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300] 한미·한미일 외교당국 공동성명, '北과 대화' 형식적 문구도 없어…北에 대화 위해 원칙 깨지 않겠단 의지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15일 첫 한미·한미일 외교장관회의 공동성명에 북한과의 대화를 명시하지 않은 것은 대화 자체만을 위해 북한에 미리 양보할 의사가 없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풀이된다. 사진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1일(현지 시간) 아들을 안고 워싱턴 백악관 집무실의 '결단의 책상'에 앉아 일론 머스크 정부효율부(DOGE) 수장의 발언을 듣고 있다. / AFP=뉴스1 |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첫 한미·한미일 외교장관회의 공동성명에 북한과의 대화를 명시하지 않은 것은 대화 자체만을 위해 북한에 미리 양보할 의도가 없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분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대화 가능성은 열어뒀지만 미 국무부는 '북한의 비핵화' 원칙을 재확인하며 사실상 대화의 전제조건을 달았다. 북한은 미국 등 서방국가로부터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길 원해 미북 정상회담이 조기에 성사되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공동성명에서 미국이 북한과의 대화 의지를 공식화하지 않은 것은 주목할 대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김정은과 다시 연락을 취해보겠느냐'는 질문에 "그럴 것(I will)"이라고 답했다. 구체적이고 분명한 계획에 따른 답변은 아니었지만 김 위원장과의 정상회담 가능성을 열어뒀던 것이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왼쪽)이 15일 독일 뮌헨안보회의(MSC) 참석을 계기로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가운데), 이와야 다케시 일본 외무대신(오른쪽)과 한미일 외교장관회의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사진=외교부 |
통상 미국에 새로운 행정부가 들어서면 형식적으로라도 북한과 대화 의지를 표명한 바 있다. 집권 기간 대북 강경노선을 채택했던 조 바이든 대통령도 2021년 5월 행정부 출범 4개월 만에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북한과 대화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당시 바이든 대통령은 정상회담 이후 기자회견에서 성 김 대북정책특별대표 임명 사실을 즉석에서 공개하면서 북한과의 대화가 준비됐다고 했다.
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에도 "2018년 판문점 선언과 싱가포르 공동성명 등 기존의 남북·북미 간 약속에 기초한 외교와 대화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 정착을 이루는 데 필수적이라는 공동의 믿음을 재확인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번 한미 외교장관회담 후 미 국무부는 '루비오 장관은 트럼프 행정부의 대화에 대한 개방적 입장을 표명했다'는 메시지만 내놨다.
다만 "단기적으로 올해 트럼프 대통령의 친서 외교 또는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특사 파견 가능성이 있다"면서 "미북 정상 간 회동은 어렵지만 친서 외교의 가능성은 유효할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외교당국도 미북 대화 가능성을 예의주시하고 현재와 같이 미국과 상시 소통체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2018년 12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만찬을 겸한 회담을 가지는 모습. / AP=뉴시스 |
이번 한미일 3국 공동성명에서 기존의 대중국 견제 입장을 넘어 '대만의 국제기구 참여 지지'를 표명하는 대목도 눈에 띈다. 3국은 그동안 중국을 겨냥해 '대만해협에서의 힘과 강압에 의한 일방적 현상 변경 시도에 반대한다'고만 밝혔다. 중국은 '하나의 중국' 원칙에 따라 다른 나라에서 대만 관련 문제를 언급하는 것을 '내정 간섭'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공동성명 작성에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한 대중국 견제 정책과 중국과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영유권 분쟁을 벌이는 일본의 의중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나 일본처럼 중국과 큰 분쟁이 없는 한국으로선 중국에 우리 정부의 입장을 잘 설명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무역협회의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1·2위 교역국은 각각 중국(2729억달러)과 미국(1999억달러)이었다. 현재 트럼프 대통령이 자국의 무역수지 적자를 줄이기 위해 자동차·반도체 등에도 추가 관세 부과를 예고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과 외교적 마찰로 인한 경제 제재가 이어질 경우 우리 경제에 막심한 피해가 예상된다.
한 외교안보 전문가는 "무역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 미칠 타격 등을 고려해 중국에 우리 입장을 잘 설명해야 할 것"이라며 "미중 관세 보복전이 일어나는 상황에서 '하나의 중국' 입장을 존중한다는 한국이 양안 문제를 거론하며 불필요한 논란을 만들 필요가 없는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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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일 3국, 강경한 중국 견제 메시지 "대만의 국제기구 참여 지지"
조태열 외교부 장관이 15일 뮌헨안보회의(MSC) 참석 계기로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 및 이와야 다케시 일본 외무대신과 한미일 외교장관회의를 하고 있다. / 사진=외교부 |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 한미일 외교장관이 처음 만나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란 목표를 재확인하고 대북 제재 등을 강화하기로 했다. 한미 양자회담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반도체·자동차 등 한국의 주력산업에 관세 부과를 예고한 데 대해 우리 정부는 한미 협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미국 측은 탄핵정국에도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체제에 신뢰를 보냈다.
3국 장관은 이날 공동성명을 통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 따른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재확인했다"며 "유엔 안보리 결의의 위반·회피에 단호히 대응해 국제 대북 제재 레짐을 유지·강화하고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에 자금을 조달하는 불법 활동을 중단시키기 위해 대북 압박을 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미국은 '핵 역량'을 포함한 미국의 군사력을 바탕으로 한 한국과 일본에 대한 방위 공약에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기존 확장억제(핵우산) 정책을 이어가겠다는 의미다. 핵우산은 유사시 북한이 한국이나 일본에 핵공격으로 위협하거나 핵능력을 과시할 때 미국의 핵무기를 사용해 전쟁 억제력을 확보하는 것을 말한다. 3국은 안보협력과 군사역량 증강 필요성에도 공감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5일(현지시간) 베이징 인민 대회당에 앉아 있는 모습. / AFP=뉴스1 |
한미일 외교장관회의에선 강경한 대(對)중국 견제 메시지도 나왔다. 3국은 이번 공동성명에 '대만의 적절한 국제기구에 의미 있게 참여하는 데 대한 지지를 표명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대만해협 등에서의 일방적인 힘 또는 강압에 의한 현상변경 시도를 반대한다'는 기존 입장을 뛰어넘는 내용이다.
3국의 성명에 양안(兩岸·대만과 중국을 뜻하는 표현) 문제 거론을 넘어 유엔 등에 가입하지 못하는 대만의 입장을 지지한 것은 사실상 처음이다. 관련 문구 작성에는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국 강경책은 물론 중국과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에서 영유권 분쟁을 벌이는 일본의 의중이 담긴 것으로 보인다.
3국 외교장관회의 전에는 한미 양자회담이 열렸다. 조 장관과 루비오 장관이 지난달 23일 통화로 현안을 논의한 지 23일 만에 열린 첫 대면 양자회담이다. 양측은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도 한미동맹 발전과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목표에 공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을 핵무력(nuclear power) 보유국이라고 지칭했지만 한미 양국이 그동안 견지해 오던 북핵 정책 기조엔 변함이 없다는 의미다.
조 장관과 루비오 장관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목표를 견지하면서 향후 대북정책 수립·이행 과정에서 긴밀히 공조하기로 했다. 또 러시아와 북한 간 군사협력 관련 동향을 지속 예의주시하며 공조해 나가기로 했다. 이번 회담에서 주한미군 주둔 등에 관한 방위비 분담금 문제는 제기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4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행정명령에 서명 행사서 “수입되는 자동차에 대한 관세를 오는 4월 2일께 내놓을 계획이다”고 밝히고 있다. / AFP=뉴스1 |
트럼프 대통령이 자국의 무역적자를 줄이기 위해 상대국에 고관세를 부과하는 등의 정책 관련 논의도 이뤄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미국에 들어가는 철강·알루미늄에 25%의 관세를 부과한 데 이어 자동차·반도체 등에도 추가 관세를 예고하고 있다.
조 장관은 그동안 한국이 주도해 온 대미(對美) 투자 성과를 공유하고 미국의 관세 적용 문제에 대해 한미 간 긴밀한 협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한미 간 상호 이익이 되는 해법을 모색하자고 당부했다. 루비오 장관은 이에 대해 "관계부처에 입장을 잘 전달하겠다"며 "관계부처 간 협의해 나가자"고 답했다.
미측은 한국의 탄핵정국 속에도 최상목 권한대행 체제와 한미동맹에 대한 신뢰를 거듭 밝혔다고 한다. 조 장관은 이날 회담에서 아직 이뤄지지 못한 한미 정상급 통화와 관련해 루비오 장관 측에 협조를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회담은 한국이 윤석열 대통령 탄핵에 따른 정상외교의 부재 속에서 트럼프 2기에 외교·안보·무역 등 대외정책 구상 관련 우리의 입장을 설명한 기회가 된 것으로 평가된다. 다자회의를 계기로 만나 회담 시간이 40분 정도에 불과했지만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원칙을 재확인했다는 점도 성과로 분석된다.
김인한 기자 science.inh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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