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혼란 격화되며 비방 난립
설날 앞두고 규정위반도 횡행
게시기간 넘어도 그대로 걸고
어린이 보호구역 침범하기도
“합법 범위서 현수막 정치를”
서울시, 정당현수막 집중단속
설날 앞두고 규정위반도 횡행
게시기간 넘어도 그대로 걸고
어린이 보호구역 침범하기도
“합법 범위서 현수막 정치를”
서울시, 정당현수막 집중단속
지난 22일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도동 국회의사당 정문에 설치돼 있는 게시기간을 지난 새미래민주당의 정당 현수막. 해당 현수막의 게시 기간은 지난 6일부터 20일까지다. [지혜진 기자] |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정치 혼란이 격화하며 정치권을 중심으로 다른 정당이나 국회의원을 비난하는 정당 현수막이 급증하면서 도심 풍경이 혼란스러워지고 있다. 설 연휴를 앞두고 대폭 늘어난 현수막 중 일부는 설치 기준을 어긴 채 불법으로 자리를 차지하며 시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23일 매일경제가 서울 영등포구(국회의사당 소재), 마포구(서부지법 소재), 종로구(광화문, 헌법재판소 소재), 용산구(윤석열 대통령 관저 소재) 등 서울 시내 거점을 직접 확인한 결과 대다수 지역에 불법 소지가 있는 정당 현수막이 대거 설치돼 있었다.
최근 길거리에 자주 보이는 정당 현수막에는 “그래 (오른쪽이) 별로 잘한 건 없어 그렇지만 (왼쪽) 니는 잘했나?” “찐 내란 수괴! 이재명 체포!” “내란 수괴 윤석열 구속! 국민의힘 정당 해산!” 등 상대 정당을 공격하는 문구가 대다수였다. 설 인사와 정치 문구를 결합한 “윤석열 내란 수괴 파면으로 평안한 2025년 만들겠습니다” 같은 현수막도 있었다.
현수막 업체를 운영 중인 A씨는 “비상계엄이 선포된 초창기에 국민의힘이나 더불어민주당 측에서 탄핵 관련 현수막 문의가 여럿 들어왔다”며 “접수를 받을 때 정당 현수막 게재에 대한 규칙을 공지하지만 현수막 신청자가 게시하고 싶은 위치나 지역을 막무가내로 지정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지난 22일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 동화면세점 앞에 게시기간을 지나 설치돼 있는 자유통일당의 정당 현수막. [이수민 기자] |
최근 들어 정당 현수막이 부쩍 늘어난 것은 윤 대통령 탄핵심판과 설 연휴가 겹치면서 정치인과 정당이 자신들의 존재감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려 하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르면 5월, 늦어도 6~7월에는 조기 대선에 들어갈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각 정당이 지금부터 선거를 준비하는 것”이라며 “어떻게든 관심을 끌어야 강성 지지층에게 인상을 남기고 지지세력을 강화할 수 있으니 현수막을 거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지난해 1월 12일부터 시행된 현행 옥외광고물법에 따르면 정당 현수막은 읍·면·동별 2개 이하로만 15일간 설치할 수 있다. 면적이 100㎢ 이상인 읍·면·동은 1개까지 추가 설치가 가능하다. 정당 현수막에는 정당명, 연락처, 게시 기간을 반드시 명시해야 한다. 또 어린이보호구역과 소방시설 주변 정차·주차 금지표시 구간에는 아예 설치해서는 안 된다. 교차로, 횡단보도, 버스정류장 주변 일정 구간(5~10m) 내에는 높이 2.5m 미만의 현수막을 설치할 수도 없다. 가로등·전봇대 등에는 전도사고를 막기 위해 현수막을 2개 초과해 걸 수 없다.
지난 22일 서울특별시 종로구 안국동에 설치된 조국혁신당의 정당 현수막. 책임자, 게시기간 등이 적혀 있지 않아 종로구청장이 발행한 ‘불법 옥외광고물 정비 안내문’이 붙었다. [이수민 기자] |
그러나 취재 중 곳곳에서 법령을 위반한 정치 현수막을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 22일 종로구 안국동에 걸려 있는 조국혁신당의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 현수막에는 현수막 책임자와 게시 기간이 적혀 있지 않아 종로구청장이 발행한 ‘불법 옥외광고물 정비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도 새미래민주당과 기본소득당의 현수막이 게시 기간을 넘긴 채 걸려 있었고 내일로미래로당의 현수막은 게시 기간을 적지 않은 채 걸려 있었다.
옥외광고물법 시행령에 따르면 가로등, 전봇대 등에 현수막을 많이 설치할 경우 전도위험이 있어 정당 현수막을 2개 초과해 설치할 수 없고, 횡단보도 인근 10m내에는 2.5m 미만 높이의 정당 현수막을 설치할 수 없다. 지난 23일 합정역교차로에 설치된 정당 현수막이 해당 규정들을 위반한 모습. [지혜진 기자] |
마포구 합정동 합정역 교차로와 강서구 등촌동 등촌사거리에는 횡단보도 10m 이내에 높이가 2.5m 미만인 정당 현수막이 설치돼 있었고, 동일한 전봇대에 3개 이상의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마포구 공덕동 공덕오거리에는 8개의 정당 현수막이 설치돼 있어 읍·면·동별 설치 개수도 기준을 위반했다. 종로구 어린이보호구역에도 정당 현수막이 설치돼 있었다.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서울시 정당 현수막 철거 현황은 1124개였지만 그해 12월에는 1971개로 한 달 새 2배 가까이 급증했다. 세부적으로는 설치 기간 위반(764개→930개)이 가장 많았고 개수 위반(133개→334개), 금지 장소 위반(26개→128개), 설치 방법 위반(62개→119개), 표시 방법 위반(38개→66개), 규격 위반(0개→5개) 순으로 모든 위반 사항이 대폭 늘었다.
정당 현수막 관련 민원도 지난해 11월 429건(신문고 278건, 유선 99건, 방문 52건)에서 같은 해 12월 602건(신문고 336건, 유선 184건, 방문 27건)으로 크게 증가했다.
지난 22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공덕오거리에 설치된 정당 현수막들. [사진 = 지혜진 기자] |
지난 22일 서울특별시 여의도동 국회의사당앞 교차로 인근에 설치돼 있는 게시기간이 지난 기본소득당의 정당 현수막. 해당 현수막의 게시기간은 지난해 12월 12일부터 26일까지다. [지혜진 기자] |
일각에서는 지지층만을 겨냥한 극단적 메시지를 담은 현수막이 정치 혐오를 불러일으킨다는 지적이 나온다. 직장인 이현우 씨(29)는 “요즘 거리에 탄핵과 구속 등에 관한 강한 문구의 현수막이 자꾸 눈에 띄는데 볼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는다”며 “자기들 밥그릇 싸움 때문에 평화로운 도로를 뺏은 게 괘씸하고 도리어 반감만 생긴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격화되는 정쟁에 정당 현수막이 훼손되는 정치 테러도 발생하고 있다. 21일에는 울산 울주군 KTX 울산역 인근에서 “윤석열 즉각 체포 구속하라”고 적힌 진보당의 현수막이 가로로 길게 찢긴 채 발견됐다. 옆에 있던 “내란 옹호 국민의힘은 국민이 두렵지 않습니까?”라고 적힌 민주당의 현수막도 함께 훼손됐다. 앞서 20일 울산 동구 방어동에서도 김태선 민주당 의원이 국민의힘을 비판하며 내건 현수막이 찢긴 채 발견돼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지난 20일 울산 동구 방어동에서 김태선 민주당 의원이 국민의힘을 비판하며 내건 현수막이 찢긴 채 발견됐다. [사진 = 김태선 의원 SNS] |
한편 행정안전부는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20일부터 다음달 7일까지 3주간 불법 현수막 실태를 점검하고 법령 위반 현수막을 일체 정비한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다음달 14일까지 4주간을 설 연휴 불법 현수막 집중 점검 기간으로 정하고 대대적인 정비에 나설 예정이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각 정당이 비상계엄 선포 후 물 들어왔을 때 노 저어야 한다는 심정으로 현수막 물량 공세를 하고 있다”며 “게시 규칙을 위반하거나 과격한 문구는 위법일 뿐만 아니라 대중에게 피로감을 줄 수 있기에 법령을 지키는 선에서 현수막 정치를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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