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 아파트 시공 현장. 기사 특정 사실과 무관함. 사진=권한일 기자 |
[뉴스웨이 권한일 기자]건설사들의 주요 현금 유입 창구인 분양 시장이 휘청이면서 중견사는 물론 대형 건설사들의 주머니 사정도 악화하고 있다. 시공 원가 부담을 해소하기 위해 공사비 증액 협상에 나선 현장들이 줄을 잇는 가운데 알짜 자산 매각을 추진하는 등 업계 전반에 걸쳐 유동성 위기 대응에 집중하는 모양새다.
현금 창구 막혀도 분양 안 하는 건설사들
14일 뉴스웨이가 한국부동산원 청약홈 분양공고를 집계한 결과, 올해 1월 1일부터 지난달 말까지 청약 접수를 진행한 민간 분양아파트는 총 19곳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46개 단지) 대비 58.7%(27곳)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건설사들이 신규 분양에 나서지 않는 건 최근 미분양 확산세가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정국 불안에 따른 분양 관심 저하와 여전한 고금리 문제 등이 도사리고 있어, 섣불리 분양공고에 나섰다가 낭패를 볼 수 있다는 판단이 상당 부분 작용한 결과로 풀이된다.
국토교통부 집계를 보면 지난 1월 말 전국 미분양 아파트는 7만2624가구로, 2012년(7만4835가구) 이후 12년 만에 처음으로 7만 가구를 넘어선 뒤, 증가세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 분양불(분양 실적에 따른 공사비 집행) 계약에 따른 미수금(받지 못한 돈)과 직결되는 '악성' 준공 후 미분양도 2만2872가구에 달해 12년여 만에 최대 규모로 불어난 상황이다.
반면 분양 선행 지표인 인허가 및 착공 물량은 지난 1년간 증가세에 있었던 만큼 최근 분양 감소세와 이렇다 할 연관성은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지난해 누적(1~12월, 국토부) 주택 착공은 30만5331가구로 전년 대비 26.1% 늘었고, 동기간 주택 인허가는 42만8244가구로 전년대비 0.1%만 줄었다.
통상 아파트 착공 후 6개월 이내에 분양공고를 내고 계약금과 중도금 유입에 따라 공사비 등 자금 순환이 이뤄지는 구조지만, 최근 분위기상 시행·시공사들이 불가피하게 이를 늦추고 있는 모습이다. 한 대형사 관계자는 "당초 계획상 4월 전에 해야 할 분양 일정들을 아예 하반기로 미루기로 했다"고 전했다.
실제로 현대건설은 경기 의정부에서 2월 공급 예정이던 '힐스테이트 회룡역 파크뷰' 분양을 4월로 연기했다. 한화 건설부문과 포스코이앤씨 컨소시엄이 시공하는 '고양 더샵포레나 원와이든'과 두산건설의 '두산위브더제니스 평내호평역 N49'도 4월 분양될 예정이다.
시공 원가율 관리·유동성 확보 '총력전'
영업이익이 급감하고 미수금이 불어난 상황에서 분양에 의존한 현금성 자금 유입마저 끊기다 보니, 건설사들은 서울 중심지에 있는 본사를 이전하거나 자회사를 포함한 주요 자산을 매각 또는 매물로 내놓는 등 '허리띠 졸라매기'에 나서고 있다. 또한 지난 2년간 이어진 발주처와의 공사비 증액 협상에도 적극 나서는 모습이다.
SK에코플랜트는 사명(社名)을 변경하고 몇 년간 환경·리사이클링 사업에 집중했지만, 차입금 급증과 수익률 저하로 몸살을 앓다가 지난해 폐플라스틱 자회사인 DY인더스와 DY폴리머를 130억원에 매각했다. 최근에는 주력 자회사인 SK오션플랜트 매각까지 추진하고 있다.
DL이앤씨는 본사가 입주한 사옥을 종로구 디타워 돈의문에서 강서구 마곡동 원그로브로 이전한다. 지주사인 DL이 지난해 말 'D타워 돈의문'을 NH농협리츠운용에 8953억원에 매각한 결과다. DL은 이 외에도 신사업으로 조명한 호텔사업을 접기로 하고 호텔 3곳(글래드 여의도, 글래드 코엑스, 메종 글래드 제주)을 매물로 내놨다.
GS건설은 수처리 자회사인 GS이니마의 지분 매각으로 현금 유동성을 강화할 방침이다. GS이니마는 2012년 인수한 알짜 자회사로 평가받는다. IB(투자은행) 업계에선 GS이니마의 경영권을 매각하면 약 1조5000억원에 달하는 현금이 유입될 것으로 보고 있다.
롯데건설은 전신인 롯데평화건업사 시절부터 45년간 본사로 사용한 서울 잠원동 사옥 부지에 대한 컨설팅을 진행 중이다. 정확한 자산 가치를 책정하고 향후 활용 방안을 구상하겠다는 취지로, 현재 관련 업체들에 입찰제안요청서(RFP)를 발송한 단계다. 입지적 장점 등에 미뤄 총 1조원에 달하는 평가액이 책정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건설업계는 아울러 연초부터 석 달여 동안 기수주 현장에서 발주처와 공사비 증액 협상도 매듭짓고 있다. 5대 대형사 가운데에는 ▲현대건설(필리핀 남부도시철도 공사·한화 567억원↑) ▲대우건설(성남 산성구역 재개발·198억원↑, 청주 사직1 재개발·683억원↑, 나이지리아 LNG 공정 한화 555억원↑) ▲DL이앤씨(고속국도 29호선 안성-성남 구간, 17억원↑) 등이 확인된다.
당분간 전반적인 분양 침체가 이어질 것으로 관측되는 만큼 건설사들의 최근과 같은 자산 매각과 공사비 재협상 등의 움직임은 확대될 것이라는 게 업계 중론이다. 이와 관련, 중견 건설사 관계자는 "그룹사의 지원이나 유동성 확보 또는 보증이 가능한 자산이 있는 몇몇 대형사들은 버티겠지만, 주택에 치우친 사업만 영위해 온 대다수 건설사들은 분양 단지 한 곳만 어그러져도 심각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권한일 기자 k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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