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14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안 가결이 선포되자 여의도에 모인 시민들이 환호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
“(탄핵) 반대 집회가 함께 있었던 날, 어린 여성들만 골라 시비를 거는 무리들을 마주쳤습니다. 그들은 제게 중국인이라 했고 끊임없이 조롱했으며, 제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무례를 수도 없이 저지르며 찍지 말라는 이야기에도 동영상 촬영을 했습니다. 조금 전 (탄핵) 찬성 집회에서 시민 발언을 듣고 희망을 느꼈건만 이들을 만난 일 하나로 회의감과 슬픔, 절망이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였습니다.”
12·3내란사태 이후 광장에 나와 윤석열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고 있는 한 청년이 ‘민주주의 위기를 실감한 경험’ 중 하나다. 윤석열 대통령 지지자들의 서울서부지법원 난입 불법 폭력사태가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안긴 가운데, 1030청년들은 ‘내란 시도와 이를 옹호하는 모습’뿐 아니라 ‘극우의 세력화, 정치의 양극화’에서도 민주주의 위기를 체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윤석열퇴진을위해행동하는청년들’(윤퇴청)은 23일 이런 내용이 포함된 온라인 설문조사 ‘왜 광장에 나오셨나요?: 시대가 묻고 광장이 답하다’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 1~13일 엑스(X·옛 트위터)와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모집한 집회 참여 경험이 있는 10~30대 약 1천명을 대상으로 한국 민주주의 위기의 심각성과 이를 실감한 장면 등을 물었다. 전체 응답자 954명 가운데 여성은 732명(76.7%)으로 남성 113명(11.8%)보다 6배 이상 많았으며, 성별을 밝히지 않은 이들은 52명(5.5%)이었다. 연령별로 보면 30대 응답자가 488명으로 절반 이상(51.1%)이었으며, 20대(47.3%), 10대(1.6%) 순이다.
1030청년들은 ‘권력 집중과 남용’(5점 척도 중 4.8점, 점수 높을수록 심각)을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가장 심각한 문제로 보고 있다. ‘경제적 불평등 심화’(4.7점), ‘정치 양극화로 인한 사회적 갈등의 심화’·‘공정성의 상실’·‘다양성에 대한 포용 부족’(이하 4.6점)도 상대적으로 심각하다고 보았다. 민주주의 위기를 느낀 구체적인 사례(주관식 선택 문항)에 대해선 모두 351건의 답변이 나왔는데, 그중 113건(37.9%)은 ‘비상계엄 선포와 국민의힘 계엄 옹호’ 관련 내용이었다. 한 응답자는 “국가 수사기관들이 국민이 아닌 대통령실 눈치를 보고 있다는 사실, 지연되는 탄핵으로 인해 ‘전략적 계엄’, ‘이게 탄핵감이냐’ 등 계엄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완전히 훼손했다는 사실을 망각하는 듯한 여론이 조성되는 분위기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답했다.
12·3 내란사태에 이어 두 번째로 언급이 많았던 건 ‘혐오의 확산과 극우의 세력화, 정치 양극화’ 문제다. 서울서부지법 난입 불법 폭력사태 이전 조사 결과임을 고려할 때, 청년들 사이에서는 극우의 세력화에 대한 위기감도 상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답변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탄핵 촉구) 집회 나가는 사람은 중국인, 공산당, 외국인이라는 말을 하는 사람이 적지 않게 있는 것을 보면, 탄핵은 예정대로 이뤄지겠지만 이후 제대로 된 정치나 시민들 간 소통은 오랜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극우 세력을 선동하는 거짓 뉴스가 심각하다. 혐오와 불안, 민주 사회에 대한 균열을 야기하고 있다” 등이다. 위기에 처한 민주주의 강화를 위해선 ‘경제적 불평등 해소와 기회 평등 보장’(59.3%), ‘시민 참여와 의견 수렴 확대’(58.1%), ‘정치 양극화 완화와 협치 문화 구축’(55.8%) 등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2024년 12월14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안 가결이 선포되자 여의도에 모인 시민들이 환호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
1030청년들이 탄핵 촉구 집회에 참여한 이유(중복 응답)는 ‘비상계엄에 충격을 받아서’(73.2%) ‘시민으로서 책임을 실천하기 위해’(72.7%), ‘계엄 선포 이전부터 윤석열 정부의 정책과 행태에 실망해서’(71.6%) 순이었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회문제 개선을 위해’(36.2%)라고 답한 이들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윤퇴청 쪽은 “비상계엄 자체가 한국사회에 준 충격이 매우 크며, 이는 청년들이 광장에 참여하는 주요한 동력이라는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고 풀이했다. 윤석열 퇴진 집회에 참여하기 이전 집회 참여 경험이 없는 응답자는 36.9%(352명)에 달했다.
광장의 요구 1순위로는 ‘사회대개혁을 위한 사회 문제 해결’(63.1%)이 꼽혔는데 이는 ‘내란 수사 및 책임자 처벌’(194명, 20.3%), ‘윤석열 파면’(91명, 9.5%)보다 높은 순위다. 이런 결과에 대해 윤퇴청 쪽은 “대통령 탄핵소추안에 대한 국회 가결 이후 설문조사가 이뤄져 다수 시민은 탄핵은 완수될 가능성이 큰 과제로 생각했을 것”이라며 “반면, 사회대개혁 등은 향후 시민들이 광장에서 더욱 중요하게 요구해나가야 할 과제라고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윤퇴청은 지난해 윤석열 퇴진을 요구하는 ‘청년시국선언’을 제안하며 시작된 모임으로, 직장인·대학생·대학원생 등 2030 청년들의 자원활동으로 운영되고 있다.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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