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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바늘구멍 계급정년' 스트레스

중앙일보 정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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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경 이상 537명, 승진 못하면 퇴직
일반 공무원들보다 10배 치열
순경 출신 총경 퇴직자도 1%뿐
23일 오전 6시. 그는 평소처럼 조심스레 문을 열고 집을 나섰다. 경기도 고양시에서 서울로 출근하기 위해선 늘 이른 시각에 버스를 타야 했다. 서울의 일선 경찰서 과장으로 일하는 A(47) 경정. 그러나 그날 그는 버스에 오르지 않았다. 두 시간 뒤 그는 고양시 행신동의 한 야산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그의 바지 뒷주머니에는 유서가 꽂혀 있었다. 유서엔 세 아이의 이름과 함께 이런 말이 적혀 있었다. “승진을 못해 미안하다.”

A경정은 경찰대(5기) 출신이다. 엘리트 코스를 밟아 온 그의 죽음은 경찰 내부를 술렁이게 했다. “승진 스트레스로 자살한 A 경정의 심정에 공감이 간다”는 반응이 많았다. 실제로 경찰은 승진 경쟁이 그 어느 정부 조직보다 치열하다. 고위직·관리직 비율이 공무원 중 최하위 수준인 데다 계급 정년까지 엄격하기 때문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10월 현재 총경(공무원 4급 해당) 이상은 537명으로 전체 경찰관(10만2387명)의 0.5%에 불과하다. 일반직 4급 공무원이 전체의 6.4%인 것과 비교하면 10배 이상 차이가 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순경공채로 들어와 일선 경찰서장급인 총경으로 승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2012년도 최종 계급별 경찰관 정년퇴직 현황’에 따르면 순경공채 출신 정년퇴직자 가운데 총경으로 퇴직한 사례는 1%에 불과했다. 초임 때부터 경위 이상 간부로 임용되는 경찰대 출신이나 경정으로 임용되는 사법·행정·외무고시 출신 경찰관들의 압박은 더 심하다. 계급정년 제도 때문이다. 경찰관의 연령 정년은 60세다. 하지만 엄격한 계급체계인 경찰은 경정 이상부터 계급별 정년을 별도로 정하고 있다. ▶경정 14년 ▶총경 11년 ▶경무관 6년 ▶치안감 4년 등이다. 계급정년 내에 승진하지 못하면 60세가 되지 않았더라도 퇴직해야 한다.

인사 규칙상 승진정년도 따로 있다. 예컨대 경정의 계급정년이 14년이더라도 10년 차가 넘어가면 사실상 승진이 불가능해진다. 경정 10년차부터는 인사 평가에 반영되는 경력 점수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A 경정도 올해 8년차 경정이었다. 2년 이내에 총경으로 승진하지 못하면 경정 계급정년이 되는 2019년에 53세로 퇴직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경찰대 출신인 한 경정(44)은 “36세에 경정을 달고 계급정년 내에 승진하지 못하면 50세에 퇴직해야 한다” 고 말했다.

경찰은 총경이 맡던 일선 경찰서 서장을 경무관이 맡도록 하는 중심경찰서 제도를 신설하는 등 고질적인 승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를 마련 중이다.

정강현 기자

정강현 기자 foneo@joongang.co.kr

▶정강현 기자의 블로그 http://blog.joins.com/fon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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