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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힘은 왜 문형배만 때릴까…정형식도 조서 증거 ‘찬성’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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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1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심판 8차 변론기일에 출석해 헌법재판관 입장에 인사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국민의힘의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 때리기는 그 의도가 명확하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가 임박하자, 헌재 결정에 대한 불신 여론을 최대한 끌어올려 조기 대선에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집권여당이 연일 헌법 최고법원을 공격하는 것은 전례가 없다. 야당과 학계에서 국민의힘을 향해 “국헌문란” “정당해산” “파시즘”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12일 “헌법재판관 임의로 법을 해석하고 인권을 유린한다면 그것은 법치가 아니라 문형배 권한대행의 인치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도 13일 페이스북에 “문형배 헌재 소장 대행이 관심법 재판을 하고 있다. 직권남용 및 헌법재판소법 위반죄로 형사처벌 받아야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검찰·경찰·공수처가 작성한 내란 혐의 피의자들의 신문 조서를 탄핵심판 증거로 채택하겠다는 헌법재판관 8명의 결정에 대해, 문형배 권한대행 한 명만 찍어 집중 공격하고 있는 것이다. 정작 헌재 대심판정에서 피의자 신문 조서를 증거로 채택하겠다고 밝힌 이는 탄핵심판 사건 주심인 정형식 재판관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른바 ‘대통령 몫’으로 임명한 재판관이다.



지난 11일 윤 대통령 탄핵심판 7차 변론에서 문형배 권한대행은 윤 대통령 쪽이 피의자 신문 조서 증거채택에 대한 반대 뜻을 나타내자 마이크를 정형식 재판관에게 넘겼다. 정 재판관은 “헌재는 탄핵심판이 헌법재판이란 점을 감안해 형사소송법 전문법칙을 완화해서 적용해 왔다. 이는 헌법재판의 성질에 반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형사소송법을 준용하라는 헌법재판소법 40조1항에 의한 것”이라고 밝혔다. 내란 중요임무종사 혐의 피의자들의 신문 조서를 윤 대통령 탄핵심판 증거로 채택하는 것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9명(현재 8명)이 동등한 권한을 갖는 합의제 기구다. 이에 따라 윤 대통령 탄핵심판이 시작된 뒤 소송 진행과 관련한 모든 결정은 재판관 8명이 참여하는 ‘평의’를 통해 결정해 왔다. 이는 다른 헌법소송에서도 마찬가지다.



윤 대통령 탄핵 여부를 결정하는 재판관 8명 중에는 윤 대통령이 직접 골라 임명한 정형식 재판관, 국민의힘이 추천한 조한창 재판관, 조희대 대법원장이 지명해 윤 대통령이 임명한 김복형 재판관이 있다. 김복형 재판관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대한민국은 1919년 수립됐는가, 1948년 수립됐는가’라는 건국절 논란 질문에 답을 못하고 17초간 침묵하는 등 중도보다는 보수 색채가 짙은 인물이다.



헌법연구관 출신인 이황희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탄핵심판을 위한 증거법칙, 신문 조서의 증거능력 인정 여부 등 결정은 재판관 8명이 모두 참여하는 재판관 평의에서 결정한다. 문형배 권한대행을 타깃으로 공격하고 있지만 헌재 소장 또는 소장 대행이라고 독단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라고 했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검사 출신으로 박근혜 탄핵심판 때 국회 탄핵소추위원장이었다. 김기현 의원은 판사 출신이다. 헌재 의사결정 구조를 잘 아는 이들이 피의자 신문 조서 증거채택에 찬성한 정형식·조한창·김복형 재판관 등은 쏙 뺀 채 오로지 문형배 권한대행만 집중적으로 공격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우리법연구회 출신인 문 권한대행의 이력을 고리로 윤 대통령 탄핵심판을 조기 대선을 위한 이념 전쟁으로 만들려는 의도로 본다.



정작 국민의힘은 지난 3일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 임명 거부에 대한 권한쟁의심판 선고가 갑자기 연기되자, “평의에서 의견이 엇갈렸던 것 같다”(주진우 법률자문위원장)는 해석을 내놓았다. 문형배 권한대행의 독단적 소송 진행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한 셈이다.



윤 대통령은 7차 변론에서 피의자 신문 조서 증거채택에 대해 “잘 살펴달라”고 했고, 문형배 권한대행은 “평의에서 잘 논의해 보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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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이 1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8차 변론기일에 참석해 변론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오른쪽은 김민전 국민의힘 의원. 공동취재사진


윤 대통령 변호인단과 국민의힘이 피의자 신문 조서 증거채택에 반대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해당 조서에 윤 대통령의 위헌·위법한 지시를 입증하는 군·경찰·국무위원 등의 진술이 빼곡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신문 조서 증거채택을 반대하는 근거는 2020년 2월 개정된 형사소송법이다. ‘피의자 신문 조서는 공판기일에 피의자였던 피고인 또는 변호인이 그 내용을 인정할 때에 한정하여 증거로 할 수 있다’로 바뀌었다. 윤 대통령 쪽은 이를 근거로 ‘탄핵심판은 형사소송법을 준용하게 돼 있다. 개정 형사소송법에 따라 피고인 윤석열이 동의하지 않으니 신문 조서를 증거로 채택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윤 대통령 쪽의 이 주장을 국민의힘과 조선일보 등이 반복해서 퍼뜨리고 있다. 2017년 박근혜 탄핵심판 때는 개정 전 형사소송법을 준용해 관련 피의자 신문 조서를 증거로 채택했지만, 2020년 형사소송법이 개정됐기 때문에 박근혜 탄핵심판 선례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실이 아니다. 헌법재판소법은 ‘탄핵심판의 경우 헌법재판의 성질에 반하지 않는 한도에서 형사소송 관련 법령을 준용’한다고 규정한다. 형사처벌을 전제로 하는 형사재판은 엄격한 증거 판단을 요구하지만, 파면을 위한 징계 성격의 탄핵심판은 행위의 위헌성만 확인하는 것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법령에서 ‘준용’은 토씨 하나 빠짐없이 그대로 따른다는 뜻이 아니다. 법의 취지에 맞게 적절히 수정해 적용한다는 의미이다. 대법원 역시 ‘어느 법령에서 특정 사항에 관하여 다른 법령을 준용하는 규정을 두고 있더라도, 준용 규정을 둔 법령이 규율하고자 하는 사항의 성질에 반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만 그 법령의 규정이 준용된다’는 판례를 쌓아두고 있다.



윤 대통령 변호인단과 국민의힘은 헌법재판소법과 판례 등을 무시하고, 2020년 개정된 형사소송법을 그대로 탄핵심판에 적용해야 한다고 강변하고 있다.



정형식 재판관은 7차 변론에서 헌법재판소법과 선례를 들어 윤 대통령 쪽 주장을 기각했다. “이 조항은 현재까지 개정이 안 됐고 선례도 변함없이 유지됐다”는 것이다.



특히 정 재판관은 윤석열 정부 들어 진행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탄핵심판(2023년), 안동완 검사 탄핵심판(2024년) 때도 피의자 신문 조서 증거채택에 있어 2020년 형사소송법 개정과 상관없이 일관된 기준이 적용됐음을 강조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에서만 증거채택을 달리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판사 출신 차성안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페이스북에 “예외 없이 형사소송법을 준용하는 게 맞는다면 형사소송법에 따라 (윤 대통령 탄핵심판을) 매일 개정했으면 진작에 탄핵 결정이 나왔을 것”이라고 썼다. 형사소송법은 ‘심리는 부득이한 사정이 없는 한 매일 계속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헌재는 형사소송법을 문자 그대로 따르지 않고 윤 대통령 쪽 변론 준비 편의 등을 위해 일주일에 두 차례 심리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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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1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8차 변론에 출석해 있다. 공동취재사진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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