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광주 금남로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에서 한 시민이 '민주화 성지, 광주 일어났다'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장서윤 기자 |
“아따 저쪽 놈들 많이 나왔네. 진짜 나라가 망하려나.”
보수 성향 개신교 단체 ‘세이브코리아’가 광주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를 연 15일, 광주 시민의 첫 반응은 놀람이었다. 실제 이날 탄핵 반대 집회에는 경찰 추산 3만 명이 모였다. 금남로 3가부터 5가까지 300m가량 차도와 인도를 가득 메워 앞으로 움직일 수 없을 정도였다. 불과 50m 간격에서 맞불 집회 성격으로 열린 탄핵 찬성 집회에는 약 2만 명이 모인 것으로 추산된다. 광주 토박이 김인주(67)씨는 “(탄핵 반대 집회에) 몇몇 광주 시민이 있겠지만 대부분 종교 단체에서 데려온 것 같다”라며 “민주 광장에서 내란을 선동하는 집회를 여는 것을 광주 시민으로서 용납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광주 시민은 얼마나 왔을까’라는 의문을 품고 태극기 물결 속으로 들어갔다. ‘계엄 합법. 탄핵 무효’가 적힌 피켓을 든 시민들은 “우리의 대통령 윤석열, 이기자. 싸우자”라고 외쳤다. 어린 자녀와 함께 온 가족 단위 참가자, 20·30대 청년이 눈에 띄었다. 광주 시민도 적잖았다. 광주에 거주하는 대학생 조진배(30)씨는 “주변 친구들은 다 왔다”며 “민주당을 지키는 게 아니라 부정에 맞서 싸우는 게 5·18 정신”이라고 했다. 그의 머리엔 ‘탄핵 반대’ 머리띠가 둘려있었다. 12살 자녀와 함께 온 정주영(41)씨는 “집회 참가도 처음이고 기독교도 아니다”라며 “헌법재판소의 부당함을 보고 이렇게 많은 사람이 나서는 걸 아이에게 보여주기 위해 왔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반감도 호남 시민이 거리로 나온 이유가 됐다. 전북 전주에서 온 임모(50·여)씨는 “나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도 찬성한 좌파였다”며 “광주에 와보니 그 흔한 커피숍도 없다. 민주당이 전라도 발전을 안 시키는 모습을 보고 돌아섰다”고 말했다. 지하철에서는 초면의 이웃들이 태극기를 든 모습을 보고 인사하며 “광주가 낙후돼있다”, “전라도 사람이 깨어나야 한다”고 이야기 나누는 모습도 보였다. 집회 전 강기정 광주시장이 “극우 단체 집회 불허” 결정을 내리고, 박균택 민주당 의원이 집회 장소로 쓰레기 매립장을 추천하며 폭력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지만, 이날 집회는 비교적 평화롭게 마무리됐다.
보수성향 개신교 단체인 '세이브코리아' 회원들이 15일 광주 금남로 일대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 반대와 석방을 촉구하고 있다. 뉴스1 |
다만 주장은 경도돼있었다. “부정선거 정황이 있고, 이를 검증하려는 윤 대통령의 계엄은 정당한 통치행위”라는 것이다. 기자가 만난 모든 시민은 “뉴스를 보지 않고 유튜브 검색을 통해 진실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이들 가슴팍엔 ‘stop the steal’(도둑질을 멈춰라) 문구가 적힌 배지가 달려있었다. 이날 연사로 등장한 일타강사 전한길씨가 “윤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선포는 계몽령이다. 윤 대통령은 억울하게 구치소에 갇혀 있다”고 외치자 시민들은 태극기를 흔들며 환호했다.
집회 참가자의 일반적 다수성과 과격한 메시지라는 간극을 바라보는 국민의힘의 속내는 복잡하다. 이날 광주 집회에는 여당 의원 중 호남 몫 비례대표인 조배숙 의원만 참석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의원들에게 참석해달라는 요청이 많았지만, 지역 기반이 없는 데다 조기 대선을 고려하면 전면에 나서기는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당 관계자는 “보수 정당으로서 부정 선거 의혹이나 헌법재판소 존재 자체를 부정하면 극우 딱지를 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광주광역시=장서윤 기자 jang.seo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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