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죽고, 내일 봐!" 죽어야 사는 노동자 미키 17…봉준호 "여러분 겪게 될 미래"

배우 로버트 패틴슨과 봉준호 감독(오른쪽)이 20일 서울 용산구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영화 '미키17'(감독 봉준호) 내한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뉴스1

때는 2054년, 위험한 외계 행성 개척에 투입되는 익스팬더블(소모품) 청년 미키(로버트 패틴슨). 죽으면 방금 전까지 기억을 업데이트한 복제본으로 재출력되는 그의 목숨은, 화염 방사기 한 자루보다도 하찮게 취급된다. 유일한 친구 티모(스티븐 연)가 17번째 미키에게 건넨 이런 인사처럼. “미키, 잘 죽고 내일 봐!”

" “소위 말하는 근미래 배경이죠. 여기 계신 여러분이 겪게 될 일이란 뜻입니다.” " 봉준호(56) 감독이 미래를 무대로 또 다시 계급 문제를 꺼냈다. 내달 28일 한국에서 전 세계 최초 공개되는 영화 ‘미키 17’ 이야기다. 빈부 격차와 계급문제를 다뤄 비 영어 영화 최초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기생충’ 이후 그가 6년 만에 할리우드에서 만든 신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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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으면 재출력"…근미래 극한 노동계급 SF

20일 오전 서울 용산구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영화 '미키 17' 기자간담회에 봉준호 감독(왼쪽부터)과 주연 배우 로버트 패틴슨이 참석했다. '기생충' 통역가로 유명한 샤론 최(최성재, 오른쪽)가 이날 현장 통역도 맡았다. 뉴스1

20일 서울 용산 CGV에서 열린 ‘미키 17’ 푸티지 상영 및 내한간담회에 주연 배우 로버트 패틴슨(39)과 함께 참석한 봉 감독은 이 영화를 “발 냄새나는 인간적인 SF, 평범하고 힘없고 불쌍한 청년의 성장 영화”라 표현했다. 불과 30년 뒤 “딱 죽기 좋은 현장에 투입돼 죽을 때마다 프린트 출력하듯 ‘출력’되는, 가장 가슴 아픈 극한 직업에 처한 노동자가 주인공”(봉 감독)이란 점에서다.

이 영화로 전날 처음 내한한 패틴슨은 “안녕하세요” 한국말 인사를 건넨 뒤 자신의 캐릭터를 이렇게 소개했다. “17번을 죽고 그제서야 삶을 다르게 살아봐야 하나, 깨닫는 인물이죠.”

패틴슨은 극 중 미키 17과 더불어 출력 오류로 성격이 달라진 또 다른 분신 미키 18까지 1인 2역을 맡았다. ‘더 배트맨’(2022) ‘테넷’(2020) ‘트와일라잇’ 시리즈(2008~2012) 등 블록버스터 전작 속 청춘 스타의 모습보단, 샤프디 형제 감독의 ‘굿타임’(2017), 배우 윌렘 데포와 호흡 맞춘 ‘라이트하우스’(2019) 등 독립예술영화에서 보여준 예측불허한 연기에 가깝다. “처음부터 캐스팅 1순위였다”는 봉 감독 설명처럼, 패틴슨이 “키우던 개를 떠올리며 연기했다”는 어수룩한 미키 17과 광기 어리고 폭발적인 미키 18의 선명한 대립을 소화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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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현장 최고" 패틴슨 "봉 감독 전세계 TOP5 거장"

'미키17'은 위험한 일에 투입되는 소모품(익스펜더블)으로, 죽으면 다시 프린트되는 ‘미키’(로버트 패틴슨 분)가 17번째 죽음의 위기를 겪던 중, 그가 죽은 줄 알고 '미키 18'이 프린트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배우들은 한계에 도전하게 해주는 작품을 사냥하듯 찾아다닌다”고 운을 뗀 패틴슨은 “현재 전 세계에 봉 감독님 레벨의 감독은 네다섯밖에 안 된다. 모든 배우가 함께 일하고 싶어하는 감독”이라며 “‘미키 17’처럼 ‘스타워즈’ 같은 규모의 SF면서 가볍고 재밌는 유머를 잃지 않는 영화는 흔치 않아, 재빨리 손들었다”고 말했다. 또 같은 장면을 여러 번 반복해서 찍지 않고 한두 번 만에 넘어간 작품은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코스모폴리스’, 2012) 이후 처음이라고 밝혔다. “덕분에 샤프하게 표현하고 에너지를 집중시킬 수 있었어요. 현장 편집본을 보여준 것도 좋았죠. 배우들 사이에 ‘이 현장 최고다’란 말이 나왔습니다.”

그가 인상 깊은 봉 감독 전작으로 꼽은 영화는 ‘살인의 추억’(2003). 이에 “논두렁에서 형사가 경운기 타고 등장하는 영화(‘살인의 추억’)를 찍다가 이런 영화(‘미키 17’)를 찍으면 굉장히 갭이 느껴지기도 한다”고 봉 감독은 화답했다. 허나 SF가 그에게 낯선 장르는 아니다. ‘괴물’(2006) ‘설국열차’(2013) ‘옥자’(2017) ‘미키 17’까지 필모그래피 8편 중 절반이 SF 자장 안에 정치적 풍자를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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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크' 러팔로, 위험한 매력의 미래 독재자 됐다

지난해 9월 공개된 영화 '미키 17' 1차 예고편의 한 장면. 마블 히어로 캐릭터 헐크로 유명한 배우 마크 러팔로가 새로운 유형의 독재자를 연기했다. 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미키 17’도 원작인 미국 작가 에드워드 애시튼의 소설 『미키 7』이 있지만, 봉준호표 SF 인장이 선명하다('기생충' 통역가로 이름난 샤론 최(최성재)가 봉 감독을 위해 원작의 한국어 번역 및 촬영 현장 통역을 맡았다. 그는 이날 간담회 현장 통역도 진행했다). “인간 사회와 정치에 대해 심각하게, 유머러스하게 맘껏 풍자할 수 있다는 게 SF의 매력”이란 봉 감독은 “원작은 과학 기술적 설명이 많지만, 영화는 땀 냄새나는 사람 이야기로 채워갔다”고 설명했다.

평소 정의의 투사 역을 주로 맡은 배우 마크 러팔로가 연기한 “새로운 유형의 독재자”가 한 예다. “허술하고 귀여운 면도 있지만, 위험한 귀여움이죠. 모든 독재자가 매력을 갖잖아요. 그 매력 때문에 군중을 사로잡지만, 위험함이 있죠.”(봉 감독)

원작에선 역사가였던 미키도 영화에선 마카롱 가게를 차렸다가 망한 청년 자영업자로 바뀌었다. “‘기생충’ 지하 남자도 카스테라 가게를 하다 망한 사연이 있었다”고 돌아본 봉 감독은 “미키도 그런 사연이 있으면 좀 더 가엾고 공감 가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굳이 마카롱을 설정한 건 실제 그가 다쿠아즈와 함께 가장 즐겨 먹는 간식이라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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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적으로 보이나요? 여러분 겪게 될 근미래"

지난해 9월 공개된 영화 '미키 17' 1차 예고편의 한 장면. 영화에선 같은 인간을 토대로 한 복제인간이 공존하는 '멀티플' 현상이 불법이다. 살아남은 미키 17은 이미 출력된 미키 18과 서로 살아남기 위해 고투를 벌인다. 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괴물’에 이어 크리처도 등장한다. 쥐며느리를 닮은 털북숭이 외계 생명체다. 패틴슨은 봉 감독이 직접 고안한 외계어로 이 외계 생명체와 대화하는 장면을 찍으며 “태어나 가장 카메라 앞에서 나 스스로가 한심해 보여 ‘현타’가 왔다. 새로운 언어를 배운 경험이 재밌었다”고 농담 섞어 말했다.

“힘 없거나 권력, 귄위 없는 인물에 끌린다”는 봉 감독은 “‘듄’ 같은 영화처럼 먼 우주 저편에서 훌쩍 시간을 뛰어넘은 웅장한 SF도 재밌고 훌륭하지만, 우리 작품은 눈앞에 닥쳐있는 인간 냄새 나는 SF다. 영화 속 일들이 SF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여러분이 겪게 되실 것”이라 거듭 말했다.

20일 오전 서울 용산구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봉준호 감독의 신작 영화 '미키 17' 기자간담회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미키 17’은 한국 개봉에 이어 오는 3월 북미 등에 차례로 개봉한다. 당초 지난해 개봉을 예정했다가 네 차례나 개봉 시기를 변경하며 완성도 논란이 일었지만, 내달 13일 개막하는 제75회 베를린영화제(스페셜 갈라 부문) 초청 소식이 알려지며 논란을 잠재웠다. 데드라인·콜라이드 등 미 현지 매체에선 최근 “최종 편집본을 두고 봉 감독과 워너브러더스(투자‧배급사)의 의견 조율에 오래 걸렸다”는 보도도 나왔다. 이에 봉 감독은 “애초 감독 최종 편집권으로 계약했던 작품이고 워너브러더스와 상호 존중 가운데 순탄하게 끝난 상황인데 할리우드 배우 조합 파업 등 외적 요인 때문에 개봉 날짜 변동이 있었다”고 밝혔다.

한편, 올해 베를린영화제에는 ‘미키 17’에 더해 한국작품들이 다수 초청됐다. 구병모 소설 원작, 민규동 감독 연출의 ‘파과’가 스페셜 갈라에, 포럼 부문에 강미자 감독의 ‘봄밤’, 김무영 감독의 다큐멘터리 ‘폭력의 감각’ 등이 초청됐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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