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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사일언] 정말 행복하게 살았을까요?

조선일보 박시영 2025 신춘문예 미술평론 당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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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풍칠월도’는 사시사철 농가의 풍속을 내용으로 하여, 왕에게 농민의 수고와 농경의 실상을 알리는 학습용 교재였다. 유교 경전인 ‘시경’의 내용을 도해한 글과 그림인데, 조선 시대를 다룬 역사 문헌에는 “국왕께서 칠월을 암송하거나 그림을 보셨다”와 같은 내용이 자주 등장한다.

‘칠월’은 선비와 성군이 농사짓는 백성들의 처지를 잊지 않고, 마음 깊이 성찰해 가며 올바른 통치를 한다는 이야기로 시작해 백성들은 모두가 평화롭고 배부르게 살았다는 이야기로 끝이 난다. 군신이 함께 읽은 ‘칠월’엔 그 본문을 그림 위에 모두 적은 후, 노래의 내용을 재현한 조선 시대 서화가 이방운의 그림이 많이 실려 있다. 매 계절에 맞는 배경 묘사와 그 계절에 느껴지는 정서를 표현한 이방운의 그림에선 농민들의 근면함이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내용은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와는 다르다. 서화 속 ‘칠월’에선 모두가 풍요롭고 자연은 심술이 없으며, 탐관오리의 착취도 없다. 하지만 역사를 배운 이라면 누구나 알다시피 우리의 역사에 난세가 아닌 시절은 없었다. 백성이 근면해도 가난을 면할 수 없다면 이는 백성의 문제가 아니다. 전통에 따라 왕은 ‘칠월’을 보고 배우긴 했으나, 실제와는 다른 그저 ‘이상적 농촌’의 모습에 불과했다.

관리들은 왜 있지도 않은 사실을 그림과 글로 만들어 곁에 두고 보았을까. 사대부가 다스리는 조선이라는 나라에서 자신들의 바른 정치 덕분에 백성들이 행복하게 살았다는 것을 거짓으로라도 만들어 눈에 담고 싶었을 것이다. ‘칠월’을 보면, 마치 어릴 때 읽었던 “그래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고 말하던 동화 속 공주들의 이야기 같다. 그러나 그 뻔한 결말 후에 벌어졌을 이야기를 추측해 보면, 그들은 결국 현실을 마주했을 것이고 그래서 그다지 행복하지만은 않았으리라는 사실을 누구나 헤아려 짐작할 수 있다.

예술은 허구의 세계를 만들어내지만, 현실을 잊은 채 아무 관련도 없는 척 편집되고 감상되는 예술이 과연 가치가 있을까. 그림이 아무리 훌륭해도 조선 시대 ‘칠월’처럼 오로지 특정 부류의 사람들만을 위해 각색된 것이라면, 이상적인 예술은 아닐 것이다.

[박시영 2025 신춘문예 미술평론 당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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