내용과 관련이 없습니다.) 2025.03.04. jhope@newsis.com |
[서울=뉴시스]송연주 기자 = 부부가 불과 4개월의 시간차를 두고 모두 직장암을 진단받을 확률은 얼마나 될까? 이를 본 담당 의사는 10여년 외래 진료를 보면서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말을 무심코 내뱉었다. "아이고, 이를 어째."
16일 한미약품에 따르면 이 이야기는 최근 24회 '한미수필문학상' 시상식에서 장려상을 수상한 작품 '어느 부부와의 약속'(이수영 화순전남대병원 대장항문외과)에서 다뤄졌다.
그의 아내가 머뭇거리며 내민 소견서는 '직장암으로 의뢰드린다'는 내용이었고, 소견서의 주인공은 남편이 아닌 58세 여성의 것이었다. 아내였다.
그의 아내는 진행성 직장암이었다. 간이나 폐 등 다른 장기에 전이는 없고, 남편과 마찬가지로 항암방사선치료를 먼저 한 후 수술 할 계획이라고 저자는 환자에게 알렸다.
"저희 부부는 교수님께서 책임져 주셔야 합니다"라는 부부의 말에, 저자는 "걱정하지 말라"고 약속했다.
그러나 부부가 다녀간 지 얼마 안 돼 의과대학 정원 증원이 발표됐고 전공의들이 잇따라 사직서를 제출하면서 아내의 수술은 예정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일정이 두 번이나 연기되자, 그의 아내는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하고 다른 병원에서 수술을 받겠다며 수술을 취소했다.
이 때 저자는 어쩌지 못하는 의료현장 상황과 환자에 대한 죄책감 사이에서 견딜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고 토로했다. "비록 내가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환자의 신뢰를 무너뜨려버렸다는 사실이 견디기 힘들었다"며 "곪아 터진 시스템으로 야기된 문제를 개인이 해결하기란 불가능했고, 내가 노력한다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서 더 힘들었다"고 말했다.
환자와의 약속도 못 지켰는데, 전공의들에 동참하지 않고 병원에 남아 수술을 하는 게 맞는 건지 고민하는 시간의 연속이었다고 회상했다.
손을 꼭 쥐고 진료실을 나서는 부부의 뒷모습에서 애틋함을 느낀 저자는 "환자와 의사 사이의 신뢰 관계가 무너지는 현 사태가 하루 속히 해결되길 빈다"고 강조했다.
이 작품 외에도 이번 한미수필문학상에는 의료현장에서의 잊을 수 없는 사연과 이를 지켜본 의사의 고뇌가 담긴 작품이 많다.
▲아동학대 신고 의사의 무거운 책임감과 고뇌의 이야기(무거운 통화) ▲자신의 어머니처럼 마흔두살에 '유전성 조기 발병 알츠하이머'를 진단받은 젊은 환자를 보며 의사는 때로 치료자가 아닌, 기억의 동반자가 돼야 한다고 느낀 사연(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평생 엄격한 철칙으로 대장암 수술을 하며 환자를 살리던 외과의사가 결국 자신도 대장암으로 생을 마치며 교수로서의 죽음을 맞이한 이야기(의사는 죽어서 무엇을 남기는가) ▲엄마로 사느라 몰랐던 정욕을, 76세에 남자친구가 생긴 후에야 생전 처음 느꼈다는 할머니 환자를 보며 느낀 산부인과 의사의 만감(한 할머니의 잠 못 이루는 밤) ▲거스를 수 없는 죽음 앞에서 깊은 무력감과 죄책감을 느꼈던 전공의 시절의 경험(그녀의 마지막 편지) ▲하루 동안 신생아 집중치료실을 그리면서 소아과 의사 부족 현상과 전공의 사직 사태, 생명을 책임진 사람의 중압감을 풀어낸 이야기(혼자 하는 인계) ▲22살인데도 어릴 때부터 진료받던 소아청소년과를 다니는 '최고령 환자'와 배우자에 이어 그 최고령 환자(딸)와도 작별하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풀어낸 글(최고령 환자) 등이 있다.
한편, 한미수필문학상은 2001년 제정된 뒤 24년 동안 의사들이 의료 현장에서 겪은 다양한 경험과 감정을 기록한 수필을 시상한다. 한미약품이 후원한다. 올해는 총 129편의 작품이 접수돼 치열한 심사를 거쳐 14편의 수상작이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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