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거리 공대지미사일은 걸프전 당시 사용되어 명성을 떨친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처럼 개전 초 적 방공망을 제압하고 강력한 방공망에 둘러싸인 적의 전략 표적을 파괴하는데 쓰인다.
KF-21 전투기에 탑재될 국산 장거리 공대지미사일이 지상 표적에 명중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
걸프전과 이라크·아프간 전쟁에서 활약한 토마호크의 영향을 받아 미국에선 슬램(SLAM)-ER, 합동공대지 장거리미사일(JASSM), 영국·프랑스는 스톰 섀도·스칼프, 독일과 스웨덴은 타우러스(TAURUS), 노르웨이는 합동타격미사일(JSM) 등을 만들었다. 중국과 러시아도 이와 유사한 무기를 확보하고 있다.
세계 각국에서 새로운 개념의 장거리 공대지미사일 개발에 나서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한국도 KF-21 전투기에 탑재할 장거리 공대지미사일을 개발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의 군사적 특성이 유럽과는 매우 다른 만큼 강력한 관통력과 전자전 대응 능력 등을 갖추지 않는다면, 실질적인 위력을 보장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최신 기술·가성비 갖춘 미사일 등장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영국과 프랑스가 지원한 스톰 섀도·스칼프 미사일이 크게 활약하자 미국과 유럽에선 장거리 공격무기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신형 미사일 개발 프로그램이 잇따라 공개되고 있다.
현재 쓰이고 있는 미사일들은 2000년대에 등장한 기술에 토대를 두고 있으므로, 미래전에 대비하려면 새로운 개념과 기술을 반영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영국 공군 타이푼 전투기 옆에 스톰 섀도 장거리 공대지미사일들이 놓여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
가장 큰 특징은 다양한 용도로 쓸 수 있도록 하는 것과 플랫폼의 범위 확대다. 스톰섀도·스칼프 등은 전폭기에서 발사되어 지상타격만 했으나, 이젠 수송기·전투기·군함·다연장로켓 등에서도 발사되어 지상과 해상 표적을 공격할 수 있도록 개발되고 있다.
유럽 미사일 제조업체 MBDA는 지난해 말 파리에서 열린 유로나발(EURONAVAL) 전시회에서 새로운 미사일을 공개했다.
영국과 프랑스를 위해 개발되는 것으로 미래 순항/대함 무기(FC/ASW)로 불리는 미사일은 스톰 섀도·스칼프와 엑조세, 하푼 대함 미사일을 대체할 예정이다. 적 레이더 탐지 확률을 낮추는 설계와 더불어 탄두, 신관, 엔진 등의 시험도 진행하게 된다.
발사 플랫폼으로는 이탈리아 해군 FREMM 호위함과 영국 해군 26형 호위함, 이탈리아와 영국의 타이푼 전투기, 프랑스 라팔 전투기가 포함된다. 영국, 이탈리아, 일본이 추진 중인 전투기 개발 프로그램(GCAP)과 프랑스, 독일, 스페인의 미래 전투 항공 시스템(SCAF) 등 6세대 전투기 장착 가능성도 있다.
독일도 기존에 쓰던 타우러스 미사일을 개량한 타우러스 네오(NEO) 개발을 추진중이다. 사거리를 늘리고 정확도를 높이는 등의 성능향상이 적용될 전망이다.
미국에서도 신형 미사일 개발에 나서고 있다. 비용을 대폭 낮추고 생산기간을 단축해 미군의 무기 재고를 확충할 수 있는 미사일이 요구되면서 방산업계에서도 이같은 미사일을 만드는 모양새다.
미 공군 지상요원들이 F-16 전투기에 재즘(JASSM)을 장착하고 있다. 미 공군 제공 |
기존 장거리 공대지미사일은 1발당 가격이 수십억원에 달하는 것이 문제로 지적되어 왔다. 록히드마틴이 만드는 재즘 이알(JASSM-ER)은 1발당 가격이 75억원, 스톰 섀도와 스칼프도 55억원이 넘는다. 코로나19로 인한 공급망 교란과 인플레이션,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수요 증가 등에 따른 것이다.
막대한 예산이 필요하므로 사전에 대량 비축이 어렵다. 대규모 분쟁이 벌어지면, 분쟁 첫 주에 재고가 바닥이 나고, 이를 보충하는데 몇 년이 걸리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 때문에 유사시 장거리 공대지미사일을 적극적으로 쓰기도 어렵다.
록히드마틴은 기존 장거리 공대지미사일보다 매우 저렴하면서도 성능은 우수한 미사일을 만드는 데 초점을 맞췄다. 공통 다목적 운반체(CMMT·록히드 명칭 ‘코멧’)로 불리는 미사일은 15만 달러(2억1800만원)의 비용을 목표로 한다. 비용절감을 위해 스텔스 설계를 적용하지 않았다.
C-17·C-130 수송기와 F-35 스텔스 전투기 내부 무장창에 탑재할 수 있으며, 음속에 못미치는 속도로 800㎞까지 날아간다.
재즘을 비롯한 고가의 장거리 공대지미사일로 핵심 표적을 타격하면, 저렴한 CMMT를 대량 사용해서 지상 표적을 공격하는 방식이다.
미국의 안두릴도 바라쿠다 미사일을 선보였다. 최소한의 훈련을 받은 인력이 특수 장비 없이도 대량 생산할 수 있는 저비용 무기다. 부품 수와 복잡성을 줄이고 상업용 장비 사용을 확대한다.
바라쿠다 미사일은 바라쿠다-100·250·500으로 나뉜다. 250은 F-35 등에서 쓰일 수 있고, 500은 수송기에서 운용이 가능하다.
중국도 지난해 주하이 에어쇼에서 CM-98 공중발사 공대지미사일을 공개했다. 중국항공우주과학공업집단공사(CASIC)가 해외 시장을 고려해서 개발한 CM-98은 활주로, 격납고, 무기고, 지휘 센터 등을 공격한다.
스텔스 기술과 전파 방해 방지 기술, 유연한 비행 경로를 확보하는 넓은 비행 범위, 385kg의 탄두를 갖춰 파괴력을 낸다. 최대 사거리가 298㎞에 달한다.
◆한국은 괜찮을까
한국도 KF-21에 탑재할 장거리 공대지미사일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적의 방공망 밖에서 공격이 가능해 아군의 인명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장거리 공대지미사일이 없는 상황에서 공군이 종심타격을 하려면 전폭기, 공중급유기, 전자전기, 대공제압기, 호위 전투기, 공중조기경보통제기 등으로 구성된 공격편대군을 구성해야 한다. 장거리 공대지미사일을 사용하면 전폭기 단독으로 종심표적 공격이 가능하다. 작전 효율성이 훨씬 높아진다.
미 록히드마틴이 개발중인 공통 다목적 운반체(CMMT·록히드 명칭 ‘코멧’)의 상상도. 록히드마틴 제공 |
한국의 경우엔 다른 나라에선 중요하지 않은 부분이 중시된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스톰 섀도와 스칼프가 크게 활약할 수 있었던 것은 전선 일대에 지하 벙커나 강화 콘크리트로 만든 시설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스톰 섀도와 스칼프는 관통력이 강하지 않은 무기다. 러시아 해군 흑해함대 사령부나 항만 시설, 탄약고 등은 파괴할 수 있지만 방호력이 높은 지하시설 등은 부수기가 어렵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전선에 지하벙커나 강화콘크리트로 구성된 격납고 등을 갖추지 않았던 덕분에 위력을 과시할 수 있었다.
한반도는 유럽과는 사정이 다르다. 북한은 휴전선 일대와 내륙 지역에 수천개의 지하시설을 만들었다. 지하시설에는 수도권을 타격할 장사정포부터 탄도미사일 발사차량(TEL), 지휘소 등이 배치되어 있다. 특히 산악 지형을 뚫고 건설된 지하시설은 파괴하기가 쉽지 않다.
현무 계열 탄도미사일이 있지만, 관통력이 깊지 않다. 수십m 정도 빗나가도 강력한 탄두 위력에 힘입어 지하시설을 한동한 사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타격을 입힐 수는 있지만, 완전한 파괴는 어렵다.
이를 위해선 강력한 관통력을 갖춘 장거리 공대지미사일이 필요하다. 그런데 국내 개발중인 장거리 공대지미사일은 관통력이 2m에 크게 못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공군의 북한 지하시설 파괴작전에 상당한 제약을 초래할 수 있다. 관통력을 타우러스 수준으로 높이지 않는다면, 유사시 북한 장사정포와 핵·미사일 위협을 제압하기가 어려워질 우려가 있다.
안두릴에서 개발중인 바라쿠다 공대지미사일. 안두릴 홈페이지 캡처 |
전자전 공격에 대응하는 능력도 갖춰야 한다. 장거리 공대지미사일은 일종의 비행체다. 탄도미사일보다 속도가 훨씬 느리다. 낮은 고도로 비행하는 만큼 전자전 시도에 노출된다.
정밀유도무기가 전자전 공격을 받으면 제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실제로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군은 UMPK 활공폭탄으로 우크라이나 지상군에 큰 타격을 입혔는데, 우크라이나군이 전자전을 시도하면서 명중률이 크게 떨어졌다.
KF-21 전투기에 탑재될 국산 장거리 공대지미사일 모형이 전시되어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
한국 공군이 장거리 공대지미사일을 휴전선 이남에서 평양으로 발사했을 때, 비행시간은 15분 이상으로 추정되고 있다. 전자전 시도에 노출될 우려가 높다.
북한군은 오래 전부터 위성항법체계(GPS)를 교란하는 전자전을 휴전선 일대에서 진행해왔다. 이를 통해 남한을 압박하고, 무인기의 접근을 차단했다.
풍부한 경험을 지닌 북한군이 유사시 장거리 공대지미사일 접근을 저지하기 위해 전자전을 감행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대응하려면 전자전 상황에서도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시스템을 미사일에 내장해야 한다.
KF-21 전투기에 탑재될 국산 장거리 공대지미사일이 비행을 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
현재 개발 중인 일부 미사일은 전자전 상황에서도 성능을 발휘할 수 있는 기술을 적용하고 있다. 한국도 현재 개발 중인 장거리 공대지미사일에 이같은 기능을 포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장거리 타격력을 통한 전략적 억제능력 강화는 세계 각국에서 주목하는 글로벌 추세다. 다만 우크라이나 전쟁의 교훈과 한반도 특성을 감안해서 한국은 유럽보다 더 많은 기능을 확보해야 실질적인 위력을 지닌 공대지미사일을 갖게 된다. 북한 지하시설의 견고함과 강력한 전자전 시도를 무력화할 국산 장거리 공대지미사일을 개발해야 하는 이유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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