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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 문명 교류’ 연구 정수일 교수 별세…향년 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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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한겨레와 인터뷰할 때 정수일 소장의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2014년 한겨레와 인터뷰할 때 정수일 소장의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문명교류 연구에 독보적 업적을 쌓은 정수일 문명교류연구소장(전 단국대 교수)이 24일 밤 타계했다. 향년 91.



정수일 소장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문명교류학자로, 이슬람 역사에 대한 해박한 이해를 바탕으로 평생 동서 문명의 접점인 실크로드 연구, 한국과 세계 문명의 교류사를 천착하며 학계와 대중에 큰 영향을 미쳤다.



1994년 ‘신라·서역 교류사’를 시작으로, ‘세계속의 동과 서’(1995), ‘문명의 루트 실크로드’(2002), ‘문명 교류사 연구’(2002), ‘한국 속의 세계’(2005), ‘실크로드 문명기행’(2006), ‘문명담론과 문명교류’(2009), ‘문명의 요람 아프리카를 가다’(2018), ‘우리 안의 실크로드’(2020) 등 20여권의 저서를 썼다. 또 ‘이븐 바투타 여행기 1, 2’(2001), ‘혜초의 왕오천축국전’(2004) ‘오도릭의 동방기행’(2012) 등을 번역했다.



1934년 중국 지린성 옌볜에서 태어난 정수일은 연길고급중학(현 용정고급중학교)를 거쳐 조선족 학교 졸업생으로는 최초로 1952년 중국 베이징대(아랍어과)에 입학해 수석으로 졸업했다. 그 뒤 중국 정부 국비 장학생으로 1955년부터 4년간 이집트 카이로대학에 유학해 아랍어 문학을 공부했다. 이어 1958년부터 1963년 모로코 주재 중국 대사관에서 외교관으로 활동했다. 당시 그를 눈여겨본 저우언라이 총리가 혼담을 주선하기도 했을 만큼 촉망받는 인재였다. 중국어와 아랍어는 물론, 영어·페르시아어·일본어·말레이어·프랑스어·러시아어·스페인어 등 10여개의 외국어를 구사했다.



1963년에는 아내와 함께 북한으로 들어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적을 취득했다. 이후 평양국제관계대학과 평양외국어대학 교수를 역임하고 1974년부터 대남 특수공작원으로 선발돼 교육을 받았다. 이후 10년간 튀니지대 사회경제연구소 연구원, 말레이시아 말레이 대학 이슬람아카데미 교수 등을 거치며 10년간 해외에서 활동하다가 1984년 ‘무함마드 깐수’라는 아랍인으로 신분을 속이고 남한에 들어왔다.



한국에 정착한 이후 정 소장은 학문에 대한 열정으로 연구자로서의 삶을 선택했다. 1988년 단국대 대학원 사학과 박사과정에 입학해, 1990년 ‘신라와 아랍·이슬람제국 관계사 연구’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학위 취득 후 단국대 초빙교수로 임용돼 강의와 저술 활동에 힘을 쏟았다. 그러다 1996년 7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검거됐는데, 재판 과정에서 그가 ‘무함마드 깐수’가 아니라 북한 간첩 정수일이라는 사실이 밝혀져 한국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고인은 12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 2000년 광복절 특사로 출소했다.



정 소장은 이후 실크로드 연구에 집중하면서 동서 문명의 교류가 인류사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에 주목했다. 그는 한국사에서 실크로드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조명하며, 이를 통해 한국 문명이 단순히 동아시아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세계 문명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음을 입증하려 했다.



그는 실크로드를 단순한 교역로가 아니라 인류 문명의 통로로 보았다. 비단과 향신료만이 아니라 종교, 과학, 예술, 철학 등이 이 길을 통해 교류되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를 통해 그는 한국 문명을 세계사적 관점에서 새롭게 해석하는 작업을 수행했다. 20여권에 이르는 그의 저작들은 문명교류학을 하나의 독립된 학문으로 정립하는 데 기여했으며, 한국 학계뿐만 아니라 대중에게도 널리 읽혔다.



정 소장은 학문 연구뿐만 아니라 후학 양성에도 힘을 기울였다. 2006년부터 매년 실크로드학교를 열어 우즈베키스탄·투르크메니스탄·이란·튀르키예(아나톨리아)·요르단·시리아·레바논 등을 현장 답사했으며, 2018년에는 한국문명교류연구소를 설립해 실크로드와 문명교류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을 지원했다. 그는 후학들에게 문명 간의 교류와 융합이 역사의 핵심 동력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보다 폭넓은 역사적 시각을 가질 것을 독려했다.



정 소장은 생애 말년까지도 연구와 집필을 멈추지 않았다. 부인 윤순희씨는 25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고인이 돌아가시기 직전까지도 밤잠을 설쳐가며 후학들을 위해 아랍어 서적을 번역하고 계셨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빈소는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22호실, 발인은 27일 오전 8시30분이다.



조일준 선임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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