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테크(중국 기술 기업)’를 필두로 중국 기업의 한국 내수 시장 공습이 본격화했다. ‘융단폭격’이라는 표현이 지나치지 않을 만큼 침투 범위가 전방위적이다. 이커머스 시장에선 이미 ‘알·테·쉬’로 불리는 알리익스프레스, 테무, 쉬인 등이 한국에서 시장 지배력을 키우는 가운데 업종 불문 중국 기업의 한국 시장 신규·재진출 사례가 잇따른다. 트럼프 행정부 2기 출범을 맞아 미국의 대중국 견제가 갈수록 거세지는 가운데 자국 내수 둔화에 따른 과잉 재고를 해결하려 한국 등 수출국 다변화에 나서고 있단 진단이다.
‘저렴한 가격에 낮은 품질’이라는 인식이 팽배했던 과거와 달리 최근 중국 기업은 가성비에 기술력까지 갖췄단 평가다. 안방을 사수해야 할 한국 기업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내수 위축과 총수요 감소에 따른 과잉 재고를 해결하려 수출 다변화에 나서는 과정에서 한국 시장에서도 피 말리는 점유율 경쟁이 펼쳐질 것으로 진단한다.
중국 전기차 강자인 BYD(비야디)가 한국 시장 진출을 선언했다. 가성비와 높은 성능을 앞세워 한국 전기차 시장을 빠르게 공략하겠다는 포부다. 사진은 모터쇼에 전시 중인 BYD 전기차 모습. (AFP=연합뉴스) |
中 기업 전방위 파상공세
자동차·IT·가전·소비재 ‘긴장’
중국 기업이 한국 시장을 겨냥해 파상공세를 펴고 있다. 자동차·IT·가전·소비재 등 거의 모든 영역에 걸쳐 침투 범위를 확장 중이다.
자동차 산업에선 중국 전기차 회사 BYD 진출로 긴장감이 팽배하다. BYD는 올 1월 16일 한국에서 승용차 브랜드를 공식 출범한다. BYD가 국내 승용차 시장에 진출하는 건 지난 2016년 상용차 판매를 시작한 지 9년 만이다. BYD는 딜러사 6곳을 선정해 서울·경기·인천·부산·제주 등 전국적인 판매망을 갖췄다. 판매 모델로는 중형 세단 ‘씰’,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아토3’, 소형 해치백 ‘돌핀’ 등이 물망에 오른다. 해당 모델은 현재 환경부 국립환경과학원에서 배출가스 인증 절차를 밟는 중이다. BYD는 지난 2023년 일본 진출 때도 아토3와 돌핀을 앞세웠다.
한때 BYD는 중국 내수용 기업으로 폄하됐지만 이제는 위상이 달라졌다. 지난해 전 세계에서 전기차 176만대를 판매해 1위 테슬라(179만대)와 격차를 3만대로 좁혔다. 판매량 대부분이 중국에서 나왔지만 동남아와 남미를 중심으로 해외 판매량을 빠른 속도로 늘리고 있다.
IT 시장에선 국내 소비자에게 잘 알려진 샤오미가 한국 기업을 위협한다. 국내 소비자에게 샤오미는 친숙한 브랜드로 이미 품목별로 적잖은 침투율을 보인다. 샤오미는 2016년부터 한국에서 총판을 운영했다. 현재 국내 내수 시장을 겨냥해 스마트워치, 로봇청소기, 공기청정기, TV·모니터, 자급제 스마트폰 등을 판매한다. 자신감을 얻은 샤오미는 최근 한국법인 샤오미테크놀로지코리아를 설립하고 약 20명의 직원이 업무를 시작했다. 샤오미는 한국에서 올 상반기 오프라인 매장을 낸다. 레드미와 포코 등 중저가 스마트폰을 집중 판매해 안정적 점유율 확보를 노린다. 샤오미의 글로벌 스마트폰 점유율은 지난해 3분기 기준 삼성, 애플에 이어 3위까지 올라왔다.
최근 국내 시장에서 존재감이 두드러지는 로보락도 샤오미가 투자한 업체다. 로보락은 이미 한국 로봇청소기 점유율 1위다. 로보락은 탄탄한 기술력으로 프리미엄 카테고리 포지셔닝에도 성공했단 평가다. 로보락은 롯데·현대 등 국내 주요 백화점에 줄줄이 입점해 프리미엄 시장을 파고들었다. 최신 제품 가격은 180만원에 달한다. 로보락은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버티고 있는 국내 세탁건조기 시장도 호시탐탐 노린다.
한국 TV 시장에서도 중국 기업 점유율이 늘고 있다. 글로벌 TV 출하량 2위 TCL은 2023년 한국법인을 세웠다. 하이센스는 쿠팡과 손잡고 TV를 판매하며 AS까지 제공한다.
유통업계에선 저가 유통과 이커머스 산업에서 위기감이 높다. 이 부문은 다른 산업 대비 소비자 가격 탄력도가 유독 크다고 평가받는다. 가성비로 중무장한 중국 기업 침공이 예사롭지 않은 이유다.
국내 저가 유통은 다이소를 제외하면 이렇다 할 경쟁 기업이 없다. 최근 ‘중국판 다이소’로 불리는 미니소가 한국 시장에 재진출해 긴장감이 팽배하다. 미니소는 팬시 용품, 화장품, 생필품 등을 판매하는 중국 소매점이다. 미니소는 지난해 12월 14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도 매장을 내고 영업을 시작했다. 미니소는 2016년 한국 시장에 진출했다가 2021년 철수했는데, 3년 만에 재진출한 것이다.
2013년 창립한 미니소 해외 점포는 지난해 9월 기준 2936개로 전체 매장(7420개)의 40%에 달한다. 해외 매출이 가파르게 늘면서 미니소의 지난해 3분기 누적 매출은 123억위안(약 2조5000억원)으로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23% 늘었다. 예궈푸(葉國富) 미니소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는 앞으로 5년간 매년 900~1100개 매장을 새로 열 계획이라고 현지 언론에 밝혔다. 미니소는 5년 뒤 매출 절반을 해외에서 올리는 게 목표다.
2021년 한국 시장에서 철수하며 패배를 맛본 미니소는 한층 더 강해진 모습으로 돌아왔다. 미니소는 중국 시장에서 익힌 ‘IP(지식재산권) 확장 전략’으로 국내 시장을 정조준했다. 인기 IP와 협약을 맺고 관련 상품을 독점으로 팔아 단순 가성비만 내세우는 다이소를 넘겠단 포부다. 미니소는 해리포터, 디즈니 등 글로벌 콘텐츠와 IP 계약을 체결하고, 한국 매장에 캐릭터 상품을 선보였다. 소비자가 몰려 해리포터 협업 상품은 품절 대란을 빚었다. 미니소는 대학로를 시작으로 서울 홍대, 건대입구 등에 신규 매장을 준비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커머스 시장도 중국 기업이 예봉을 벼른다. 중국 알리바바그룹 계열 알리익스프레스와 핀둬둬 자회사 테무가 대표 주자다. 알리익스프레스는 지난 2018년 한국 시장에 진출한 뒤 한국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낸다. 리테일 분석 서비스 와이즈앱·리테일·굿즈에 따르면, 알리익스프레스의 월간 활성 이용자 수(MAU)는 지난해 12월 기준 899만명으로 쿠팡에 이은 2위다. 알리익스프레스는 최근 신세계그룹 계열 플랫폼 G마켓(지마켓)과 동맹 관계 구축으로 또 한 번 눈길을 끌었다. 알리바바와 신세계그룹은 올 상반기 알리익스프레스와 G마켓이 합류하는 합작법인을 설립한다. 알리익스프레스는 G마켓 보유 60만 판매자를 지렛대 삼아 한국 시장점유율을 늘릴 수 있게 됐다. 테무도 기세가 매섭다. 테무는 초저가 상품을 앞세워 지난해 12월 813만명의 MAU를 확보해 11번가를 제치고 3위에 올랐다. 이커머스업계에서는 테무가 연내 한국지사를 설립하고 경쟁의 고삐를 죌 것이라는 관측이 무성하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중국 기업은 저렴한 가격, IP 독점 상품 등 한국 기업이 갖추지 못한 경쟁력을 갖췄다. 국내는 애국 소비 정서가 약해 틈을 보이면 순식간에 점유율을 뺏길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게임 시장은 이미 중국 기업에 안방을 내준 지 오래다.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최근 1개월 앱마켓 매출 순위 10위 안에 오른 한국 게임은 ▲리니지M(1위) ▲오딘: 발할라 라이징(4위) ▲리니지2M(7위) ▲리니지W(10위) 등 4종에 불과했다. 10위권 내 나머지 자리는 ▲라스트 워: 서바이벌(2위) ▲WOS: 화이트아웃 서바이벌(3위) ▲소녀전선2: 망명(5위) ▲카피바라 GO!(8위) 등 중국 게임이 채웠다. 10위권에 이름을 올린 4종의 한국 게임도 모두 3~7년 전 나온 구작이다. 이외 한국에서 인기몰이 중인 핀란드 게임사 슈퍼셀(브롤스타즈)과 라이엇게임즈(리그 오브 레전드·LoL)도 중국 거대 게임·IT 기업 텐센트의 100% 자회사다.
한국에 진출했다 철수한 미니소는 3년 만에 다시 한국에 진출했다. 다이소가 장악한 저가 유통 시장에서 반격을 꾀한다는 목표다. 사진은 미니소 중국 매장 전경. (미니소 제공) |
[배준희 기자 bae.junhee@mk.co.kr, 반진욱 기자 ban.jinuk@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93호 (2025.01.15~2025.01.2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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