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수(오른쪽) 창업자가 건강상 문제로 복귀 1년 6개월만에 카카오 경영에서 물러난다. 경기 성남 카카오 판교아지트에 먹구름이 드리워져 있다. 성남=임세준 기자·브라이언임팩트 홈페이지 제공 |
카카오 창업자인 김범수 CA협의체 공동 의장 겸 미래이니셔티브센터장이 경영 복귀 1년 6개월만에 건강상의 문제로 다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카카오에 비상등이 켜졌다.
카카오는 대대적인 쇄신을 통해 제2의 혁신을 도모했지만 이를 진두지휘하던 김 창업자의 부재로 신속한 체질개선에 제동이 걸렸다. 한참 뒤늦은 인공지능(AI) 사업에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었으나, 이마저도 성장 동력이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김 창업자가 CA협의체 공동 의장 직을 사임하며, 카카오가 2023년 11월부터 운영했던 경영쇄신위원회도 활동을 중단하게 됐다. 김 창업자가 위원장을 맡아왔던 경영쇄신위원회는 그간 준법과신뢰위원회 신설, 인적 쇄신, 거버넌스 개편 등 그룹 쇄신의 기본 틀을 만들어 왔다.
카카오는 김 창업자가 공동 의장 직은 내려놨지만, 현재 진행 중인 인적·기술적 쇄신 등 경영 기조에는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김 창업자에게 당분간 집중적인 치료가 필요한 건강상의 문제가 발생한 만큼, 이번 사임이 국내외 경영 환경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더 빠른 의사 결정과 실행을 도모하기 위한 결정이라는 것이다.
카카오 관계자는 “김 창업자가 최근 방광암 초기 진단을 받아 당분간 수술, 입원 등 치료에 집중해야 할 상황”이라며 “이미 정 대표가 그룹 전체의 현안을 주도하고 있는 만큼 경영상의 변화는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창업자도 그룹의 비전 수립과 미래 전략을 그려가는 미래이니셔티브센터장 직책은 계속 수행한다.
이로써 김 창업자는 경영 복귀 1년 6개월만에 다시 일선에서 물러나게 됐다. 김 창업자는 문어발식 확장과 각종 리스크로 2023~2024년 카카오가 초유의 위기를 맞고 있을 당시 구원투수로 경영에 복귀했다. 당시 그는 “과거 10년의 관성을 버리고 원점부터 새로 설계해야 한다”며 “카카오 사명을 바꿀 각오로 변화를 이끌겠다”고 언급, 카카오의 쇄신과 미래 먹거리 사업 설계를 주도해왔다.
▶‘AI 지각생 꼬리표’ 떼기 시급한데…사업 성장 동력 늦어질라 우려=경영 복귀로 각종 의사 결정에 김 창업자의 의중이 깊이 반영됐던 만큼 그의 부재에 따른 우려도 커지고 있다.
무엇보다 올스톱 됐던 ‘AI 사업’에 이제 막 본격 시동을 건 상황에서, 또 다시 사업 동력에 힘을 잃을 수 있다는 불안감이 크다.
지난해 네이버를 비롯해 각종 빅테크 기업들이 AI 사업 주도권 싸움을 펼치는 사이, 사실상 카카오는 관련 사업 추진이 ‘올스톱’됐던 상태다. 2023년 자체 개발 거대언어모델(LLM)인 ‘코GPT 2.0’을 공개할 예정이었지만 연기한 것이 대표적이다.
김 창업자의 복귀 후 최근들어 챗GPT를 개발한 오픈AI와 협력을 발표하는 등 AI 기업으로 체질 개선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뚜렷한 성과가 가시화 되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대표적인 AI 비서 서비스 ‘카나나’는 올해 상반기 중에 정식 출시될 예정으로, 이마저도 글로벌 주도권을 쥐기 위한 ‘시간 싸움’에는 한참 뒤쳐져 있다는 평가가 적지않다.
쇄신을 위한 신속한 의사결정에도 김 창업자의 부재가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계열사 정리, 인수합병(M&A) 추진, 비핵심 사업 매각, 사업 투자, 경영 시스템 개편 등 중요 의사 결정을 내릴 권한을 내려야하는 상황에서 김 창업자의 공백 여파가 클 수 있다는 점에서다. 정 대표가 단독 의장으로 카카오를 이끌어도 굵직한 의사 결정을 내리기 위해선 김 창업자의 이해와 동의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
일단 카카오는 세간의 우려를 불식시키듯 체질 개선에 속도를 늦추지 않는 모양새다. 전날 ‘다음’ 서비스를 담당하는 사내독립기업(CIC) ‘콘텐츠CIC’의 분사를 결정하며, AI·카카오톡 서비스와 접점이 적은 포털 정리를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이는 카카오와 다음커뮤니케이션이 합병된 지 11년 만이다. 다음이 사내 독립기업(CIC)으로 분리한 지는 2년 만이다. 다음은 국내 웹 검색 시장에서 월평균 점유율이 2%대로 떨어지며 카카오 실적에 발목을 잡고 있다는 평가까지 나왔다. 조직 쇄신의 일환으로 분사를 통해 경쟁력 확보에 치중하는 전략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오는 26일 진행하는 정기주주총회에서 이사회 구성에 변화를 주며 인적 쇄신을 단행한다. 기존 이사회 소속이었던 권대열 CA협의체 ESG위원장이 이사회에서 물러나고, 신종환 최고재무책임자(CFO)가 사내이사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박혜림·권제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