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7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을 방문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를 맞이한 뒤 손을 흔들고 있다. /AFP=뉴스1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의 정상회담이 7일(현지시간) 일본의 1조달러(약 1456조원) 대미투자와 미국산 LNG(액화천연가스) 수입 확대, 방위비 2배 증액 등 일방적인 선물 공세로 마무리된 듯 보이지만 양국의 이해득실은 좀더 면밀하게 따져봐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본이 크게 손해본 것이 없어 처지가 비슷한 한국이 참고할 만한 부분이 있다는 얘기가 뒤따른다.
양국 회담 결과를 살펴보면 전반적으로는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등을 무기로 무역적자 해소와 방위비 증액을 압박하고 이시바 총리가 대규모 투자를 포함한 선물 보따리를 안겼다는 평가가 중론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와우, 이시바 총리는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고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대선 공약이자 국정 최대 기조인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에 일본이 충분히 화답했다고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일본이 약속한 1조달러 투자는 2023년 일본의 대미투자 7833억달러(약 1165조원)보다 25%가량 많다. 방위비 2배 증액은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 1기 때부터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등 동맹국을 상대로 꾸준히 압박해온 방위비 인상 정책에서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보름여만에 거둔 첫 성과다.
"어차피 내줄 선물"…군비 확대 日 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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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7일(현지시각)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를 나누고 있다. /AP=뉴시스 |
하지만 일각에선 일본이 일방적으로 내주기만 한 것처럼 보이는 모양새가 겉보기일 뿐 따지고 보면 크게 양보한 것은 많지 않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세계 최강국이라는 지위를 앞세워 캐나다를 미국의 51번째 주로 편입하겠다거나 '중동의 화약고' 가자지구를 장악해 개발하겠다는 등 전 세계 각국을 상대로 상식을 넘어선 압박을 이어가는 상황에서 일본이 어차피 내줄 수밖에 없는 선물을 최대한 자국 이익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선택했다는 것이다.
일본의 방위비 2배 증액부터가 애초 제2차 세계대전 전범국가라는 이유로 군대 보유와 교전권을 금지한 평화헌법을 개정해 '보통국가화'를 추진하려는 일본 정부 내부 상황에서 보면 크게 양보한 조치가 아닐 수 있다. 군비 증강은 동북아 패권 경쟁 구도에서 미국의 안전 보장 조치와 함께 일본 정부가 꾸준히 시도했지만 역내 안보 불안을 초래할 수 있다는 주변국의 반발과 견제를 샀던 정책이기도 하다.
대미투자를 1조달러로 확대하기로 한 것이나 트럼프 대통령의 불허로 인수가 무산된 미국 철강업체 US스틸에 인수 대신 대규모 투자를 추진하기로 한 것도 지분 확보 등 투자가 어떤 방식으로 어느 만큼 이뤄지느냐에 따라 일본과 미국이 서로 '윈윈'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시바 총리는 이와 관련, 양국이 인공지능(AI)과 반도체 등 핵심기술 분야에서 양국이 협력을 확대하기로 했다고 언급했다. 일본이 반도체 기술 리더십 경쟁에서 과거보다 확연하게 밀려난 상황에서 미국과의 협력 강화는 경제적 측면뿐 아니라 기술안보 측면에서도 나쁘지 않은 선택지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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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트팀이냐가 중요한 시점"…美청구서 약했다 분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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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7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진행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 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함께 찍은 사진에 사인을 한 뒤 선물하고 있다. /AFP=뉴스1 |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초기 미국 우선주의를 몰아치는 가운데 실제 투자가 얼마나 이뤄지는지는 현재 시점에서 그닥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도 나온다. 일본 컨설팅업체 아스트리스 어드바이저리의 분석가 커크 보드리는 "지금은 '트럼프 팀'이냐 아니냐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한 때"라며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는) 4년 뒤에 목표를 달성했는지를 묻고 따지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시바 총리와 정상회담 전까지 캐나다·멕시코 등에 밀어붙였던 관세도 일방 부과가 아니라 상대국의 관세 수준에 맞춰 적용하는 상호관세로 성격이 바뀐 데다 일본을 직접적인 대상으로 공언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시바 총리가 굳이 각을 세울 필요가 없었다는 평가다. 한편에선 미국이 일본에 예상 이하의 청구서를 제시했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일본의 미국산 LNG 수입 확대는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에 대응할 수 있는 일본의 주요 거래 카드로 익히 거론됐던 방안이다. 이시바 총리는 이 대목에서도 LNG 수입을 "상호 호혜적인 방식"으로 늘리기 위해 협력하기로 했고 바이오에탄올 등 다른 자원도 "합당한 가격"에 구매할 의향이 있다고 방어장치를 걸어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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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코드 맞추기' 일관…"말로 '빚' 갚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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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7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 뒤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로이터=뉴스1 |
외교가에선 이날 회담이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마무리된 데는 이시바 총리가 지나칠 정도로 낮은 자세로 트럼프 대통령의 환심을 사기 위해 '아부의 예술'을 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시바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방위비 증액에 대해 설명하면서 "미국이 요구해서 한 것이 아니라 일본이 자체적으로 결정한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의 정책 결정권을 강조한 언급이라기보다는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 1기 때부터 세계 각국을 상대로 밀어붙여온 방위비 분담금 인상에 대한 비판이 이어지는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의 심기를 고려한 외교적 수사, 사실상의 립서비스라는 평가다.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는 "이시바 총리가 최선을 다해 트럼프 대통령을 칭찬하고 아부를 통해 웃음을 유발했다"며 "긴장으로 이어질 수 있는 관세 관련 질문을 철저히 차단했다"고 보도했다. 대니 러셀 아시아소사이어티정책연구소 부소장은 "이시바 총리가 충동성으로 악명이 자자한 트럼프를 능숙하게 다뤘고 시간을 벌었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호감을 사야 한다는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것 같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시바 총리가 조 바이든 전 행정부 당시의 LNG 수출 제한을 문제로 지적한 발언으로 '정무 감각'을 발휘한 데도 주목한다. 철저한 '트럼프 코드 맞추기'를 통해 이번 회담에서 "말로 '빚'을 갚았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가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위해 치밀하게 물밑 준비를 했다는 외신 보도도 있다. AP통신은 이시바 총리가 방미 전에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 전임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물론 트럼프 대통령과 각별한 친분을 쌓았던 고(故)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의 부인에게도 조언을 구했다고 전했다.
심재현 기자 urme@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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