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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장관 만나 웃었다가 경질...외무상 돼 비상시국에 방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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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원 기자의 외교·안보 막전막후 <43회>]
동해 ‘日 초계기 저공비행 사건’ 당시 이와야 방위상
갈등 커진 상황에서 정경두 장관과 악수할 때 웃어
자민당 우파가 경질주장해 3개월만에 교체돼
“양국 복잡한 문제에도 연대할 사안은 연대해야”소신
[조선일보 외교부·민주당 출입 기자·한나라당 취재반장·외교안보팀장·워싱턴-도쿄 특파원·국제부장·논설위원과 TV조선 정치부장으로 정치·외교·안보 분야를 26년간 취재해왔습니다. 주요 사안의 막전막후에서 벌어진 일을 전해드립니다.]

‘일본 외무상 7년만에 현충원 참배, 14년만에 한일 외교부 장관 공동 기자회견.’ 지난 13일 방한한 이와야 다케시(岩屋毅) 일본 외무상 방한이 남긴 기록입니다. 그가 유례 없는 정치적 위기에 처한 한국을 방문하면서 여러 배려를 했음이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지난 13일 오후 5시15분 외교부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가졌을 때 이와야 외무상은 어느 때보다 더 한일 협력을 강조했습니다. 조 장관이 먼저 모두(冒頭) 발언에서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한일 관계를 흔들림 없이 발전시켜 나가기로 했다. 한일 관계를 중시한다는 일본 정부의 일관된 입장을 재확인했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이와야 외무상은 “현재의 전략적 환경하에서 양국 관계 중요성은 변함이 없다”며 “복잡한 국제 과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일한미공조가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국회의 12·14 윤 대통령 탄핵으로 한국 정치가 불안정한 상황에서도 양국의 우호관계가 변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강조한 겁니다.

이와야는 일본 우익 일부로부터 “무정부 상태의 한국에 왜 가느냐”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방한했는데, 조 장관은 “어려울 때 친구가 진정한 친구”라며 감사인사를 했습니다.

조선일보

2019년 6월 1일 아시아안보회의(일명 샹그릴라 대화) 참석을 위해 싱가포르를 방문한 정경두 국방부 장관(왼쪽)과 이와야 다케시 일본 방위상이 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이와야 방위상은 한일관계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한국의 국방장관을 만나고, 웃는 얼굴로 악수를 했다는 이유로 경질론에 휩싸인 뒤 3개월 뒤에 교체됐다./연합뉴스


◇초유의 한일 군사대치 당시 일본 방위상

한일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한 이와야의 방한은 그가 수 년 전 방위상으로 일할 때를 떠 올리게 했습니다. 그는 2018년 12월 ‘일본 초계기의 저공비행 및 한국 해군의 사격용 레이더 조사(照射)’ 사건이 발생했을 때 아베 신조 내각의 방위상이었습니다. 이어서 그는 2019년 6월 열린 한일 국방장관 회담에서 웃는 얼굴로 악수를 했다는 이유로 경질론에 휩싸인 뒤 3개월 뒤에 교체됐습니다.

저는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 처음으로 양국간 군사적 갈등이 고조되고, 이와야가 한일 회담에서 웃었다는 이유로 경질되는 과정을 도쿄에서 지켜봤습니다. 마치 한편의 희비극(喜悲劇)을보는 듯한 느낌이었는데, 이와야는 아베 신조 내각의 방위상이었지만 ‘비둘기파’로 분류됐습니다.

2018년 12월 20일은 한일이 군사적 측면에서 사상 처음으로 대치한 날로 기록돼 있습니다. 한국 해군의 3200t급 구축함인 광개토대왕함이 일본 이시카와(石川)현 노토(能登)반도 인근 해상에서 일본 자위대 초계기를 사격 관제용 레이더로 겨냥했다고 일본 정부가 주장하는 사건이 발생한 겁니다.

당시 일본 방위상이었던 이와야가 12월 21일 기자회견을 열고 “20 일 오후 3시쯤 노토반도 인근 해상에서 한국 해군 구축함이 경계·감시 임무를 하던 일본 자위대 P1 초계기를 사격 관제용 레이더로 겨냥했다”고 발표한 것이 문제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는 “이는 화기(火器·전투시 사용하는 무기를 의미)의 사용에 앞서 실시하는 것으로 당시 예측할 수 없는 사태를 초래할 수 있는 지극히 위험한 행위였다”고 주장했습니다. “본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해 한국 정부에 강하게 항의했으며 재발 방지를 요구했다”고도 했습니다.

방위성외에도 일본 외무성 관료들은 한국 측의 행동이 “있을 수 없는 행동”이라고 비난했습니다. 일본 NHK 방송에 따르면 복수의 외무성 관리들은 “이번 사태는 우호국 사이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그간 한국군과의 사이에서 이런 문제가 일어난 적이 없었던 만큼 한국군의 의도를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도 했습니다.

이에 대해 우리 국방부는 “우리 군은 정상적인 작전 활동 중이었으며 작동 활동 간 레이더를 운용했으나 일본 해상초계기를 추적할 목적으로 운용한 사실은 없다”고 반박했습니다.

해군 관계자는 “대화퇴 어장에서 조업을 하던 다른 선박이 ‘북한어선으로 추정되는 선박이 조난당한 것 같다’는 신고를 한 것으로 보인다”며 “우리 해군은 이 배를 찾기 위해 사격 관제용 레이더를 작동한 것은 사실이지만, 일본 초계기를 겨냥할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했습니다. 요약하면, 북한 조난 어선을 찾기 위해 일반 레이더보다 정밀한 사격 관제용 레이더를 켰는데 이때 우리측을 마치 위협하듯 저공비행한 일본 초계기가 레이더망에 잡혔다는 것입니다. 이때문에 국방부는 일본 초계기가 저공비행으로 위협한 것이 더 문제라고 했습니다.

◇ “아베 총리가 방위상에 초계기 영상 공개 지시”

일본 방위성은 사건 발생 8일 만인 12월 28일 이 사건을 더욱 확대시켰습니다. 동해상 한·일 중간 수역에서 광개토대왕함과 일본 해상자위대 초계기인 P-1 사이의 발생 사건을 찍은 영상을 전격 공개했습니다. 광개토대왕함이 일본 초계기를 향해 무력 사용을 가정한 사격 통제 레이더를 쐈다는 취지였습니다.

그런데, 방위성이 일본 초계기 영상을 공개한 것은 아베 총리의 지시였다는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더욱 커졌습니다. 일본의 주요 언론에 따르면 아베는 2018년 12월 27일 이와야를 총리 관저로 비공식 호출했습니다. 이어서 사건이 발생한 20일 일본 초계기가 공중에서 촬영한 영상을 공개하도록 지시했습니다.

이와야는 한국과의 관계 개선을 중시해 난색을 표명했지만 아베가 밀어붙였다고 합니다. 도쿄신문은 위안부 재단의 해산과 강제징용 판결 등으로 아베가 화가 많이 났다는 자민당 관계자의 발언을 전하며, 이런 상태에서 레이더 문제가 발생하자 불만이 폭발한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마이니치신문은 아베 내각이 이 영상을 공개하지 않을 경우 일본 내 여론이 악화될 수 있다는 점도 감안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했습니다. 국내 여론 대책의 일환이라는 것입니다.

한국군은 일본 정부가 이번 사태에 민감하게 나오는 이유가 광개토대왕함이 일본 영해 가까이에서 기동했기 때문으로 판단했습니다. 광개토대왕함은 당시 북한 선박 구조를 이유로 독도 남동쪽 대화퇴 어장 인근까지 수 백㎞를 항해했습니다. 당시 우리 정부 관계자들은 “조난당한 북측 선박이 정확히 어떤 종류인지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우리군 함정도 당연히 현장에 갔어야 했다”고 했습니다.

◇ 한국과의 화해 주장한 이와야

이와야는 당시 방위상이었지만 이 사건에 대해 한일간의 화해를 주장했습니다. 그는 2019년 5월 한국과의 관계를 원래대로 되돌리고 싶다는 발언을 해서 주목받았습니다. “한일 사이에 여러 가지 일이 일어났지만, 한국의 국방장관과도 만나고 싶다”고도 했습니다.

그의 발언을 계기로 2019년 6월 1일 제18차 아시아안보회의(일명 샹그릴라 대화)를 계기로 한일 국방장관 회담이 열렸습니다. 이때 이와야는 한국의 정경두 장관과 웃는 얼굴로 악수를 했습니다. 이 사진은 다음날 한일 양국의 신문에 모두 크게 실렸습니다.

그러자 자민당의 우익 성향 의원들이 발끈했습니다. 6월 5일 열린 자민당 국방부회(국방위원회) 등 합동회의에선 동해상에서 한일 대치 사안에 대해 진전이 없는 상태에서 이와야가 한일 국방장관 회담을 하고, 웃는 얼굴로 악수한 것을 문제삼았습니다. 사실상 교체를 요구한 겁니다.

이에 대해 이와야는 언론 인터뷰에서 “문제를 해결하자고 만난 자리에서 엄한 표정을 지어야 하느냐. 비록 힘든 이야기를 해야 하는 자리지만 사람과 사람이 만날 때는 기분 좋게 만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반박했습니다.

조선일보

방한한 이와야 다케시(맨 오른쪽) 일본 외무상이 13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참배하고 있다. /조인원 기자


◇ 문 대통령 8.15 연설도 긍정적 평가

2019년 8월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일본이 대화·협력의 길로 나오면 기꺼이 손을 잡겠다”는 광복절 연설이 나왔을 때도 그는 각료중에서는 유일하게 유연한 대응을 주장했습니다.

당시 문 대통령 연설에 대해 일본내의 분위기는 좋지 않았습니다. 요미우리신문은 ‘관계 회복의 구체적인 대책이 보이지 않는다’는 제목의 사설에서 “문 대통령이 일·한 관계 회복을 위한 구체적인 행동이 없으면 일본의 불신을 씻을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이 사설은 “문 대통령의 경축사 중에서 관계 악화의 원인이 일본에 있는 것 같은 언사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비판했습니다. 고노 다로(河野太郞) 외무상은 “문재인 대통령은 국제법 위반 상황을 시정하는 리더십을 발휘하길 바란다”고 반박했습니다. 문 대통령의 대일(對日) 유화 메시지에도 징용 피해자 문제를 한국 정부가 국내적으로 먼저 처리해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재차 강조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와야는 문 대통령의 경축사에 대해서 “이전의 발언과 비교하면 매우 온건하다”고 긍정적인 입장을 밝혔습니다. 그는 “북한의 미사일 문제를 비롯해 일·한과 일·미·한의 방위 협력이 중요한 시기에 접어들고 있다. 연대할 사안에 대해서는 확실히 연대하겠다”며 소신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한일 갈등이 최고조에 이른 상황에서 양국간 화해를 주장해 온 그는 2019년 9월 초 경질이 확정됐습니다. 이와야는 9월 11일 교체되기 하루 전 퇴임사에서 다시 한번 한일 안보 협력 강화를 강조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후임자인 고노 다로가 한일 양국간 협력을 중시하는 쪽으로 노력해 달라는 뜻을 밝혔습니다.

◇7년간 낭인 생활하며 뒤늦게 입각...이시바 내각 외무상에 발탁

이와야는 옛부터 한국과 교류가 많은 큐슈 지열 출신으로 자민당의 주류 의원들과는 다른 경로를 걸어왔는데, 이같은 배경이 어떠한 일이 있어도 한일 협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게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오이타(大分)현 벳푸시에서 1957년에 태어났습니다. 의사이자 오이타현 의회 의원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와세다대 정치경제학부를 졸업하고 20대 후반에 정계에 뛰어들었습니다.

1987년 오이타현의원에 이어 1990년 중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됐습니다. 이어서 자민당에 입당했으나, 정계 개편 과정에서 신당 사키가케로 이적하며 낙선과 7년간의 야인생활을 겪었습니다. 2000년 자민당 소속으로 중의원에 복귀한 그는 2006년 외무부대신을 지냈습니다. 이어서 2018년 10월 아베 신조 내각에서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가 이끄는 아소파 몫으로 방위대신으로 임명되었습니다. 뒤늦게 처음 입각한 겁니다.

이와야는 지난해 9월 이시바 시게루 내각이 출범하면서 외무상으로 발탁됐습니다. 이시바는 한국을 비롯한 주변 국가들과의 관계를 중시하는데, 2018~2019년 한일 갈등 확산을 막으려고 애쓴 이와야를 눈여겨보다가 그에게 외무상의 중책을 맡긴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윤 대통령이 내란 혐의로 체포된 한국의 정치 상황은 앞으로 크게 요동칠 수 있는데, 이럴 때 이와야 같은 지한파 정치인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하원 외교안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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