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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배송, 노동자를 말려 죽인다···우울증도 일반 노동자의 ‘3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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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컬리 등 ‘새벽배송’ 1021명 실태조사
‘아파도 일해’ 94%···우울·자살사고 2~3배
“혁신? 누군가의 몸이 대가를 치르고 있다”
경향신문

서울 시내 한 쿠팡 물류센터의 모습. 권도현 기자


“(새벽배송 일을 하고 오면) 자야 하는데 애들은 움직이고, 뭐 하고 그러니까 잠을 못 자고, 화가 나고…. 그러니 갈등도 많고 이혼 얘기도 들리고 그래요. 이런 직업은 없어져야 해요.”(새벽배송 8년차 기사 A씨)

쿠팡·마켓컬리 등 새벽배송 노동자의 우울증과 자살 생각 빈도가 다른 노동자보다 3배 가까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알고리즘의 ‘보이지 않는 통제’에 과로로 내몰리며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받고, 사회적 고립에도 시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정부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이들의 노동권·건강권 보호에 뒷짐을 지고 있다.

이승윤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와 김승섭 서울대 환경보건학과 교수 등은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토론회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의 ‘새벽배송 노동자 1021명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새벽배송 노동자를 대상으로 대규모 실태조사가 이뤄진 건 처음이다. 연구진은 지난해 10월11일부터 18일까지 전국 새벽배송 노동자 1021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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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새벽배송 플랫폼 노동 국회토론회: 1021명 노동자의 건강권과 노동·사회권 실태조사’가 열리고 있다. 조해람 기자


응답자의 평균 연령은 36세로 남성이 84.6%, 여성이 15.4%였다. 주된 이용 플랫폼은 ‘쿠팡’이 69.3%로 가장 많았고 ‘마켓컬리’ 23.0%, ‘SSG’ 5.8%, ‘오아시스마켓’ 1.9% 등 순이었다. 응답자는 월 소득의 74.4%를 새벽배송에 의존했고 절반 이상은 소득 전부를 새벽배송으로 벌었다.

응답자 83.4%가 오후 9시~오전 1시 사이에 일을 시작했다. 81.2%는 오전 5시~8시에 일을 끝냈다. 대부분 주 5일 이상 일했는데 ‘주 6일 일한다’는 응답도 31.4%에 달했다. 하루 평균 배송량은 77건으로, 200건 이상을 배송했다는 응답도 7.0%로 나타났다.

조사 결과 새벽배송 노동자들은 과로로 인해 건강권·휴식권을 심각하게 침해당하고 있었다. 응답자 57.7%가 최근 한 달 동안 건강 이상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하지만 이들 중 93.5%가 ‘아파도 일을 했다’고 했다. 65.0%는 ‘휴식을 할 수 없다’고 했고 85.4%가 ‘화장실 이용이 용이하지 않다’고 했다. 쉬지 못한 이유로는 ‘물량(38.8%)’ ‘시간 압박(27.7%)’ ‘쉴 장소가 없음(24.9%)’ ‘소득 감소(8.0%)’ 등이 꼽혔다.

새벽배송은 특히 수면 패턴에 큰 악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 34.8%가 ‘최근 한 달 동안 잠들기가 어려웠다’고 했다. 이는 2023년 근로환경조사 참여 일반 노동자 평균(12.4%)보다 3.3배, 야간노동자 평균(16.3%)보다 2.7배 높다. ‘최근 한 달 동안 자면서 자주 깼다’는 응답도 41.8%로 일반 노동자(14.1%)와 야간노동자(17.9%)보다 높았고, ‘자고 일어나도 지치고 피곤하다’는 응답은 65.0%로 일반 노동자(18.4%)와 야간 노동자(28.3%)를 훨씬 웃돌았다.

수면 부족과 사회적 관계 단절은 정신건강 악화로 이어졌다. 응답자 47.4%가 ‘내 주변에 사람이 별로 없다’고 했다. 우울증상을 겪는 비율은 31.9%로 일반 노동자(10.8%)와 야간노동자(12.5%)보다 2~3배 높았다.

‘지난 1년 동안 자살을 생각한 적 있다’는 응답도 13.8%로 2022~2023년 국민건강영양조사상 노동자 평균(3.9%)보다 2.4배 많았다. ‘자살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운 적 있다(5.3%)’와 ‘자살을 시도한 적 있다(5.3%)’는 응답도 노동자 평균(각각 0.7%, 0.5%)보다 4~6배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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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5월28일 쓰러져 숨진 쿠팡 택배기사 정슬기씨의 아버지 정금석씨가 같은해 7월3일 서울 서대문구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대회의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고인을 추모하는 묵념을 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이들이 과로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건 알고리즘 등을 통한 플랫폼의 ‘보이지 않는 통제’ 때문이었다. 응답자 83.8%는 태블릿·앱 등으로부터 ‘업무 속도 관련 영향을 받는다’고 답했다. 79.9%는 ‘배달 경로와 순서에 영향을 받는다’고 했다. 75.4%는 ‘최소한의 성과나 점수·별점을 유지하지 않으면 일감이 앱에서 자동 취소되거나, 일을 잃거나 일이 중지될 수 있다’고 했다.

이는 형식상 ‘개인사업자’인 새벽배송 기사들이 실제로는 업무 지휘와 통제를 받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교수는 “작업과 일 수행에 있어 ‘실질적’ 자율성은 낮지만, 노동자 개인이 (차량 구입 등) 스스로 부담하는 비용은 높다”며 “통제와 지휘는 받지만 고용주가 책임져야 할 것은 벗어나고 있는 허구적 자율성”이라고 했다.

하지만 최근 고용노동부는 쿠팡에 대한 근로감독을 벌인 뒤 새벽배송 기사들이 ‘근로자가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노동부는 ‘기사들이 배송업무에 필요한 화물차량을 소유하며 직접 관리하고, 업무시간을 본인 재량으로 선택할 수 있다’고 했다. 배송기사들이 실질적인 지휘·통제를 받으며 휴식조차 하지 못하는 상황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 ‘쿠팡 배송기사 불법파견’ 없었다는 노동부...“면죄부 줬다” 비판도
https://www.khan.co.kr/article/202501141702001


김 교수는 “한국 사회에 새벽배송 노동이 상식이 돼 가는 상황이, 가장 열악한 사람들을 착취하는 것이 만연해지는 게 두렵다”며 “정부는 그런 것들을 ‘혁신’이라며 서포트하고, 그런 과정에서 누군가의 몸이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했다.

조해람 기자 lenn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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