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한 대형 방산 기업은 국내 인공지능(AI) 기술업체와 올해 초 업무협약을 맺었다. 두 업체는 전장에서 적군의 폭탄 등을 스스로 탐지하고 사람의 작전 결정을 지원하는 참모 역할을 할 방산 AI 기술 개발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런데 해당 AI 업체는 중국 스타트업 ‘딥시크’의 오픈소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두 업체가 협력하는 방산 AI 모델은 아직 개발 단계에 머물러 있지만 향후 방산 업체의 기밀 사항이 유출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6일 방산 업계 및 정보기술(IT) 업계에 따르면 미래전의 핵심 기술로 떠오른 방산 분야 AI에 대한 핵심 기술이 국내에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요 방산 업체들이 자체 연구소를 세워 AI 기술을 고도화하고 있지만, 핵심 기술은 미국의 방산 AI 업체 팔란티어 등 해외 업체들 기술에 의존하고 있다. 무엇보다 보안과 검증이 중요한 방산 분야가 딥시크 쇼크 이후 중국발 AI 공습에 노출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방기술진흥연구소의 국방기술기획서에 따르면 국내 AI 기술은 미국 등 글로벌 주요국의 최고 수준 기술보다 약 2.4년 뒤처진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국방 분야 AI 기술 격차는 약 4.1년으로 더 벌어져 있다. 방산 AI 분야의 초기 전력으로 평가받는 ‘전장인식과 판단’ 부문에서 국방 AI 기술은 선진국 대비 78.3%, 전장에서 인간 지휘관의 ‘판단 결심을 지원’하는 분야는 76.5% 수준에 불과하다.
기술 격차를 좁히기 위해 정부도 국가 주도의 방산 AI 기술 개발을 진행하고 있지만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방산 AI의 초기 형태로 볼 수 있는 지능형 전장인식과 판단 분야에서 진행되는 12개 정부 주도 사업 가운데 연구에 돌입한 건 4개뿐이다. 나머지 대다수 사업은 3∼4년 뒤에야 연구가 진행될 예정이다.
이처럼 국가 주도 방산 기술 개발이 지지부진하다 보니 개별 업체들도 각자도생하며 AI 기술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그러나 방산 기업 특성상 IT 업체와의 자유로운 기술 공유 및 협업에 제한을 받다 보니 대부분 팔란티어 등 이미 검증된 해외 AI 기술을 빌리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방산 AI 분야에 대한 해외 의존도가 갈수록 높아지는 셈이다. 방산 업계 고위 관계자는 “방산 업계도 AI 기술 개발에 나서고 있지만, 방산 기술 개발은 안보 정책과 직결돼 있어 정부가 방향을 잡지 않는 이상 속도를 내기 쉽지 않다”며 “기술은 없고 개발은 해야 하는 상황에서 팔란티어와 같은 해외 기술을 가져다 쓰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방산 업계에선 중국 딥시크 등장을 계기로 저비용 AI 모델 개발이 봇물을 이루면서 검증되지 않은 AI 모델이 방산 분야에 난립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방위사업청이 AI 기술이 탑재된 무기를 도입하거나 입찰 평가를 할 때 해당 기술의 모체가 어디서 비롯됐는지에 대한 검증 절차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방사청도 이에 대한 보완 방안을 고심하고 있지만 개발 업체들의 비용 상승 등의 문제로 구체적인 대응 방안은 나오지 않고 있다.
장원준 전북대 방위산업융합과정 교수는 “과거 중국산 드론 등 검증되지 않은 기술이 국내에 유입된 적이 있다”며 “적절한 규제를 통해 AI 기술 난립을 제한하면서 자체 기술 개발을 서둘러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형민 기자 kalssam3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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