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고성현 기자] 2월 둘째 주에는 미국 트럼프발 리스크로 인한 글로벌 기업들의 대응 방식 등이 화두가 됐습니다. 1월 중순 출범한 트럼프 행정부가 인플레이션 감축 법안 30D, 즉 소비자 보조금 요건에 대한 축소·철폐를 검토하고 난 이후부터죠. 특히 미국의 손해를 타국으로부터 수입하는 품목에 대한 관세로 해결하겠다는 방식은 핵심인 이차전지·에너지부터 자동차, 반도체, 소비재 등 전 영역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기업들에게도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죠.
실제로 13일(현지시간) 미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각국 관세 및 비관세 장벽을 고려해 '상호 관세'를 세계 각국에 부과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습니다. 상호 관세 여부를 국가별로 차등해 적용하고, 오는 4월 1일까지 결정하겠다며 시한도 제시했죠. 상호 관세는 미국 상품에 적용하는 관세율만큼 상대국 상품에도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정책입니다.
특히 자동차 산업의 경우 한국 대기환경보전법상 배출가스 관련 부품(ERC) 규제가 미국 기준과 다른 것이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국내 ERC 규제가 미국의 주행거리 인증 시스템인 (EPA) 대비 까다로운 조건을 내밀고 있는 탓에 한국 자동차의 대미 수출은 유리하고, 미국 자동차의 수입은 보조금 수령 및 출시 일자 등에서 불리하다는 이유에서죠. 만약 이를 빌미로 미국으로 수출되는 자동차에 관세나 기타 규제가 성립할 경우 현대자동차그룹 등 국내 자동차사들의 수출은 물론, 이들의 전기차에 탑재하는 배터리 제조사들에게도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한편으로는 한국 배터리 제조사로 원료를 공급했던 중국 전구체 기업의 '탈중국' 전략도 두드러졌습니다. 특히 CNGR은 한국법인인 피노(옛 스카이문스테크놀로지)까지 인수하며 투자 행보를 보이고 있었죠.
CNGR은 작년 6월 국내기업인 스카이문스테크놀로지를 인수하고 사명을 피노로 변경, 국내 전구체 사업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트럼프 이후 확대된 대중국 견제 기조와 IRA에 따른 해외우려기업집단(FEOC)의 장벽을 회피, 미국으로의 수출에 문제가 없도록 하기 위해서죠.
현재 피노의 사업 구조는 완전한 국내 생산과 내재화가 이뤄져 있지는 않습니다. 인도네시아 등으로부터 저함량 니켈을 구매하고, 중국 CNGR 전구체 공장에서 외주 가공을 마친 뒤 피노를 통해 납품하는 방식이기 때문이죠. 다만 장기적으로는 국내 생산을 추진할 가능성도 존재합니다. CNGR과 포스코퓨처엠이 포항에서 건설을 추진하는 합작법인(JV) '씨앤피신소재테크놀로지(이하 씨앤피신소재)'를 통해서입니다.
씨앤피신소재는 CNGR이 80%, 포스코퓨처엠이 20%의 지분을 확보하는 방식으로 설립된 국내 전구체 생산 법인입니다. 작년 양사 간 협력을 통해 추진돼왔었죠. 눈에 띄는 점은 한국법인인 피노가 이 회사 지분을 사들이면서 중국 색채를 지우고 있다는 점입니다. 피노는 작년 씨앤피신소재 지분 29%를 사들였습니다.
장기적으로는 피노가 씨앤피신소재 지분을 절반 가량 확보하고 실질적인 지배주주로서의 역할을 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20% 지분을 보유할 포스코퓨처엠에 공급을 하는 한편, 다른 국내 양극재사로도 공급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구체적인 숫자와 외판 대상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현 시점에서는 연산 11만톤을 확보할 생산능력 중 6만톤을 타 업체에 판매할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물론 변수는 남아 있습니다. 포스코퓨처엠이 씨앤피신소재 지분율 20% 취득을 1년 연기한 것 때문이죠. 다른 중국 전구체 기업인 화유코발트나 거린메이(GEM)가 타 배터리 제조사 및 양극재사와 합작을 중단하거나 연기한 점을 고려할 때, CNGR도 이를 이유로 투자를 중단할 가능성이 생긴 겁니다.
다만 양사와 달리 한국법인까지 설립하며 씨앤피신소재 지분 취득을 진행한 점은 투자가 지속될 가능성을 높여주는 단서로 꼽힙니다. 업계 역시 현 시점에서는 미국 트럼프 리스크에 따른 규제 방향성이 강화될 수 있는 만큼, 이에 대한 리스크가 줄어드는 적당한 때에 다시 투자가 재개될 수 있다고 보고 있죠. 일각에서는 포스코퓨처엠의 지분 취득과 피노의 추가 지분 취득이 IRA 리스크가 해소되는 이른 시점에 결정날 수 있다고 보고 있기 때문에, 이들의 행보에 주목하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한편 이번주에는 현대차가 전기차 생산의 우위를 점하기 위한 전략도 점차 윤곽이 드러났었습니다. 미국 시장 공략을 위한 배터리사와의 공조와 합작법인(JV)에 속도를 붙이면서도 자체 생산을 위한 소규모 양산라인 구축을 추진하고 있어서죠.
현재 현대차는 경기도 안성시에 전기차 배터리 연구소를 구축하고 연구개발(R&D)용 생산 라인을 짓고 있습니다. 이미 이 라인을 짓기 위한 설비 발주도 시작됐습니다. 해당 R&D 라인은 메가와트(MW) 수준인 1개 라인으로 구성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데, 파우치 셀 배터리를 분당 생산량(ppm) 30ppm으로 짓고 있어, 국내 배터리 셀 제조사의 양산라인 수준과 근접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에 더해 추가 신규 라인도 건설해 소량 양산 역량을 확보하려는 시도도 감지되고 있습니다. 발주한 R&D 라인 이외에 추가 라인을 짓기 위한 신규 프로젝트를 검토하고 있기 때문이죠. 해당 라인에 대한 구상은 완벽히 드러나지 않았지만, R&D 라인과 마찬가지로 삼원계 NCM 기반 파우치 셀 배터리를 양산할 수 있는 수준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배터리 업계에서는 현대차의 움직임을 두고 기술과 공정에 대한 내재화 시도에 본격화를 건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전기차에 대한 중국의 한국 시장 침투, 대외적 가격 경쟁이 가속화되는 만큼 관련 양산 기술까지 섭렵해 대응하겠다는 목표를 두고 있다는 의미죠.
이는 배터리 셀 제조사가 담당하던 생산의 영역까지도 현대차가 관여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이전에는 배터리 셀 기술이 LG에너지솔루션, SK온과 같은 제조사에 한정돼 있어 공급 협력이나 합작법인(JV)을 통한 부분적 내재화로 대응해왔지만, 이제는 배터리 셀의 화학적 조성과 양산 기술까지 확보해 가격 협상에서의 우위까지 확실히 점하겠다는 겁니다.
실제로 현대차는 기존 주력 연구소인 남양과 의왕에서 전기차 배터리에 대한 기술적 연구를 지속해온 바 있습니다. 이를 토대로 하이브리드차량(HEV)에 대한 배터리 기술을 개발한 바 있고, 이에 대한 설계를 토대로 SK온에 위탁생산(파운드리) 방식으로 공급을 받고 있었죠. 이를 삼원계 배터리 영역으로 넓힌다는 것은, 장기적으로 배터리 협상 가격 주도권을 가져오는 것은 물론 일부 전기차 모델에 대한 공급 유연성을 확보하겠다는 의미로 읽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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