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경기도 성남시 주거지에서 경찰에 붙잡힌 ‘자경단’ 총책 ㄱ(33)씨. 서울경찰청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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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8개월 동안 텔레그램에서 ‘자경단’이라는 범죄집단으로 활동하며 피해자 234명을 대상으로 강간,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제작 등 성범죄를 저지른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74명의 피해자가 발생한 2020년 텔레그램 성착취 엔(n)번방 ‘박사방 사건’의 3배가 넘는 피해 규모다. 텔레그램으로부터 범죄 관련 자료를 회신받아 수사한 첫 사건이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는 23일 ‘자경단’ 총책인 남성 ㄱ(33)씨를 포함해 조직원 14명을 청소년성보호법 위반(강간, 성착취물 제작 등), 성폭력처벌법 위반(불법촬영, 허위영상물 제작 등) 등 혐의로 검거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아는 불법합성물을 올려 성착취하는 텔레그램방에 참여하려는 의도로 주변 인물의 불법합성물을 제작해 ‘자경단’에 넘긴 ㄴ(30세 남성)씨 등 73명도 특정해 40명을 붙잡고 나머지 33명을 추적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날 서울경찰청 설명을 들어보면, 텔레그램 ‘자경단’은 자신을 ‘목사’로 칭한 총책 ㄱ씨가 소셜미디어(SNS)에서 피해자들을 유인하고 협박해 조직원으로 만든 후, 조직원들과 또 다른 범죄를 저지른 ‘피라미드형 사이버 성폭력 범죄집단’이다. ‘자경단’은 목사, 집사, 전도사, 예비 전도사의 계급으로 이루어져 있고 ‘목사’ ㄱ씨는 조직원이 더 많은 피해자를 끌어들일수록 계급을 상승시키는 방식으로 조직을 운영했다. 가해자인 ‘자경단’ 조직원 13명은 중학생 1명, 고등학생 6명, 대학생 3명, 직장인 1명, 무직 2명이다. 가장 어린 가해자는 범행 당시 15살이었다고 한다. 경찰 관계자는 “ㄱ씨가 드라마 ‘수리남’을 보고 목사와 전도사 등 계급을 생각해냈다고 진술했다”고 말했다.
범죄 과정에서 애초 가해자였던 이가 피해자로 전락하는 모습도 나타났다. 가령 딥페이크 불법합성물 제작·유포에 관심을 보인 남성들에게 “지인능욕 텔레그램방에 들어올 생각이 있냐”며 연락처 및 신상을 확보한 후 돌변해 “허위사진을 만들거나 배포하는 건 범죄다. 지인에게 성범죄를 저지르려 한 사실을 공개하고 즉시 고발 조치할 것”이라며 협박을 시작하는 식이었다. 소셜미디어에서 성적 호기심 등을 표현한 여성도 텔레그램으로 유인한 뒤, 신상정보를 확보하고 이를 유포하겠다고 협박했다.
이런 방식으로 자경단 피해자가 된 234명 중 미성년자가 159명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ㄱ씨는 피해자들에게 ‘1시간마다 일상보고, 반성문 작성’을 시키고 이를 어기면 벌을 준다는 명목으로 성착취 행위를 강요했다. 자신의 말을 듣지 않으면 신상정보를 뿌리겠다며 ‘심리적 지배’도 이어갔다고 한다.
ㄱ씨에게 협박당한 피해자들은 계속해서 일상을 보고하거나 성착취물을 제작했다. 그중 13명은 ‘자경단’의 조직원이 되어 다시 가해자가 됐다. 조직원들은 서로를 알 수 없고 오직 ㄱ씨와만 대화할 수 있는 점조직 형태를 띤 것으로 조사됐다.
텔레그램 ‘자경단’ 범죄는 오프라인으로도 이어졌다. ㄱ씨는 여성 피해자들에게 “남성과 성관계를 해야만 지배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하며 전국 각지를 돌며 여성 미성년자 10명을 강간했고 이를 불법촬영했다.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ㄱ씨는 자신이 절대 잡히지 않는다며 수사기관을 우롱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ㄱ씨가 여성 피해자를 협박하는 모습. 서울경찰청 제공 |
경찰은 피해자 신고로 지난 2023년 12월21일 수사에 착수해 전국에서 접수된 사건 60건을 이송받아 392일간 수사를 진행하며 가해자들을 순차적으로 붙잡았다. 가해자 진술과 수사를 토대로 지난 15일 ㄱ씨를 검거했다. ㄱ씨는 지난 17일 구속돼 오는 24일 서울중앙지검에 송치된다.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ㄱ씨는 대학을 졸업해 아버지의 도움으로 평범한 회사에 취직한 중산층의 자녀다. 성적 욕구 충족 외에 뚜렷한 범죄 동기가 없으며 ‘자신의 지시를 얼마나 잘 따르는지 시험해보고 싶어서 조직을 운영했다’고 진술했다”면서 “죄의식이나 피해자에 대한 미안함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어 반사회적 인격 소유자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전날 ㄱ씨의 신상정보공개심의위원회를 여는 등 ㄱ씨 신상을 공개할지를 논의하고 있다.
한편 경찰은 이번 사건을 수사하며 지난해 9월24일 처음으로 텔레그램으로부터 범죄 관련 자료를 회신받았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경찰청이 지난해 10월 텔레그램과 수사협조 체제를 구축해 범죄 관련 정보를 공식 회신받고 있다”면서 “비슷한 피해를 입은 피해자는 자신의 잘못이 아니므로 즉시 수사기관에 신고에 도움받기를 당부드린다”고 말했다.
고나린 기자 m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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