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관세정책에서 유연성을 보이겠다는 입장을 하루 만에 뒤집고 “굽히지 않겠다”며 강공 방침을 밝히면서 통상 마찰이 확대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CEO)의 테슬라조차 관세정책에 우려를 드러내는 상황에서도 유럽산 주류 제품에 20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엄포를 놓는 등 전면전을 불사할 태세다.
트럼프 대통령은 13일(현지 시간) 백악관에서 마르크 뤼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과 만나 “미국은 여러 해 동안 갈취당했고 더 이상 당하지 않을 것”이라며 “알루미늄이든 철강이든 자동차든 굽히지 않겠다”고 말했다. 전날 미할 마틴 아일랜드 총리와 진행한 회담에서 “(다음 달 2일 상호 관세 발표 전까지) 유연성을 유지할 것”이라고 한 발언과는 180도 달라졌다. ‘알루미늄에 대한 관세와 다음 달 2일 상호 관세에 변화 가능성이 있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도 “아니다”라고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언급하면서 “나는 김정은과 좋은 관계이며 무슨 일이 일어날지 보겠다”고도 말했다. 덴마크령 그린란드에 대해서도 임기 내에 반드시 병합하겠다고 호언장담했다.
관세정책을 놓고 트럼프 대통령이 하루 만에 입장을 바꾼 배경에는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의 260억 유로(약 41조 원) 관세 조치가 기폭제가 됐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EU는 미국의 철강·알루미늄 관세에 대한 1단계 보복 조치로 4월 1일부터 할리데이비슨 오토바이, 버번 위스키 등 미국을 대표하는 제품에 10∼5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4월 13일부터는 2단계 조치로 공화당 지지 성향이 높은 주(州)의 ‘민감 품목’에도 관세를 매기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해당 조치가 나오자마자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트루스소셜에 “미국을 이용하기 위한 목적만으로 태동된, 세계에서 가장 적대적이고 악랄한 관세 당국인 EU가 못된 관세를 부과했다”고 비난을 쏟아부었다. 그러면서 “즉시 철회되지 않으면 프랑스와 다른 EU 회원국에서 생산되는 모든 와인·샴페인·알코올 제품에 20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경고했다.
캐나다도 칼을 빼 들었다. 대미 철강·알루미늄 최대 수출국인 캐나다는 13일 미국산 상품에 보복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는 자국 제품을 구매하자며 국민들을 독려하고 나섰다.
트럼프발 관세 전쟁의 후폭풍은 미국 기업들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테슬라는 최근 미 무역대표부(USTR)에 서한을 보내 “특정 부품은 미국 내에서 조달하기 어렵거나 불가능하다”며 “수입 의존도가 높은 전기차와 배터리 공급망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을 고려해달라”고 읍소했다. 코발 등 미국 일부 주류 업체들은 EU가 관세를 부과하기 전까지 가능한 한 많은 물량을 유럽 시장으로 실어 나르기 시작했다. 철강·알루미늄 관세로 공급망에 타격을 입게 된 제너럴모터스(GM)의 메리 배라 CEO는 트럼프 대통령을 다급히 찾아가 600억 달러(약 87조 3800억 원)어치의 투자를 약속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관세 전쟁이 확전 양상이지만 극적인 타결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쇼맨십’을 중시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앞에서는 강공 모드로 나서지만 뒤에서는 다음 달 2일 상호 관세 전까지 개별 국가와 협의할 여지를 남기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도 13일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정상회담을 가진 뒤 “협상은 열려 있다”고 말해 이 같은 관측을 뒷받침했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의 관세정책이 경제에 미칠 영향이 제한적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재무장관을 지낸 스티븐 므누신은 “경기 침체에 빠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인공지능(AI) 등과 관련된 기술기업들의 주가가 그간 엄청난 지출에 힘입어 상승했기에 일부 하락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조정이므로 투자자들이 과잉 반응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윤경환 기자 ykh2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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