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300] 상법 개정안에 與 "빈대 잡자고 초가 삼간 태워" VS 野 "공정시장 첫 걸음"
[서울=뉴시스] 고승민 기자 =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23회 국회(임시회) 제1차 본회의에서 상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재석 279인, 찬성 184인, 반대 91인, 기권 4인으로 가결되고 있다. 2025.03.13. kkssmm99@newsis.com /사진=고승민 |
거야(巨野)가 또 한 번 법안을 밀어붙여 통과시켰다. 이사회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주주까지로 확대하는 내용의 상법 개정안이다. 경제계와 여당이 고소·고발 남발과 경영권 위협 등을 우려해 반대했지만 중과부적이었다.
여당은 정부에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건의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거부권 행사에 "직을 걸고 반대할 것"이라고 나선 가운데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장고에 들어갔다.
국회는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에서 본회의를 열어 상법 개정안을 야권 주도로 처리했다. 본회의를 통과한 상법 개정안은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회사와 주주'로 확대하고 △상장회사의 전자 주주총회를 의무화하는 등의 내용을 담았다. 당초 민주당이 당론으로 삼았던 △대규모 상장사 집중투표제 의무 적용 △대규모 상장사 감사위원 분리 선출 확대의 내용은 기업의 우려를 들어 제외됐다.
재계와 여당은 상법이 개정될 경우 주주들의 배임죄 고소·고발이 남발돼 기업 의사결정의 효율이 떨어지고 외국계 헤지펀드 등이 경영권을 위협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상법을 개정하지 않고도 자본시장법(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개정만으로도 소액주주 보호조치가 마련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야권은 상법을 통한 이사회의 주주 이익 보호 의무 강화가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고 기업 경쟁력을 높일 것이라고 맞섰다. 상법 개정이야말로 국내 증시에서 탈출하는 국내외 투자자들을 돌려세울 방법이라는 주장이다.
상법 개정은 지난해 민주당이 금투세(금융투자소득세) 폐지를 결정하면서 논의에 불이 붙었다. 금투세를 도입하기에 국내 증시는 담세 체력이 부족한 만큼 이를 해결하기 위한 상법 개정이 우선이라는 목소리들이 힘을 얻었다.
이후 상법 개정안은 민주당 당론으로 채택돼 당내 논의에 속도를 냈고 지난달 2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야권 주도로 전체회의를 통과, 본회의로 직행했다. 다만 우원식 국회의장이 여야 합의를 촉구하며 한 차례 본회의 상정을 미뤘었다. 우 의장은 지난달 27일 기자회견을 통해 "여야에 협의할 시간을 좀 더 주겠다는 판단"이라고 밝혔다. 본회의 바로 다음날인 지난달 28일 여야정이 모이는 국정협의회가 예정돼 있었단 점도 영향을 줬을 것으로 풀이됐다. 그러나 끝내 여야 간 합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이날 표결 직전까지도 여야는 상법 개정안을 두고 첨예하게 대립했다. 최은석 국민의힘 의원은 본회의 반대 토론에 나서 "작년 초까지 대기업의 대표이사로서 기업 경영 일선에서 직접 일해왔던 사람"이라며 "기업에서의 근무 경험을 바탕으로 개정안을 평가한다면 한마디로 기업 경영 현실을 전혀 모르는 초보자들이 만든 위험한 탁상공론의 결과물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새로운 변화, 미래 신사업을 연구하면서 필요하다 판단되면 기업의 이사와 경영자는 위험을 감수하고하도 과감하고 신속하게 실행해야 한다. 구성원을 공평하게 대우하는 기업이나 혁신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나"라며 "전체 주주 이익을 공평하게 대우하면서, 모든 주주를 만족시키는 기업의 혁신은 애당초 불가능하다. 그런데 왜 기업에게 그것을 강요하나"라고 했다.
최 의원과 함께 반대 토론에 나선 같은당 유상범 의원은 "상법 개정안은 상장 대기업 계열사 간 합병, 물적분할 등에서 대주주가 부당하게 회사에 대한 지배력을 확장하고 소액주주의 이익이 침해되는 것을 방지하겠다는 것"이라며 "이를 직접 규율하고 있는 자본시장법에서 소액주주 보호를 위한 관련 보호조치를 마련하는 것이 제대로 된 해결책"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부와 여당이 개선책을 마련한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발의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논의 중인데 무리하게 일반법인 상법에서 이사의 주주충실 의무를 규정하는 개정안을 일방적으로 강행 처리하는 것은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이소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반대토론에 나서 "이번 개정안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주식회사 제도를 운영하는 나라로서는 너무 당연한 원칙을 선언하는 내용"이라며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선 알짜 사업부를 떼 내 중복 상장하고 핵심 계열사를 총수의 회사와 헐값에 합병하고 의도적으로 주가를 떨어뜨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심화될수록 단기차익을 노리는 투자자들은 자주 나타날 수밖에 없다. (기업이) 행동주의 펀드 공격을 막고 싶다면 상법 개정에 찬성해 장기투자자들에게 매력적인 주주환원책으로 주가를 올리면 된다"며 "탈출하는 국내외 투자자들을 돌려세울 방법은 투명하고 공정한 주식시장을 만드는 것이고 첫걸음이 바로 이 상법 개정안"이라고 했다.
오기형 민주당 의원도 찬성 토론에 나서 "지난해 금융위원회를 중심으로 자본시장 밸류업에 관한 방안을 정부가 발표했다. 여기에서 소액주주 보호를 위한 상법 개정안을 국가의 과제로 설정했다"며 "윤석열 대통령도 이야기를 했고 최상목 부총리도 상법 개정안을 이야기했다. 윤 대통령 등이 이야기할 때는 선(善)이고 똑같은 내용을 민주당이 주장하면 반대하나"라고 말했다.
오 의원은 이어 "(상법 개정안은)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라며 "상법 개정안은 이사들이 전체 주주를 위해 판단하고, (판단에) 잘못된 행동이 있다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그 기본원칙을 선언하는 내용"이라고 했다.
'민원 사주 의혹'이 제기된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장에 대한 사퇴 촉구 결의안, 해당 의혹과 관련한 감사요구안 등도 여당의 반발 속에 통과됐다. 또 두 달 여 간의 활동 내용을 담은 '윤석열 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 조사 결과보고서'도 야당 주도로 채택됐다.
한편 비쟁점 법안 40여건은 무리없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정서적 또는 행동상의 어려움을 겪는 학생에게 상담·치료를 권고하고 학습지원을 제공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초·중등교육법 개정안 △협동돌봄센터를 아동복지시설의 한 유형으로 규정해 제도화하는 내용의 아동복지법 개정안 △모범업소 지정제를 폐지해 식품접객업소에 대한 위행평가 제도를 위생등급 지정제로 일원하하는 내용의 식품위생법 개정안 등이다.
아울러 한미동맹이 한반도 평화를 유지하는 기반이자 세계 평화와 번영의 핵심축임을 재확인하는 내용의 한미동맹 지지 결의안도 여야 합의로 통과됐다. 여야정 국정협의회를 통해 사전에 합의됐던 기후위기 특별위원회 구성의건, 2025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지원 특별위원회 구성의 건도 모두 가결됐다.
반면 국회 연금개혁 특별위원회 구성안은 상정이 불발됐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의 문구 하나, 제가 보기에는 아주 미세하고 비본질적 문제 때문에 처리가 불발됐다"며 "여야 합의의 이행이 이렇게까지 진통을 겪는 상황이 매우 유감스럽고 안타깝다"고 했다.
김성은 기자 gttsw@mt.co.kr 안재용 기자 poong@mt.co.kr 차현아 기자 chacha@mt.co.kr 김지은 기자 running7@mt.co.kr 이승주 기자 gree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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