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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겨 왕자' 차준환(24·고려대)이 마침내 아시아 최고가 됐다. 불가능할 것으로 예상됐던 도전에서 흠 잡을 데 없는 연기로 한국 남자 피겨스케이팅의 역사를 새로 썼다.
차준환은 13일 중국 하얼빈 헤이룽장 빙상훈련센터 다목적홀에서 열린 2025 하얼빈 동계아시안게임 피겨스케이팅 남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에서 '올 클린' 연기를 펼쳤다. 모든 점프와 스핀 등 각종 기술을 완벽하게 소화한 차준환은 기술점수(TES) 99.02점, 예술점수(PCS) 88.58점을 합해 총점 187.60점을 받았다.
지난 11일 열린 쇼트프로그램에서 94.09점을 기록해 2위에 올랐던 차준환은 합계 281.69점을 기록해 일본의 가기야마 유마(272.76점)를 제치고 역전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 남자 선수가 동계아시안게임 피겨스케이팅에서 메달을 딴 것 자체가 차준환이 처음이었는데, 첫 메달을 금빛으로 장식한 것이다.
힘겨운 도전이었다. 쇼트프로그램에서 103.81점으로 1위에 오른 가기야마 유마는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따낸 일본 피겨의 간판급 선수다. 최근 맞대결을 펼쳤던 지난달 토리노 동계유니버시아드에서도 차준환은 금메달을 차지한 가기야마에게 밀려 동메달을 따냈다.
그러나 차준환 다음으로 맨 마지막에 연기를 펼친 가기야마가 실수를 연발했다. 연이은 점프 실수로 가기야마는 감점을 2점이나 받았고, 가산점도 많이 받지 못하면서 프리스케이팅에서 168.95점을 받는 데 그쳤다. 공동취재구역(믹스트존)에서 인터뷰를 하다가 TV 화면을 통해 금메달 소식을 확인하고 미소를 지은 차준환은 담담하게 "내 경기에 만족하고 후회가 없는 연기를 펼쳤다. 만족스러운 결과를 내 정말 기분이 좋다"며 소감을 밝혔다.
아역 배우 출신으로 여러 경험을 쌓으려 초등학교 2학년 때 시작한 피겨스케이팅은 차준환에게 새로운 인생을 가져다줬다. 올해까지 전국 종합선수권 9연패를 달성하며 국내에 적수가 없던 차준환은 세계 무대에서 차근차근 실력을 쌓아 가면서 각종 기록을 만들었다. 2019년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동메달을 따낸 것을 시작으로 2022년 4대륙선수권 우승, 2023년 세계선수권 은메달 등 한국 남자 피겨 최초, 최고 기록을 여럿 써내려 갔다.
하지만 어려움도 따랐다. 많은 점프 탓에 발목 부상이 자주 찾아왔다. 특히 지난해 1년 내내 발목 통증이 차준환을 괴롭혔다. 가장 최근인 지난해 11월에는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시니어 그랑프리 5차 대회 기간 중 발목 통증으로 프리스케이팅에 나서지 못하고 귀국길에 오르기도 했다.
경기를 할 때 신고 뛰는 스케이트 부츠 문제도 있었다. 차준환은 "작년 여름에 여러 차례 부츠 교체를 시도했는데, 안 맞는 부분들이 좀 있었다. 부츠 때문에 발이 아팠다. 10개 정도 신어 봤지만 마음에 안 들어 과거에 썼던 망가졌던 스케이트화를 신고 뛰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동계아시안게임을 앞두고 발목 치료에 집중하면서 때마침 맞는 부츠도 찾았다. 4회전 점프 등 고난도 기술을 무리하게 넣지 않고 예술성에 집중해 안정적인 연기를 하겠다는 전략도 선택했다. 절치부심한 차준환은 지난달 전국 종합선수권 우승으로 다시 제 기량을 되찾았다. 이어 토리노 동계유니버시아드에서 동메달을 따낸 뒤, 동계아시안게임에서 최고의 기량을 발휘했다.
프리스케이팅에서 강렬한 붉은색 의상을 입고 탱고 음악인 '광인을 위한 발라드'에 맞춰 연기를 펼친 차준환은 첫 과제인 쿼드러플(4회전) 살코를 완벽하게 뛰면서 힘차게 시작했다. 임기응변도 발휘했다. 세 번째 점프 기술이었던 트리플 러츠-트리플 루프 콤비네이션 점프를 뛰려다 여의치 않자 '플랜B'로 트리플 러츠 단독 기술을 구사했다. 이후 트리플 악셀로 흔들림 없이 점프 기술을 선보였고, 가산점 10%가 붙는 후반부 연기도 깔끔하게 펼쳤다. 얼음 위를 미끄러지면서 연기를 마친 차준환을 향해 꽉 들어찬 관중들은 큰 박수 갈채를 보냈다. 차준환은 "중간중간 위기가 있었지만 잘 이겨냈다. 경기에 집중해 결과가 어떨지 몰랐는데 금메달을 따내 기쁘다"면서 "원래 목표였던 개인 최고 점수를 기록하진 못했지만 프리스케이팅에서 만족스러운 연기를 펼쳤다"며 기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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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김채연은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에서 147.56점을 받았다. 전날 쇼트프로그램 점수 71.88점까지 더해 총점 219.44점을 기록한 김채연은 2위 사카모토 가오리(일본·211.90점)를 따돌리고 금메달을 확정 지었다.
김채연은 "언젠가는 동계아시안게임과 같은 큰 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그 꿈이 이루어졌다. 쟁쟁한 선수들을 제치고 이번 대회에서 원하는 목표를 달성해 정말 행복하다"고 말했다.
극적인 역전 우승이었다. 김채연은 쇼트프로그램에서 개인 최고점을 기록하며 2위에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이날 김채연이 금메달을 차지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쇼트프로그램에서 1위에 자리한 선수가 세계 랭킹 1위이자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동메달리스트인 사카모토였기 때문이다.
더블 악셀과 트리플 루프를 완벽하게 소화하며 첫 단추를 잘 끼운 김채연은 트리플 플립-더블 토루프-더블 루프 콤비네이션 점프까지 실수 없이 수행했다. 트리플 살코도 깔끔하게 성공한 김채연은 플라잉 체인지 풋 콤비네이션 스핀을 최고 난도인 레벨4로 처리했다. 10%의 가산점이 붙는 연기 후반부에도 김채연은 빈틈이 없었다.
총점 219.44점은 김채연의 개인 최고점이다. 지난해 11월 2024~2025 시즌 국제빙상경기연맹 피겨스케이팅 시니어 그랑프리 6차 대회에서 작성한 208.47점을 크게 뛰어넘은 김채연은 양손을 불끈 쥐며 기뻐했다.
김채연이 생애 처음 출전한 동계아시안게임에서 값진 금메달을 따는 데 어머니 이정아 씨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씨는 김채연이 입는 피겨복을 직접 제작하고 현지에서 명이나물 반찬을 만드는 등 최고의 경기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김채연은 "피겨복을 입을 때마다 힘이 나는데, 어머니가 정성스럽게 만들어줘서 그런 것 같다. 어머니의 희생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다고 생각한다. 금메달에 만족하지 않고 계속해서 발전하는 선수가 되겠다"고 말했다.
2017년 삿포로 대회에서 최다빈이 피겨 여자 싱글 정상에 오른 이후 8년 만에 동계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딴 한국 선수가 된 김채연은 이제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을 바라본다.
[하얼빈 김지한 기자 / 서울 임정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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