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커머스 황제’의 딜레마
본업도 신사업도 커머스 올인하는데…
본업도 신사업도 커머스 올인하는데…
쿠팡은 공공연하게 ‘한국의 아마존’이 되겠다고 외쳐왔다. 시장 의구심을 받을 때 내세웠던 ‘계획된 적자’도 아마존 성장 전략에 빗댄 내용이다. 상품 보관부터 주문 처리·출하·결제·배송까지 모두 대행하는 서비스 구축을 위한 투자가 당장의 손실로 이어질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시장 장악력을 높여 마진을 개선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신사업 전략은 전혀 다르다. IT·클라우드 부문 서비스라는 이종 산업을 신사업으로 택한 아마존과 달리 쿠팡은 음식 배달과 명품 플랫폼 등 범(凡)유통 올인 전략을 펼치고 있다. 문제는 유통 비즈니스 특성상 고마진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미국 이커머스 시장에서 압도적인 점유율을 보유한 아마존 역시 이커머스 부문에선 한 자릿수 영업이익률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익은 아마존 웹서비스(AWS) 부문에서 벌어들인다. 반면 쿠팡에는 AWS와 같은 캐시카우 후보가 보이지 않는다.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 앞 신호등에 빨간불이 켜져 있다. (매경DB) |
이종 산업 vs 凡유통 올인
근본적 신사업 전략 차이
아마존과 쿠팡의 실적엔 비슷한 부분이 많다. 대표적인 게 본업과 신사업 매출 비중이다. 양 사 모두 큰 틀에서 8 대 2 매출 비중을 보인다. 아마존은 지난해 4분기 매출 1877억달러를 냈다. 북미 매출(1155억달러)과 북미 제외 글로벌 매출(434억달러), AWS 매출(287억달러)로 구성됐다. 매출 비중을 환산하면 이커머스 기반의 북미·글로벌 시장 본업 매출이 84.6%이고 AWS 신사업 매출이 15.2%다. 쿠팡의 본업과 신사업 간 매출 비중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해 4분기 쿠팡 실적 자료에 따르면 본업(Product Commerce) 매출 비중은 86.4%, 신사업(Developing Offerings) 매출 비중은 13.5%다.
하지만 매출의 질을 나타내는 수익성(마진) 지표는 정반대다. 아마존은 지난해 4분기 11.6% 두 자릿수 영업이익률을 낸 반면 쿠팡은 1.6%에 그쳤다. 100만원을 벌어야 1만6000원의 이익이 발생하는 구조다.
마진 차이는 신사업에서 비롯됐다. 아마존과 쿠팡 모두 본업 마진은 좋은 편이 아니다. 이커머스 산업 특성상 물류망 구축 과정에서 대규모 설비투자(CAPEX) 발생이 불가피하고 가격 경쟁도 지속되기 때문이다. 북미 이커머스 시장에서 40%대 점유율을 유지 중인 아마존도 별수 없다. 지난해 4분기 아마존의 북미 시장 이익률은 8%, 글로벌 시장 이익률은 3%에 그쳤다. 이커머스 수익뿐 아니라 이커머스 관련 멤버십·광고 수익을 모두 합산한 수치다. 아마존을 두 자릿수 이익률로 끌어올린
건 신사업 AWS의 힘이다. 지난해 4분기 AWS 영업이익은 106억달러다. 북미·글로벌 시장에서 발생한 본업 영업이익(105억달러)을 넘어서는 규모다. 매출 비중 13.5%에 불과한 AWS가 아마존 영업이익 절반을 책임졌다.
반면 쿠팡은 본업뿐 아니라 신사업도 저(底)마진 구조다. 지난해 4분기만 놓고 보면 신사업은 적자다. 쿠팡은 아마존과 달리 실적 설명자료에서 사업부별 영업이익은 공개하지 않는다. 조정 에비타만 확인이 가능하다. 지난해 4분기 쿠팡 신사업 부문 조정 에비타는 마이너스(-) 1억달러다.
물론 클라우드 시장에서 압도적 지위를 갖고 있는 AWS와 성장 궤도에 막 진입한 쿠팡의 신사업(쿠팡이츠·파페치·쿠팡플레이)을 같은 잣대로 평가하는 건 무리가 있다. 다만 근본적 신사업 전략의 차이는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아마존은 이종 산업인 IT·클라우드 부문을 신사업으로 택했다. 사업 초기 리스크는 크지만 점유율만 확보하면 영업 레버리지 효과를 누릴 수 있는 게 특징이다.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매출 증가율보다 영업이익 증가율이 더 크게 나타난다는 의미다. 반면 쿠팡의 전략은 ‘범유통 올인’이다. 본업인 이커머스와 유사한 분야를 신사업으로 택했다. 지속적인 출혈 경쟁이 불가피한 음식 배달 사업(쿠팡이츠)과 명품 플랫폼 사업(파페치)이 대표적이다. 본업과 시너지는 분명하지만 마진을 담보하긴 힘든 시장이다. 나이스신용평가도 ‘아마존과 쿠팡을 통해 본 한국 온라인 소매유통 시장 전망’ 보고서를 통해 우려했던 지점이다. 나이스신용평가는 “쿠팡이츠는 성장성은 양호하지만 수익성 확보 시기 예측이 어렵다”며 “중단기적으로 아마존의 AWS 같은 확실한 캐시카우로 자리매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고 평가했다.
본업과 신사업의 저마진 구조는 주가에도 영향을 미치는 모습이다. 미국 투자정보 업체 벤징가는 최근 “쿠팡의 마진은 업계 평균을 밑돌고 있다. 향후 잠재적인 수익성 도전을 마주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지난 1월에는 씨티그룹 존 유 애널리스트가 목표주가를 기존 31달러에서 28달러로 하향 조정하기도 했다. 3월 5일 기준 쿠팡 주가는 23달러다. 쿠팡도 시장 우려를 모르지 않는다. 지난해 4분기 실적 설명회를 진행하며 수차례 마진 확대를 외쳤다. 특히 본업과 신사업의 핵심 키워드인 쿠팡의 자본집약적 성장 전략이 틀리지 않았음을 강조했다. 김범석 쿠팡Inc 의장은 “비록 쿠팡의 투자는 자본집약적이지만, 쿠팡을 혁신의 최전선에 설 수 있도록 했다”면서 “쿠팡은 여전히 성장과 마진 확장의 초기 단계에 놓여 있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인당 구매 금액 변화 없어
절실해진 글로벌 시장 공략
아마존과 쿠팡의 차이는 또 있다. 본업의 경쟁 환경이다. 지표만 보면 쿠팡의 이커머스 성장은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추가적인 성장을 위해선 ① 점유율을 높이거나 ② 인당 구매액을 개선해야 한다. 현재로선 두 가지 모두 쉽지 않아 보인다.
북미 이커머스 전문 시장조사기관 이마케터에 따르면, 아마존은 전 세계 최대 이커머스 시장인 북미에서 점유율 39~40%를 유지 중이다. 반면 쿠팡은 지난해 기준 온라인 시장 내 점유율이 24~25% 정도로 추정된다. 한국투자증권은 올해도 쿠팡 점유율이 1~2%포인트 소폭 상승한 26% 수준일 것으로 보고 있다. 절대적인 시장 규모 차이도 존재하지만, 시장 내 점유율 차이도 제법 큰 편이다. 워낙 땅이 넓어 막대한 초기 투자비용을 감당할 경쟁자가 없는 북미와 달리 한국의 경우 전통 유통 대기업과 네이버 등의 추격이 거세기 때문이다. 추가적인 점유율 확보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다. 네이버는 이커머스 사업의 물류 브랜드 이름을 ‘네이버도착보장’에서 ‘네이버배송’으로 바꾸고 오늘배송과 내일배송, 희망일배송 등으로 서비스를 세분화할 예정이다. 특히 당일배송 서비스인 ‘오늘배송’을 주력으로 키울 방침이다. 오늘배송은 구매자가 오전 11시까지 상품을 주문하면 당일 도착을 보장하는 서비스다.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으로 한정된 오늘배송 서비스 권역을 올해 지방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관련 업계는 “본격적인 쿠팡 견제가 시작됐다”는 평가를 내린다.
그렇다면 인당 구매액을 늘릴 수 있을까. 쿠팡 실적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인당 평균 구매액(Net revenues per Product Commerce Active Customer)은 302달러를 기록했다. 전년과 동일한 수준이다. 과거 전년 대비 두 자릿수 인당 구매액 성장률을 보이던 때와 달리 둔화한 셈이다.
결국 쿠팡의 ‘성장 지속’을 위해선 한국을 벗어나 해외 시장 공략이 절실하다. 쿠팡이 대만 시장을 강조하는 배경이다. 2022년 하반기 대만 공식 진출을 선언한 쿠팡은 현지에서 2개 물류센터를 운영한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로켓배송, 직구 서비스를 대만 소비자에게 제공하고 있다. 최근엔 유료 멤버십 로켓와우도 선보였다.
쿠팡은 대만의 장기 성장성을 높게 평가 중이다. 인구 밀도가 한국만큼 높아 빠른 배송이 가능하고, 이커머스 시장이 이제야 구축 단계라는 점 때문이다. 다만 수익화 시점은 불투명하다. 당장 대만 사업 수익성조차 정확히 파악하기가 어렵다. 실적자료 등에 별도 언급이 없다. 김범석 의장이 어닝콜을 통해 “(대만 로켓배송 관련) 4분기 순매출(Net revenue)이 전분기 대비 23% 성장했다”고 밝힌 내용이 전부다. 한국투자증권은 최근 리포트에서 쿠팡의 현재 대만 시장 수익성을 영업적자로 추정했다.
검색 조작 → 소비자 신뢰 하락
반복되는 근로 환경 이슈도 부담
소비자와 납품 업체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 조사 과정에서 쿠팡의 폐해가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다. 공정위는 지난해 6월 쿠팡이 알고리즘을 조작해 PB(자체 브랜드)·직매입 상품 등 자사 상품 순위를 부당하게 높이고 임직원을 동원해 PB 상품 후기를 늘렸다며 시정명령과 1628억원의 과징금 처분을 내렸다.
공정위 조사에 따르면 쿠팡은 2019년 2월부터 2023년 7월까지 6만4520개의 직매입·PB 상품의 검색 순위를 조작했다. 검색 결과는 구매 전환율과 가격·후기 등 데이터를 기반으로 결정되지만, 쿠팡은 이를 무시하고 자사 상품을 인위적으로 상위에 배치했다는 게 공정위 설명이다. 공정위가 확보한 쿠팡 내부 문건에 따르면, 자체 상품 검색 조작을 중단하면 평균 판매 가격이 낮아진다는 분석이 나와 있다. 3년 넘게 이뤄진 쿠팡의 검색 순위 조작으로 상품의 평균 판매 가격이 상승했다는 것. 결과적으로 소비자들은 쿠팡 알고리즘 조작으로 비싼 가격에 상품을 구매해야 했고, 다른 경쟁 업체 상품을 발견할 기회도 줄어든 셈이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쿠팡이 시장을 장악하면서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 점점 줄고 있다. 결국 독점 폐해가 현실화된 것”이라며 “이는 쿠팡을 향한 소비자 신뢰도 하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꾸준히 언급되는 물류센터와 배송 기사 근로 환경 문제도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쿠팡의 해명에도 정치권을 중심으로 근로 환경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계속 터져나온다. 사실 여부와 별개로 노이즈 자체가 쿠팡 신뢰도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는 게 관련 업계의 공통된 목소리다.
쿠팡은 지난 1월 국회에서 열린 ‘쿠팡 택배노동자 심야 노동 등 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청문회’에서도 질타를 받았다. 청문회의 최대 쟁점은 쿠팡의 장시간 야간 노동과 산업재해 실태였다.
김태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5년간 쿠팡에서 일하다 숨진 근로자 19명 중 야간 근로자가 12명으로 60%를 넘는다”며 “한국 평균 산업재해율이 0.6%인데, 쿠팡의 산업재해율은 2.12%다. 100명 중 2명 이상이 항상 다친다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청문회에 참석한 강한승 쿠팡 대표는 심야 배송으로 커지는 근로 강도를 두고 “사회적 대화를 통해 도출된 결론을 성실하게 이행하겠다”고 밝혔다.
[최창원 기자 choi.changwon@mk.co.kr, 조동현 기자 cho.donghyu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00호 (2025.03.06~2025.03.1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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