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카야 칼라스 유럽연합(EU) 외교안보 고위대표, 도날드 투스크 핀란드 총리가 지난 3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EU 정상들간 비공식 회담에 참여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을 둘러싼 논의가 미국과 러시아 주도로 속도를 내는 가운데 유럽 국가들이 긴급 정상회의를 연다.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유럽이 협상 테이블에서 사실상 배제될 처지에 놓인 데 대해 대응책을 논의하고 목소리를 낼 것으로 보인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17일(현지시간) 파리에 유럽 정상을 초청해 비공식 긴급회의를 열기로 했다. 회의에는 영국과 독일, 폴란드, 이탈리아 등 정상과 마르크 뤼터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사무총장,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 등이 참석한다.
이번 회의에선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취임을 기점으로 유럽에 대한 미국의 접근 방식이 급변한 상황과 이에 따른 유럽의 안보 위험 등에 대해 논의할 것으로 전망된다. 유럽 국가들은 우크라이나가 일방적으로 불리한 종전 협상에 내몰리면, 장기적으로 유럽 전반의 안보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구체적으로는 종전 협상에서 유럽을 사실상 배제하려는 듯한 트럼프 정부에 대한 대응 방안,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문제, 파병안을 포함한 전후 우크라이나 안보 보장안이 논의 대상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이 지난 14일(현지시간) 뮌헨안보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
로이터에 따르면 미국은 지난주 유럽 동맹국들에 외교 문서를 보내 종전 협상이 이뤄질 경우 유럽은 우크라이나의 안전 보장에 어떤 부분을 기여할 수 있는지 제시해달라고 요청했다. 우크라이나에 파병할 수 있는지, 유럽 주도 평화유지군 규모는 얼마나 가능한지, 이에 따라 미국에 원하는 지원 요건은 무엇인지 등 구체적 질문이 문서에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은 종전 협상 과정에서 우크라이나의 안전 보장에 관해 유럽의 책임을 강조해왔다. 이번 문서 등을 토대로 미국은 유럽에 ‘안보 청구서’를 내밀 것이란 관측이 다수다. 미국의 우크라이나·러시아 특사인 키스 켈로그는 전날 뮌헨안보회의에서 유럽을 향해 “협상 테이블 배석 여부를 불평할 게 아니라, 구체적 제안과 아이디어를 마련하고 방위비를 증액해야 한다”고 압박하기도 했다.
미국과 러시아 당국자들이 오는 18일 고위급 회담 등 본격적인 실무 협상까지 예고하자, 유럽 내에선 방위비 규모를 늘리는 등 대응책 마련에 착수하는 움직임도 나타난다. 블룸버그통신은 유럽이 방위비 지출을 늘리는 등 새로운 군사 강화 정책을 준비하고 있으며, 이달 23일 독일 총선이 끝나면 발표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AP연합뉴스 |
아날레나 베어보크 독일 외교장관은 뮌헨안보회의 참석 중 인터뷰에서 “우리는 과거에 본 적 없는 대규모 패키지를 출시할 것”이라며 “유로존 재정 위기, 코로나19 위기(에 대응했던 것과) 비슷하게 이제 유럽의 안보를 위한 금융 패키지가 있다. 가까운 미래에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는 영국이 우크라이나에 평화유지군을 배치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핀란드나 크로아티아 등 일부 국가 정상들은 EU가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목소리를 내려면 특사를 지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폈다. 켈로그 특사처럼 유럽 차원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협상 과정에 참여할 창구가 필요하다는 취지다. 로이터 통신은 여전히 많은 유럽 당국자들이 트럼프 행정부가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갖고 있는지, 이를 주도하는 주요 인물이 누군지 알아내려고 애쓰며 당혹감을 표하고 있다고 전했다.
유럽의 한 외교관은 “미국이 2차 세계대전 이후 자신들이 만든 질서를 깨고 싶어한다는 건 이제 분명해졌으며, 여기엔 EU 파괴도 포함된다”며 “우리는 이에 대비해 우리의 태도를 완전히 바꿔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긴급회의에서 도출된 유럽 국가 차원의 메시지는 스타머 총리가 이달 내 트럼프 대통령과 회담을 위해 미국을 방문할 때 전달할 것으로 전해졌다.
김희진 기자 h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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