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칙 지적하는 변상일 9단 - 22일 변상일 9단이 커제 9단이 규정을 어기고 탁자 위에 둔 사석을 가리키고 있다. /바둑TV |
변 9단으로선 커제에게 상대 전적 7연패를 끊었지만 찜찜한 승리였다. 커제가 사석(死石·따낸 돌) 관리 위반으로 자멸했기 때문이다. 82수 만에 흑 반칙승. 이날 백돌을 쥔 커제는 사석을 바둑통 뚜껑에 보관하지 않고 그대로 바둑통 옆에 내려놓는 실수를 두 번 저질렀다. 세계 메이저 기전에서 규정 위반 경고를 2번 받고 반칙패한 건 커제가 처음이다.
백돌을 쥔 커제가 경기 초반 우상귀에서 흑돌을 잡아내는 수(18)를 둔 뒤, 이 흑돌을 왼쪽에 있던 바둑통 뚜껑이 아닌 오른쪽 바둑통 옆에 그대로 뒀다. 심판이 커제에게 규정 위반에 따른 경고와 벌점 2집을 알리자 반발한 커제와 위빈 중국 국가대표팀 총감독은 “이런 경우로 경고를 받은 사례가 없어서 받아들이기 힘들다”며 항의했다. 문제가 된 규정은 제4장 벌칙 18조 경고(심판은 선수가 이런 행위를 하면 경고를 하고 상대에게 벌점 2집을 준다)의 6호 ‘사석은 반드시 통 뚜껑에 보관해야 한다’는 것. 지난해 11월 한국기원에서 선수들이 사석 관리를 소홀히 하는 문제를 방지하고자 도입한 조항이다. 심판은 “바뀐 규정을 중국 측에 정확히 알렸고, 규정상 따라야 한다”는 태도를 고수했다. 커제 측이 반발해 34분간 대국이 중단되다 재개되는 소동도 있었다.
속개된 대국에서 커제는 같은 실수를 했다. 경기 재개 50여 분 만에 커제가 빵따냄(상대 돌을 따내는 수)을 두는 수(80)에서 사석을 바둑통 뚜껑에 넣지 않는 규정 위반을 또 저지른 것. 이를 변상일이 발견하고 즉시 심판에게 알렸고, 심판은 경기를 중단했다. 한국기원 경기 규정 제4장 제19조 반칙의 9호 ‘경고가 2회 누적된 경우’에는 경고 없이 반칙패를 선언하게 돼 있다. 커제는 당시 벌점 2집을 받고도 유리한 형국을 이끌어 가고 있었다.
커제 규정 위반은 한국과 중국 간 바둑 계가(計家) 방식 차이 때문이다. 한국 바둑에서는 사석 관리를 통해 상대 돌 수를 확인하며 형세 판단을 하는 게 중요하지만, 중국에서는 이런 관행이 없다. 사석을 고려하지 않고 살아 있는 돌과 집으로만 계가를 한다. 따라서 중국 선수들은 습관적으로 사석을 바둑통 뚜껑에 두지 않는 경우가 많다. 커제도 이러한 규정에 익숙지 않다 보니 실수를 반복했다.
한국기원은 이런 개정 내용을 사전에 중국 측에 명확하게 알렸으며 지난해 열린 삼성화재배에서도 적용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국내 바둑 리그에 외국인 자격으로 참가하는 중국 진위청 8단이 최근 대국에서 이 사석 규칙 위반으로 벌점을 받은 적도 있다. 세계 메이저 기전에서는 자국 기원 규정을 따르도록 하고 있다.
[양승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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