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일본의 국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여야의 공방전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어느 의원이 한쪽 눈에 안대를 한 상태로 마이크 앞에서 한참 얘기를 했다. 상대편의 한 의원이 구시렁거리는 말소리가 그의 귀에 들어갔다. ‘아이고 지겨워라, 눈도 한쪽밖에 없으면서 되게 똑똑한 척하네.’ 안대를 한 의원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무개 의원! 내 다 들었소. 일목요연(一目瞭然)!’ 한눈으로 봐도 분명하다는 뜻이다. 침묵의 시간이 잠시 흘렀고 비방한 의원은 낯이 벌겋게 돼 사과했다고 한다. 이런 것을 가리켜 임기응변이라고 할까 촌철살인이라고 할까. 말 한마디로 상대방을 제압한 것이다. 짧은 말 한마디가 멋있는 경우가 있다.
국민은 연설·발표·기자회견, 청문회 질문과 답변, 브리핑·토론 등을 통해 정치인의 말을 듣는데 그들은 말을 멋지게 할 줄 모른다. 상대방을 멋지게 제압할 줄도 모른다. 이렇게 말하면 어떨까.
“만해 선사는 타고 남은 재가 기름이 된다고 했습니다. 지금 나라 안팎으로 많이 춥습니다. 하지만 육사는 겨울을 강철로 된 무지개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지금 우리는 영랑의 말마따나 찬란한 슬픔의 봄을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소월이 그랬던 것처럼 나 보기가 역겨워 가고 싶다면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겠습니다. 껍데기는 가십시오.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십시오. 김수영은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다고 했습니다. 하늘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요? 들도 빼앗기고 봄도 빼앗기면 상화 시인이 울지 않겠습니까!”
국민은 연설·발표·기자회견, 청문회 질문과 답변, 브리핑·토론 등을 통해 정치인의 말을 듣는데 그들은 말을 멋지게 할 줄 모른다. 상대방을 멋지게 제압할 줄도 모른다. 이렇게 말하면 어떨까.
“만해 선사는 타고 남은 재가 기름이 된다고 했습니다. 지금 나라 안팎으로 많이 춥습니다. 하지만 육사는 겨울을 강철로 된 무지개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지금 우리는 영랑의 말마따나 찬란한 슬픔의 봄을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소월이 그랬던 것처럼 나 보기가 역겨워 가고 싶다면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겠습니다. 껍데기는 가십시오.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십시오. 김수영은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다고 했습니다. 하늘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요? 들도 빼앗기고 봄도 빼앗기면 상화 시인이 울지 않겠습니까!”
다들 국어시간에 꾸벅꾸벅 졸았는가. 정치권에서 나오는 낱말들이란 것이 궤변, 비방, 내란, 탄핵, 심판, 허위, 고발, 배신, 출혈, 거짓, 외압, 은폐…. 서로 공방을 벌이더라도 시를 인용해가며 좀 멋있게 싸울 수는 없는 것인가. 합심해서 성사시키는 일도 있으면 좋겠다. 하나를 양보하면 둘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 같다. 그래서 답답하다. 정쟁은 적당히 하고 시 한 수 즐길 여유를 되찾았으면 한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 교수]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