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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식 만찬 [이문영의 당신은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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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유아영

일러스트레이션 유아영


“보츠? 보쓰? 보쯔?”



아무리 따라 해도 발음이 헛도는 문영을 돌아보며 은혜(엥흐자르갈)씨가 고개를 저었다.



“보○라니까.”



막 쪄낸 보츠 또는 보쓰 또는 보쯔를 통째로 삼키다 입천장이 덴 그를 타박하며 츳씃쯧 혀를 찼다. 입바람을 후후 불어 식히던 사강이 “한국 만두랑 뭐가 다르냐”고 물었다.



“채소 안 들어가요. 당면 안 들어가요. 고기만 넣어. 뜨거워요. 조심해.”



은혜씨가 몽골 찐만두 “보○”에 대한 회고담 또는 무용담 또는 고생담을 풀어놨다.



“명절 닥쳐서 하면 못 끝내요. 미리 만들어서 얼려 둬야 돼. 1만개 2만개는 기본.”



“2만개요? 그걸 어떻게 만들어서 어디다 얼려요?”



농담 말라는 문영의 말투에 은혜씨는 별일 아니란 듯 말했다.



“큰 집은 보통 2만개 3만개야. 제일 조금 하는 집도 1만개. 소 한마리에 양 한두마리 넣으면 1만개는 금방 나와. 한국보다 몽골 겨울 훨씬 추워요. 베란다 두면 그냥 얼어. 천연 냉동실.”



“헉, 스케일이….”



“미리 주문해두면 소와 양 잡아서 보내줘요. 그걸 잘라서 고기는 고기대로 뼈는 뼈대로 분리해. 내장도 깨끗이 씻어서 준비하고. 아주 난리야 난리. 몽골 여자들 전쟁 치르는 거예요.”



“그 많은 걸 누가 다 먹어요?”



“온 동네 사람들이 먹지. 몽골 설 밥상 엄청 푸짐해요. 일단 양을 한마리 삶아서 통째로 올려. 둘러앉아서 저마다 먹고 싶은 부위를 잘라 먹어. 고기 먹고 과일 먹고 술도 먹고. 아이들 먹으라고 과자와 사탕도 수북하게 쌓아둬요. 하이라이트는 역시 만두야.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 집 저 집 다니면서 계속 만두 먹어. 나이 많은 어른 순으로 찾아가요. 가서 인사하면 만두 줘. 먹고 그다음 어른한테 가. 그럼 또 만두 줘. 인사하러 갈 때마다 만두 먹어야 돼. 안 가도 난리 나. 새벽부터 저녁까지 다녀도 그 많은 만두가 계속 입에 들어가. 이제 더는 못 먹어 하다가도 다음 집에 가면 또 먹혀. 신기해.”



은혜씨가 김 풀풀 나는 찜기를 비우고 새로 채웠다. 마카로니, 감자, 옥수수를 마요네즈에 버무린 샐러드와 ‘신기한’ 만두만으로 차린 설음식이었다. 몽골의 설상엔 비할 수 없었지만 몽골 설상만큼 뜨거웠다. 울란바토르의 가족들 대신 경기도 군포에서 한국 친구들과 나누는 간소한 만찬(2024년 2월12일)이었다.



“태완아, 게임 그만하고 같이 먹자.”



젓가락으로 만두를 쪼개던 사강이 부엌 너머로 불렀다. “할 만큼 하면 나올 테니 내버려두라”는 은혜씨에게 영아가 ‘옛이야기 한 자락’을 청했다.



“그 얘기 좀 해봐요. 왜 ‘버튼만 누르면 된다’던 광고 있잖아.”



30년 한국살이 은혜씨의 ‘레퍼토리’를 잘 아는 영아가 “표현력 끝내주는” 그에게 노래 한곡 청하듯 주문했다. 말을 가슴에 쌓아두고 사는 사람에겐 들어줄 상대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해장이 됐다. 술잔을 비운 은혜씨가 유창한 한국어로 ‘주문받은 인생사’의 뚜껑을 땄다.



“나는 버려진 사람. 하루아침에 나라가 우리를 버렸어. 그럼 어떡해?”



몽골에서 은혜씨의 아버지는 의대 교수였다. 아들들에겐 “어떻게든 살 수 있다”며 공부를 강요하지 않았지만 딸들에겐 “살아가려면 반드시 대학을 나와야 한다”고 채근했다. 언니는 의대에 진학해 의사가 됐고 공부를 잘했던 은혜씨도 러시아에 유학했다. 1990년대 초 몽골 사회주의가 무너지면서 “나라가 망했”다. 혼란에 빠진 국가는 “뭘 해야 먹고살 수 있는지 알려주지 않았”다. “국가로부터 버림받은 사람들”이 “알아서 살아남으라”는 국가를 버리고 떠났다. 두 아이의 엄마였던 은혜씨는 “애들 굶겨 죽이지 않으려면 한국에 오는 방법밖에 없었”다.



“달랑 버튼만 누르면 된대.”



“무슨 말이에요?”



혀를 데지 않으려고 보, 츠, 쓰, 쯔의 끄트머리를 살살 깨물던 문영이 웅얼거렸다.



“티브이 광고에서 그랬어. 한국 가면 모든 공정이 자동화돼서 어려운 일 없대. 앉아서 버튼만 누르면 월급 많이 준다고. 지금은 거짓말이란 거 알잖아. 그땐 처음이니까 아무도 몰랐지. 최초 모집인원이 200명이었어. 1994년 1차로 배 탄 사람이 50명이었는데 내가 그중 한명이었고.”



인천항 도착 직전 인솔자가 선내 면세점에서 위스키 50병을 사더니 한병씩 나눠줬다.



“갖고 나가래. 주는 줄 알고 좋아했지. 배에서 내리자마자 싹 걷어가는 거야. 그렇게까지 이용할지 몰랐어.”



사강이 큭큭 웃었다.



“술집 양주들이 ‘그렇게’ 들어오는 거였네.”



위스키 운반은 ‘이용’ 중에서 약과였다.



“그 한국 사람 완전 사기꾼이었어. 한국 올 때 우리가 한명당 600달러 줬거든. 그 나쁜 놈이 소개비 50만원씩 받고 우리를 공장에 넘겼어. 관광비자로 들어가면 한달 뒤 정식 비자 연결해준다길래 믿고 왔는데 우리를 팔아치웠어. 한 사람에 100만원씩 벌어먹고 사라진 거야. 몽골 가족들한테 전화해서 울고불고했어. 그놈 몽골 집 찾아가서 마누라라도 찾으라고. 몽골에서 그놈이 와이프라며 데리고 다니던 여자가 있었거든. 우리 가족이 다 미쳐서 그 여자 찾아냈어. 스무살 여자가 애 둘 하고 있더래. 남편 놈 어딨냐고 했더니 여자가 울면서 그러는 거야. 결혼하자면서 첫째에 둘째까지 임신 시켜놓고 없어졌다고. 알고 봤더니 한국에 아내 있고 애도 있더라고. 자기도 우리랑 똑같은 신세라고. 이야기 듣고 우리는 그나마 다행이다 그랬어.”



“다행? 뭐가?”



영아가 의외라는 듯 쳐다보자 은혜씨가 득도의 경지로 말했다.



“우리가 그 남자 애는 안 낳았단 말이야.”



푸하하하하. 폭소가 터졌다. 문영이 만두를 뿜으려다 간신히 참고 물었다.



“50만원에 팔려 간 회사에선 무슨 버튼을 눌렀는데요?”



“버튼은 무슨. 가죽점퍼 만드는 공장이었어. (다시 푸하하하) 진짜 가지가지 했어. 한국말 ‘안녕’도 모르고 왔어. 말 한마디 못해. 아는 사람 한명 없어. 도와주는 사람 한명 없어. 사장님이 발로 차. 사모님은 막 욕해. 정말 죽을 것처럼 힘들었어. 지금 오는 사람들은 완전 천국 오는 거야.”



은혜씨의 말들이 랩처럼 쏟아졌다. 태완(타이왕)이 방에서 나와 만두를 집어 먹었다. 은혜씨가 “어젯밤 두 시간 동안 고기 썰어 준비했다”며 한 접시를 추가로 냈다. “후발주자 많이 먹으라”며 영아가 태완을 독려했다.



“태완이는 어떻게 데려왔어요?”



“몽골에서 엄마가 자꾸 전화해서 빨리 오라는 거야. ‘네 아들이 자기가 버려진 줄 알고 밥을 안 먹는다’면서. 2년 만에 몽골 갔더니 애가 바짝 말라서 피부랑 갈비뼈밖에 없어. 그새 남편은 다른 여자와 살림 차렸어. 내가 보내준 돈도 다 써버렸대. 이혼했지. 나라도 엉망진창. 내 인생도 엉망진창. 애들도 엉망진창. 어떡해? 15살 딸은 엄마한테 맡기고 6살 아들만 데리고 1998년에 다시 한국 왔어. 3년만 죽도록 일하자 했는데 30년이 넘었네. 근데 아들, 그때 그 갈비뼈는 다 어디로 갔어?”



은혜씨의 예고 없는 공격에 맞서 태완이 입에 한가득 만두를 채워 넣고 일어섰다. 게임하러 돌아가는 태완을 보며 은혜씨가 오래전 기억을 떠올렸다.



“한국 처음 왔을 때 말이에요. 아침에 공장 출근하면서 게임기 하고 먹을 거 두고 밖에서 문을 잠갔어. 6살짜리가 나 찾으러 나왔다가 길 잃을 수 있잖아. 쉬는 시간마다 집으로 뛰어갔어. 집 안엔 못 들어갔지. 혼자 두고 나가면 울고 난리 나니까. 반지하 창문으로 별일 없는지만 확인하고 다시 일하러 갔어. 밤에 퇴근해서 집에 오면 아들이 달려와서 막 뽀뽀했어. 사랑해 사랑해 하면서. 그만하라고 해도 안 된대. 두 눈, 목, 귀까지 막 뽀뽀하는 거야. 집에서도 엄마 엄마 하면서 계속 쫓아다녀. 엄마 어디가 어디가 계속 묻고. 어디 안 가, 너 버리고 안 가, 달래도 졸졸 따라다니면서 뽀뽀했어. 엄마가 몽골에다 자기 두고 간 기억이 머릿속에 콱 박혀 있었나 봐요. 내가 또 혼자 어디 갈까 봐 계속 사랑한다고 하고. 내가 버리고 싶어도 못 버리게 만들었어. 덩치 산만한 저 아들이 그런 애기였어.”



“그 애기 대학 졸업식 가고 싶지 않아요?”



영아가 물었다.



“가고 싶지. 가고 싶은데 오지 말래. 엄마 없으니까.”(☞ 3회 ‘어디식 차례’에서 계속)



“이모라고 하지 뭐.”



영아가 제시한 대안을 흘려들으며 은혜씨가 다시 만두를 빚기 시작했다. 손님들이 동시에 외쳤다.



“이제 그만 만들어요. 있는 것도 다 못 먹었는데.”



은혜씨는 계속 흘려들었다.



“갈 때 몇개씩이라도 싸주려고 그러지.”



“배부르다”며 말리던 사강이 갑자기 생각난 듯 목소리를 키웠다.



“태완! 김제 가서 면접 보고 왔다고?”







※ ‘이문영의 당신은 소설’은 2024년 8월9일치 20면 1회(분향소의 형범) 게재 뒤 필자 사정으로 휴재했습니다. 앞으로 4주에 한 차례 연재로 다시 돌아옵니다.















이문영 | 텍스트팀 기자. 책 ‘웅크린 말들’ ‘노랑의 미로’ ‘왼쪽 귀의 세계와 오른쪽 귀의 세계’ ‘루카스’ 등을 썼다. 세기적 사건의 주인공이 되진 못해도 누구든 자신만의 ‘작은 이야기’(小說)의 주인공은 될 수 있다. ‘이야기의 자격’을 인정받은 적 없는 이야기들이 글이 되고, 읽히고, 연결될수록 언어와, 기록과, 서사의 틈들도 조금은 메워질 것이라 믿는다. 부끄러운 것이 많다. moon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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