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상호 관세' 부과를 예고하면서 우리 기업 긴장감이 커지고 있다. 상호 관세 부과 대상이 대미(對美) 무역흑자 '효자 종목'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며 국내 자동차·반도체·철강 업계는 상황을 예의주시하는 한편 대응 방안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
'자동차' 언급한 트럼프…현대차, 대응 시나리오 검토
━
[워싱턴=AP/뉴시스] 이시바 시게루(왼쪽) 일본 총리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7일(현지 시간) 백악관 집무실에서 회담하고 있다. 2025.02.08. /사진=민경찬 |
9일 한국무역협회 미주본부의 '2024 대미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미국 대상 자동차 수출액은 347억달러였지만 수입액은 21억달러였다. 한국의 전체 자동차 수출(683억달러)에서 미국 비중이 절반이 넘는 50.8%에 달해 전년(47.1%) 대비 대미 의존도가 심화했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자동차를 예시로 들어 상호 관세를 언급해 우리 자동차 업계가 긴장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7일(현지시간) 미일 정상회담 직전 취재진에게 "알다시피 우리가 자동차를 공급하지 않는데도 우리에게 파는 경우들이 있다. 우리는 이걸 동등하게 만들어야 한다"며 자동차 교역을 직접 언급했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과 미국은 FTA(자유무역협정)로 대부분의 품목에서 관세가 철폐됐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지속해서 한국의 대미 무역 흑자 규모가 과도하다고 지적하는 만큼 해당 부문 제품에 대한 관세를 부과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현대차그룹은 트럼프발 관세의 직접적인 영향권에 들어가면서 대응 시나리오를 검토하고 있다. 미국 시장은 현대차그룹 전체 판매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따지면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중요한 곳이다. 현대차그룹은 통상 환경의 불확실성 확대에 대응해 미국 내에서 기여도를 강조하며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하기 위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호세 무뇨스 현대차 대표이사 사장은 전날 SNS(소셜미디어)에 미국에 투자한 금액만 205억달러(약 30조원)라고 밝혔다.
━
반도체·가전·철강도 '긴장'
━
(부산=뉴스1) 윤일지 기자 = 6일 오후 부산항 신선대부두 야적장에 컨테이너가 가득 쌓여 있다. 한국은행이 이날 발표한 국제수지 잠정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경상수지는 123억 7000만 달러 흑자로 집계됐다. 같은 12월끼리 비교하면 역대 최대 흑자 기록이다. 이에 따라 작년 연간 누적 경상수지는 990억 4000만 달러 흑자로, 2023년(328억2000만달러)의 3배를 넘어섰을 뿐 아니라 한은의 연간 전망치(900억달러)도 웃돌았다. 2025.2.6/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부산=뉴스1) 윤일지 기자 |
우리 수출의 또 다른 '효자 종목'인 반도체·가전·철강 업종도 표적이 될 가능성이 있다. 업계 긴장감이 더욱 높아진 것은 최근 이 업종 경영 상황이 부진해 상호 관세가 '엎친 데 덮친 격'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반도체 기업은 글로벌 PC·모바일 수요 부진, 중국 기업의 저가 공세로 올해 상반기 더딘 성장이 예상된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고부가 반도체 제품에선 여전히 앞서가고 있지만 레거시 시장에서 중국의 거센 추격을 받고 있다. 가전 역시 글로벌 경기 둔화에 따른 부진이 계속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대대적인 상호관세 부과에 나서면 직접적인 대미 수출 감소와 함께 글로벌 경기 둔화 심화에 따른 악영향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수출 비중이 큰 철강 업계도 긴장하고 있다. 지난해 한국의 철강 수출에서 미국은 물량 기준 3위(9.8%), 금액으로는 1위(12.4%)를 차지했다.
철강 업계는 중국의 저가 공세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이런 상황이 심화할 가능성이 있다. 내수 부진에 시달리는 중국은 자국 내 과잉 생산된 철강을 수출로 해결하고 있는데, 상호 관세를 부과하면 중국산 저가 철강이 미국 대신 유럽이나 아시아 등으로 쏟아져나올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렇게 될 경우 연쇄 효과로 한국 철강 업체들도 가격 하락과 수익성 악화를 겪을 수 있다.
일각에선 현지 생산으로 관세 리스크를 피할 수 있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현대제철은 미국 현지에서 자동차 강판 등을 생산하는 제철소 건설을 검토 중이다. 포스코는 수소환원제철(HyREX) 기술 개발 등 미래 신사업에 대한 투자 기조를 이어간다. 인도 1위 철강사 JSW그룹과의 협력을 통해 글로벌 현지 사업 확장에도 나선단 계획이다.
강주헌 기자 zoo@mt.co.kr 유선일 기자 jjsy83@mt.co.kr 김지현 기자 flow@mt.co.kr
ⓒ 머니투데이 & mt.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