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운열 한국공인회계사회 회장이 지난 12일 열린 회계업계 현안 세미나에서 발언하고 있다./사진제공=한국공인회계사회 |
회계사에게만 허용되던 지방자치단체의 민간위탁 사업비 회계감사를 세무사도 수행할 수 있도록 서울시 조례개정이 이뤄진 것을 두고 업계와 학계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회계 감사와 관련된 전문성과 경험을 갖추지 못한 인력이 지자체 민간위탁 사업 외부감사에 투입될 경우 회계감사의 질적 수준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최운열 한국공인회계사회(한공회) 회장은 지난 12일 서울 여의도 켄싱턴호텔에서 열린 회계업계 현안 세미나에서 "일부 지자체에서 민간위탁사업 결산에 대한 회계감사를 폐지하고, 보다 간이한 수준의 결산서 검사를 도입하는 조례 개정이 이뤄졌다"며 "이는 정부의 보조금 부정수급을 근절하기 위한 그동안의 관리·감독 강화 기조에 역행하는 것으로 매우 우려스러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회계감사는 고도의 전문영역으로 해당 기관이 작성한 결산서가 규정된 기준에 따라 적정하게 작성됐는지 외부의 독립된 제3자가 엄격하게 인증하는 과정"이라며 "한공회는 비영리·공공부문의 회계 투명성을 강화하기 위해 기존의 엄격한 회계감사 체계가 유지될 수 있도록 서울시 조례 재개정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김범준 가톨릭대학교 회계학과 교수가 지난 12일 '비영리법인 및 공공부문의 회계투명성'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사진제공=한국공인회계사회 |
이날 김범준 가톨릭대학교 회계학과 교수는 "지자체의 민간위탁 사업의 경우 복잡한 구조로 일반 상장사보다 고도화된 회계 감사가 필요하다"며 "더불어 외부감사는 독립적으로 감사 업무를 수행해야 하는데 제3자에 대한 정보제공의무가 존재하는 공인회계사 윤리 규정과 달리 세무사는 그렇지 않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보조금 관리 감독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데, 서울시의 조례개정은 회계 투명성 제고에 역행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 교수는 "기획재정부는 국가보조금 사업의 회계 검증 의무화 기준을 3억원에서 1억원 이상으로 확대했다"며 "민간 위탁사업의 경우 2023년 기준 평균 사업 규모가 28억원이므로 보다 엄격한 회계 검증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회계감사는 사업비 증빙 확인은 물론 사실 여부 확인, 거래 실재성, 비용 집행의 적절성 등 여러 감사 기법을 활용한다"며 "반면 단순 증빙 구비 확인 등에 그치는 간이 검사로는 사업비의 목적 외 사용, 부당 거래, 증빙 위조, 가격 부풀리기와 같은 부당 집행을 차단할 수 없다"고 했다.
회계업계의 반발은 서울시의회의 조례개정에서 시작됐다. 서울시의회는 2022년 4월 '서울시 행정사무의 민간위탁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 조례안'을 재의결했다. 조례안은 공인회계사만 수행할 수 있던 민간위탁사무 수탁기관의 회계감사를 '사업비 결산 검사'로 명칭을 변경하고 세무사도 수행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이에 서울시가 조례개정을 거둬달라며 '재의결 무효확인' 소송을 냈지만, 대법원은 지난해 10월 서울시의 청구를 기각했다. 대법원 판결 이후 회계업계에서는 서울시뿐 아니라 다른 지자체에서도 조례개정 움직임이 나타날 것으로 우려한다.
천현정 기자 1000chyunj@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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