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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장택동]19개 ‘모두 무죄’ 사과한다면서 ‘법 잘못’ 탓한 이복현

동아일보 장택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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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재직 당시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 합병 등 혐의로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을 기소했던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6일 “국민께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 회장에게 적용한 19개 혐의에 대해 2심에서도 ‘모두 무죄’ 판결이 나오자 고개를 숙인 것이다. 2020년 9월 이 원장의 주도로 검찰이 “판례, 증거관계, 사안의 중대성” 등을 강조하며 기소를 밀어붙인 지 3년 반 만이다. 그런데 발언의 내용을 짚어 보면 뒷맛이 개운치 않다.

▷먼저 뭘 사과한다는 것인지 모호하다. 이 원장이 사과한 직접적인 대상은 “국민”과 “공판업무를 수행해 준 후배 법조인들”이었다. 정작 본인이 기소한 사건으로 100차례 넘게 공판에 출석하며 고통을 겪은 이 회장과 피해를 당한 삼성그룹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또 자신이 “기소 결정을 하고 논리를 만들고 근거를 작성”했는데 “법원을 설득할 만큼 단단히 준비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사과한다”고 했다. 기소가 잘못됐다기보단 탄탄하게 기소하지 못한 게 문제라는 취지로 들린다. 과연 그런가.

▷검찰에서 이 사건을 수사할 당시 무리한 수사라는 지적이 나온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삼성 계열사 등을 50여 차례 압수수색하고 관련자 110여 명을 조사하는 등 저인망식 수사를 펼쳤는데도 이 회장을 비롯한 삼성 경영진에 대한 구속영장은 줄줄이 기각됐다. 검찰수사심의위원회에서 10 대 3의 압도적 의견으로 수사 중단과 불기소를 권고했을 때라도 받아들였어야 했지만 거부하고 기소를 강행했다. 결국 재판에서는 단 하나의 혐의도 인정되지 않았다. 이 과정에 대한 이 원장의 사과는 없었다.

▷나아가 이 원장은 “사법부가 법 문헌 해석만으로는 주주 보호 가치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며 법률 개정을 주문했다. 법의 미비, 법원의 소극적 해석으로 유죄 판결을 받지 못했다는 뉘앙스가 담겨 있지만 핑계로 비칠 뿐이다. 법률이 어떻게 돼 있든 검사는 법적으로 처벌할 수 있는 사안만 기소해야 하는 것이다. 더욱이 이 사건에서 검찰이 압수한 디지털 자료들이 적법 절차를 지키지 않아 증거능력을 인정받지 못했고, 그럼에도 항소심 재판부는 핵심 증거 229개를 살펴본 뒤 무죄라고 결론 내렸다. 검찰의 수사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는 얘기 아닌가. 법률 탓, 법원 탓으로 돌릴 계제가 아니다.

▷이 회장이 사법 리스크에 발이 묶인 9년간 삼성의 글로벌 이미지는 실추되고 경쟁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하나의 기업에 국한된 게 아니라 국가 경제 전체에 타격을 준 일이다. 검찰의 수사팀장이었던 이 원장이 비판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그런데도 사과인지, 변명인지 모를 발언을 내놓는 걸 보니 책임의 무게를 느끼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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