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18일 서울 강남구에서 진행된 한국자살유족협회 창립총회 기념사진. 앞줄 왼쪽부터 하상훈 한국생명의전화 원장, 전홍진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전 중앙심리부검센터장), 조성돈 라이프호프 기독교자살예방센터 대표, 양두석 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안실련) 자살예방센터장, 강명수 한국자살유족협회장, 윤정현 한국생명운동연대 공동대표, 기타리스트 송형익씨, 이종국 국립공주병원장. |
자살 사고로 가족과 친구, 동료를 잃은 ‘자살사별자’(Suicide Bereaved)가 함께 목소리를 모을 수 있는 단체가 출범했다. 국내 처음으로 자살유족이 직접 주체가 돼 사회적 인식 개선 활동과 관련 법 개정 등에 나서게 된다.
한국자살유족협회가 지난 1월18일 창립총회를 열고 출범했다. 자살사별자 온라인 모임인 ‘미안하다 고맙다 사랑한다’(미고사)와 자살유족 자조모임 ‘자작나무’, 자살유족 심리지원 단체인 라이프호프 기독교자살예방센터 등이 지난해 6월 발족했던 ‘자살유족지원운동본부’가 주축이 됐다. 앞서 이들 단체는 자살예방법 법률 개정, 자살유족 지원센터 설립 등을 목표로 서명 운동을 진행하고 자살유족 돌봄 전국 순회 포럼인 ‘자살, 말할 수 있는 죽음’을 진행해왔다.
이날 초대 회장으로 추대된 강명수 회장(미고사 운영진, 상담심리 전문가)은 “해마다 1만3천 명 넘는 자살 사망자가 발생하고 이 영향을 받는 주변인은 13만여 명에 달하지만 이들을 위한 심리·사회·경제적 문제 해결과 지원은 요원하다”며 “특히 우리나라 문화에선 자살유족이 단체장이 돼 이러한 일을 시작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어려웠다”고 말했다. 이어 “저도 어머니를 잃은 지 43년이 지났는데, 이제야 시작하게 됐다”며 “그동안 누군가 나오기를 기다려왔지만, 결국 밀려서 여기까지 왔다”고 덧붙였다.
자살은 ‘사회적 재난’이라고 불릴 정도로 주변에 끼치는 영향이 크다. 자살 사망자 1명당 5~10명이 그 영향을 받는 것으로 추정된다. 매년 6만~13만 명의 자살유족이 발생하며, 누적된 전체 규모는 국내 인구의 10%가량을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유족 외의 친구나 동료 등 주변인까지 범위를 넓히면 한국인 4명 중 1명이 자살사별을 경험하고 우울감·자살행동 등 마음건강이 악화한다. 우울증 위험도가 일반인보다 7배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그럼에도 자살사별자가 적절한 심리지원을 받는 규모는 약 12%에 불과하다.
국가적 지원도 2019년에야 ‘자살유족 원스톱서비스 시범사업’이 실시됐다. 소중한 사람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사회적 편견 등으로 자살사별 사실을 숨기거나 회피하는 경향 때문이다.
자살유족 윤아무개씨가 10년 전 중앙심리부검센터에서 진행한 한 간담회에서 자살유족 원스톱 지원사업의 필요성을 정부에 요청한 당시 발언문 모습. |
이에 협회는 향후 자살예방법 개정 등 사회적 인식 개선 활동과 관련 학술·정책 연구, 자살 유가족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 사업 등에 중점을 두고 활동할 계획이다. 특히 경제적 지원과 심리지원 활동을 체계적으로 구축해 ‘자살유족 원스톱센터’ 설립도 추진한다. 자살유가족돌봄 순회포럼, 매년 11월 셋째 주 토요일 ‘세계자살유족의 날’을 기념하는 자살유족 캠프 등 자살사별자들이 함께 모일 수 있는 자리도 계획 중이다. 또한 자살사별자가 부담 없이 협회에 참가해 연대할 수 있도록 회비 부담도 최소화하겠단 방침이다.
이들 활동이 자살유족에 대한 실질적 지원 확대와 사회적 인식 개선은 물론 국가적인 자살 예방 효과도 낼 것으로 기대한다. 앞서 2006년 일본에서 ‘자살 대책 기본법’ 제정을 끌어낸 자살유족단체 ‘라이프링크’의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이 단체는 ‘누구도 자살로 내몰리지 않는 사회’를 표방하며 자살을 사회문제로 인식하는 데 기여했으며, 법 제정 후 3년 만에 일본의 자살률은 30% 이상 감소했다.
약 10년 전 중앙심리부검센터 간담회에서 자살유족 원스톱 지원사업의 필요성을 제기했던 자살 유가족 윤아무개씨도 협회 창립 소식을 듣고 기쁜 마음에 이날 새벽부터 광주광역시에서 서울로 왔다. 이날 그는 10년간 소중히 간직해왔던 당시 발언문을 가져와 펼쳐 보이기도 했다. 윤씨는 “올해 4월이면 남편과 사별한 지 딱 10년이 된다”며 “그간 이런 단체가 만들어지기를 얼마나 바랐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이어 “개인적으론 갑자기 떠난 남편을 대신해 직장을 구하고 최선을 다해 살면서 아이들을 키우고 행복도 찾았지만, 사회적으론 10년간 크게 변한 게 없어 여전히 숨어 살 수밖에 없었다”며 “이제는 남편을 개인적으로 애도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글·사진 최지현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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