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유수연 기자] '원경' 배우 차주영이 연기 비하인드와 진심을 전했다.
13일 서울 강남구의 한 카페에서는 tvN X tving '원경' 배우 차주영의 인터뷰가 진행됐다.
‘원경’은 남편 태종 이방원과 함께 권력을 쟁취한 원경왕후. 왕과 왕비, 남편과 아내, 그 사이 감춰진 뜨거운 이야기로, 그간 여러 차례 조명된 태종 이방원이 아닌, 원경왕후의 시점에서 재창조된 여성 중심 서사로 이목을 끈 가운데 지난 1월 6일 첫 베일을 벗었다.
차주영은 ‘원경왕후’ 그 자체로 변신, 특유의 중저음 목소리와 정확한 딕션, 힘 있는 눈빛은 대담하고 기품 있는 캐릭터의 특성을 살려내며 극 초반부터 브라운관을 압도했다. 첫 사극에 도전하기도 했던 차주영은 소감에 대해 묻자, "시간이 지나봐야 알 것 같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관련 이야기를 하는 것조차 부담스러운 거다. 생각이 많다. 소회를 풀어내는거에 있어서 여러가지 생각이 든다"라며 조심스레 운을 뗐다.
그는 "워낙에 애정을 많이 갖고, 들여서 찍은 작품이라, 개인적으로는 정말 아쉬움도 많이 남는다. 시작 전부터 시작하고 나서도 이야기가 많았다는 것도 알고 있다. 아무래도 역사 이야기를 무시할 수도 없고, 시도를 했던 것들이 있고. 만들면서도 한 장면 한 장면 고민을 안 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보시는 데에 불편한 분들도 계셨을 것 같다. 원경의 관점에서 여성 서사를 앞세운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기도 했을 거 같다. 그분들께 누가 되지 않게 작품을 만들려고 진심으로 연기했다. 우리가 설명되게끔 잘 만들어보자, 라는 마음으로 했다. 그래서 어려웠다. 많은 걸 이야기에 담아내야 했어서. 만들어 놓고 보여드린 다음에 이야기할 수 있는 거기도 하고. 답답한 것도 있고, 죄송스러운 것도 있었다. 많은 생각이 든 작품이었다"라고 털어놨다.
'더 글로리' 이후 연기, 이미지 변신에 성공한 차주영. 차기작으로 사극을 선택하게 된 이유에 대해 "당시에 사극 대본이 몇 개 들어왔었다. 제가 하고 싶은 사극에 가까운 게 '원경'이었다. 이 작품이라면 갈증이 있었던 걸 어느 부분에서는 시도하면서, 해소할 수 있지 않을까. 아주 큰 각오가 필요했지만, 일대기를 다룰 수 있는 작품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될까, 싶더라. 과감하게 도전해보고 싶었다"라고 떠올렸다.
과감하게 선택한 작품이지만, 부담감도 컸다. 그는 "찍으면서도 부담감이 해소가 안 됐다. 현장에서 많이 도망가고 싶었고, 비단 이 작품뿐이 아니라 어디서든 마찬가지겠지만. 뻔뻔해지는 게 어렵더라. 그런데 제가 약한 모습을 보이는 순간 이 작품이 길을 잃을 것만 같더라. 계속 정신 승리를 하면서 버티는 것밖에 없었다. 내가 확신이 있는 것처럼 있어야, 이 팀원들이 나를 따라주실 수 있는 것만 알았다. 어찌 보면 모든 심리 상태나 원경의 태도, 위치가, 그녀가 늘 당당할 수만은 없던 인물인 거 같다. 그 속에서 어떻게 본인이 가진 것들을, 불안함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지키려 했는지가, 저랑 맞물린 거 같다"며 생각을 전했다.
구체적인 캐릭터 준비 과정도 들을 수 있었다. "실존 인물을 다루는 게, 어려운 거다. 조심스럽기도 하다. 태종 이방원, 이성계, 세종에 비해 원경왕후는 역사적 기록이 많지 않다. 빈 부분들은 저희가 창조해야 했고, 제가 느끼는 감정으로 채워 넣을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었다. 역사라는 게, 때로는 불친절하게도 느껴졌고, 제 나름대로 공부도 했지만, 드라마라는 창조물을 만들면서 기록하는 사람, 만드는 사람 기준에서 남게 되겠더라. 그런 부분은 제가 큰 줄기를 건들지 않는 선에서, 제 감정을 기조에 두고 작품을 하려 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다른 사극을 참고 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거기에 잠식되면 담대하게 시도하려는 것에 제한이 있을 거 같아서, 사극이라는 장르에 접근하는 것에 있어서 선배님들 연기를 참고 했다. 역사는 문헌을 공부했지만, 새로운 것을 만들어보자, 라는 것에 중점을 뒀다"라며 "구체적으로 참고를 했다면 이방원을 다뤘던 작품들을 봤다. 원경왕후를 연기하셨던 분들도 계시지 않았나. 그걸 조금 봤다. 분석하거나, 깊게 빠지지 않고, 참고만 했다. 또 중전 역할을 하셨던 전인화 선배님, 등. 어떻게 중전을 연기했는지를 참고해 보려고 했다. 근데 생각보다 중전을 주인공으로 다룬 작품도 많지 않더라. 저만의 것을 만들어야겠다 해서 참고만 했다"라고 설명했다.
특히 차주영은 완벽했던 '사극 발성'에 대해 "저는 사실 이 일을 하면서, 티브이를 안 보고 살았다. 티비 보는 습관이 없다. 그 와중에, 제 기억에 대하사극을 봤던 기억이 좀 있다. 그러면서 흉내는 곧잘 잘 낸다고 생각했다. 사극 이렇게 할 거로 생각한것도 없었다. 저는 부족하다고 생각했지만, 현욱 오빠도 사극 톤이 잡혀서 왔다고 해주더라. 저는 그 말을 잘 모르겠더라. 억지로 만들어온 말투가 아니라. 그래서 오히려 중후반부 지나니까 ‘이렇게 해야 했는데!’라는 초반의 아쉬움이 한없이 남더라. 그때는 ‘이렇게 하면 될까?’라는 정도의 말투였다. 아쉬움이 많이 남아서, 사실 초반부를 재촬영한 부분이 엄청 많다. 그런데 어설픔이 싫어서 했더니, 초반부터 중후한 왕과 왕비 말투를 쓰고 있더라. 두 사람의 이야기가 즉위식부터 시작 아닌가. 두 사람의 성장 드라마인데, 우리 연기가 아쉽다고 뒤에 할 연기를 앞에 붙이니까…그냥 내버려두자 싶더라"라고 비하인드를 전하기도 했다.
'원경' 캐릭터를 향한 차주영의 애정도 엿볼 수 있었다. 차주영은 "‘원경’을 저희 친 할머니분을 생각하며 연기했다. (마침) 저희 할머니가 민 씨다. 일찍 돌아가셨지만, 제 기억 속에 너무 훌륭한 할머니를 생각하면서 연기했다. 배우고 싶었던 은연중에 생각했던 여성상을 그려내고 싶었다. 저를 닮은 부분도 있었다. 굉장히 보수적이기도 하지만, 자유로움을 추구하기도 한다. 보수와 진보, 혁명이 휘몰아치는 격동의 시대 안에서 원경은 두 가지를 가져가고 시도해 보는 입장이다. 시대상으로 여성이 뭔가를 일궈내기가 제한이 있던 시기 아닌가. 특정 나이대의 여성보다는,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누구나가 겪는 혼란이 담긴 인물 같다. 그래도 용기 내 진취적으로 하려던 여성이었기에. 고려말과 조선 초를 대표하는 유일한 여성인 거다. 그 이후로는 조선의 여자인 것"이라며 힘주어 말했다.
함께 애증의 부부 호흡을 맞췄던 이현욱과의 케미도 전했다. 차주영은 "현욱 오빠랑 호흡은 너무너무 좋았다. 의지할 사람은 단둘이었어. 사계절 이상을 거의 매일 현장에서 보니까. 그 전까지의 작품은 저 혼자 준비해서 현장에서 나왔더라면. ‘더 글로리’도 그랬다. 배우끼리 사이는 너무 좋지만, 각자 완벽하게 준비하고, 촬영을 하고 나서 따로 이야기를 나눴었다. 그런데 이번 현장은 많은 부분이 현장에서 이뤄졌다. 대본을 달달 외워서 가면, 현장에서 다 바뀌는 거다. 부족한 부분을 저희가 메꿔야 했고, 감독님 작가님이 저희에게 부탁하기도 했다"라고 떠올렸다.
이어 "사실은 그걸 경계하면서 참여하려 했다. 각자의 영역과 권한이라는 게 있지 않나. 아무리 제가 연기를 하지만, 상대방의 감정이 바뀔 수가 있으니까. 이걸 조심하려 만들려 했는데, 결국에는 모두가 합세해서 만들어낸 장면들이 많다. 추가 대본이 한 회차에 가깝게 나와서. 저희도 이 작품이 영사가 되어 나올지 아는 바가 없었다. 그래서 현욱오빠랑 많이 불안해했다. 우리가 한 건 그려지는데, 작품은 편집이나 후반작업에 있어 방향이 달라지기도 하니까. 그래서 종영할 때까지 현욱오빠랑 의지하면서 했다"라고 말했다.
작품 밖, 차주영에 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최근 촬영장과 출근길을 찾은 팬들에게 인사를 나누는 팬 영상으로 이슈가 되기도 했던 그는 "(화제가 된다는 걸) 이제 알았다. 자주 뵙는 분들도 아니고, 감사한 마음만 가지고 있었는데, 계획적이고 시기적으로 영상을 가지고 있다가 공개한 것도 몰랐다. 오랜만에 한 번씩 보니까, 영상을 혼자 간직하시겠거니 했는데. 대외적으로 민감한 부분인데, 우리끼리 아는 신의고 의리인데. 그걸 지켜주셨다. 드라마에 많은 도움이 됐다. 그뿐만이 아니라 저에겐 소중한 존재다. 너무너무 감사하다"라며 팬들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다만 '팬 영상을 본 적이 있나'라고 묻자, "저는 제거 잘 못 본다. 너무 말씀을 많이 들어서. ‘으악, 이게 뭐야!’하고 보긴 보는데. 민망하다. 부끄럽다"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향후 차주영에 대한 계획에 대해서도 전했다. 또 다른 사극 도전에 대한 생각을 묻자, "해보고 싶다. 근데 시간이 더 필요할 거 같다. 그리고 사극을 하면 많은 걸 잃는다. 머리도 빠지고, 목 디스크도 왔다. 체력적으로 힘든 부분이 있더라. 그런데도, 다른 어떤 인물의 이야기를 할 생각은 있다"라며 "일제강점기를 다룬 그런 작품도 너무너무 하고 싶다. 저 시대극을 좋아하는 거 같다. 제가 살아본 적 없는 시대에 대한 로망, 환상이 있는 거 같다. 살아본 적이 없어 조심스럽지만, 동경을 가지고 있어서 너무너무 하고 싶고, 열려있다"라고 말했다.
또한 "제가 기본적으로 명랑하긴 하다. 회복 탄력성이 좋은 것도 같고. 가볍고, 발랄한 것도 더 늦기 전에 해보고 싶고. 아직도 해보고 싶은 게 많다. 안 해본 게 많다"라며 로맨스 장르에 대한 희망을 내비치기도. 이어 "그간 제가 보여드린 게 많이 없었다. 이제서야 제가 하고 싶은 걸 제 방식대로 시도해 나가는 첫걸음인 거 같다. 그래서 많이 용기 내서 해보려고 한다"라며 "구체적인 목표가 있다거나 해외 진출에 대한 포부가 있다는 건 아니다. 매 순간 주어진 것에 충실하게 하는 사람이다. 다만 재미있는 걸 좋아해서, 할 수 있는 걸 다하고 싶다. 한편으로는 모든 것에는 때가 있고, 순리대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해서, 억지로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기회가 되면 해외든 한국 것이든 할 의향이 있다. 기회는 있었지만, 지금까지는 국내 작품을 우선에 두고 싶었다. 앞으로도 좋은 기회가 있으면 왔다 갔다 가능한 배우가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포부를 전했다.
끝으로 "저는 작품을 하며 딱 하나의 반응만 바랐다. 애썼다. 얘네 고생했겠네. 이렇게 한 번이라도 느껴주신다면 나는 그걸로 된 것 같다. 더 욕심부리지 않겠어, 라는 생각이 있었다. 그 이야기는 이미 차고 넘치게 들은 거 같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이 작품을 하며 스스로도 성장했다고 생각한다. 많이 배웠고, 정말 많이 배웠다. 책임감도 배우고, 많은 것을 배웠다"라며 "'원경'은 정말 저에게는 유의미한 작품이다. 또 많은 일들이 있었기 때문에, 제가 너무나도 애틋하고 안쓰러운 마음이 드는 작품이다. 지금도 잘 지나가기만을 바란다. 촬영이 끝날 때는 이걸 못 보낼 것 같더라. 이제서야 드디어 조금 연기라는 게 뭔지, 알아가는 것 같은데. 하필 이 시기에 누군가의 일생을 다루는 연기를 하게 되어버려서, 마지막 촬영이 끝나고 소진된 느낌이 들더라. 앞으로 내가 무슨 연기를 할 수 있을까.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끌어다가 했으니까. 휘발시킨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아직 다음 작품을 내가 해서, 이만큼의 에너지를 쏟기에는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 했는데, 그동안 영화 촬영을 했다. 짧지만 강렬하게 찍었는데, 또 에너지가 소모됐다. 근데 어쩔 수 없나보다. 주어지면 에너지를 다 쏟아붓고, ‘못할 거 같아’ 해놓고 재미있는 거 보이면 해볼까? 하고. 그냥 해보고 있다"라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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