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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교석의 남자의 물건] [9] 남자가 사랑하는 색상 버건디

조선일보 김교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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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건디색
버건디색 가방과 머플러를 한 남성./핀터레스트

버건디색 가방과 머플러를 한 남성./핀터레스트


‘보물섬’ ‘지킬 박사와 하이드’의 작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은 내가 아는 한 가장 남자다운 작가다. 어려서부터 폐 질환에 시달렸음에도 불구하고 카누 여행을 즐긴 모험가였다. 부유한 집안의 가업을 잇기 바라는 부모님에게 작가로 살겠노라 선언하고 변호사 자격증을 딴 자기주도적인 청년이었다. 여행지에서 만난 미국인 아내에게 반해 대서양과 미 대륙을 오가는 뜨거운 사랑 끝에 행복한 가정을 꾸린 상남자이자, 열두 살 의붓아들과 지도놀이를 즐기던 자상한 아빠였다. 그 지도놀이의 이야기가 모험 가득한 ‘보물섬’의 시작이다. 그 후 아내와 6년간 남태평양 일대를 요트로 항해하다 사모아섬에 정착했다. 자신이 쓴 소설만큼이나 신비로운 모험을 즐기는 낭만적인 삶을 살았다.

무엇보다 그는 자신이 생각하는 소중한 가치를 실천한 진짜 남자였다. 원주민 이웃과 동등한 관계를 맺었고 제국주의, 인종차별 등을 바로잡기 위해 애썼다. 그가 죽자 사모아의 추장들은 자신들의 성지에 안장하고 묘비를 세워 그를 기렸다.

스티븐슨의 남자다움에 빠져 있던 어느 날 “남자가 버건디나 새벽을 사랑하듯 배를 사랑했다”는 한 문장에 꽂혔다. 새벽이나 배는 대충 알겠다. 그런데 남자라면 당연히 버건디를 사랑한다니 새로운 가르침이었다. 실은, 버건디가 지금처럼 색상 이름으로 쓰인 건 1920년대 이후다. 그가 살던 19세기 후반 영국에서 버건디란 와인을 가리켰다. 버건디라는 말 자체가 프랑스의 와인 산지 부르고뉴의 영국식 발음이다. 그 무렵 영국 상류층은 프랑스산 와인에 흠뻑 빠져 있었다. 프랑스 여행을 즐겼던 스티븐슨 또한 ‘와인은 병에 담긴 시’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와인 애호가였다.

애호와 오해가 겹쳐진 버건디를 사랑해야 했다. 다행히 버건디는 너무 멋을 내지 않으면서도 꼿꼿한 존재감이 드러나는 신사에게 어울리는 색이다. 전통적으로 품위, 권위, 부와 계급을 표현할 때 주로 쓴다. 하버드 등 유서 깊은 명문대의 문장이나 유니폼 색상에 버건디를 많이 쓰는 이유다.

버건디의 가장 큰 장점은 쉽다는 데 있다. 남자 옷장의 9할을 차지할 블랙, 그레이, 네이비, 아이보리, 올리브, 카키, 브라운 심지어 청바지와도 잘 어울린다. 정장을 주로 입는다면 버건디색 넥타이는 ‘만능템’이다. 혹시나 여전히 부담스럽다면, 소재 특성상 풍부한 발색과 따뜻함이 뒷받침되는 니트류를 추천한다. 특히 버건디 니트 목도리는 온 가족이 함께 활용할 수 있고, 오래되어도 낡았다기보다 세월의 이야기가 더해진 깊은 맛을 내는 물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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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교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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