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지방법원. |
누명을 벗기까지 43년의 세월이 걸렸다. 1980년대 초 일본 여행을 다녀온 뒤 간첩죄로 처벌받은 제주도민에게 무죄가 선고됐다.
제주지방법원 제1형사부(재판장 오창훈)는 14일 고 김두홍씨의 국가보안법(찬양·고무) 등 혐의에 대한 재심 선고 공판에서 원심을 파기하고, 김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청구 대리인으로 참석한 김씨의 아들 병현(65)씨는 무죄 선고가 내려지자 눈시울을 붉혔다. 김씨는 억울함을 풀지 못한 채 2004년 작고했다. 김씨의 간첩조작 사건은 제주도민들이 갖는 트라우마를 보여준다. 1960~1980년대 제주에서는 친척이 사는 일본 여행을 다녀왔다는 이유로 간첩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들의 주된 혐의는 일본에서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소속의 친척이나 지인을 만나 금품을 받거나 지령을 받았다는 것이 대부분이다.
일본 오사카 등지에는 일제 강점기 때 생계를 위해 건너간 뒤 눌러앉거나 제주4·3사건 시기 죽음을 피해 밀항한 이들이 많이 거주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이들 가운데는 상당수가 활동을 하든 하지 않든 조총련에 적을 뒀다. 제주로 다시 돌아올 수 없었던 이들은 제주에 거주하는 가까운 친인척들에게 집안의 벌초나 제사를 맡기기도 했다.
김씨도 그런 경우다. 일본에 거주하는 친척의 대소사를 맡아 하던 김씨는 1980년 4월 그 친척의 초청으로 일본 오사카를 방문했다. 김씨는 그곳에서 조총련 소속의 또 다른 친척을 만났다는 이유로 1982년 7월20일 영장 없이 옛 제주경찰서에 불법 연행돼 구금된 상태에서 조사를 받았다. 한 지인이 경찰에 김씨가 일본에서 만난 친척 가운데 한 명이 조총련 소속이라고 신고했기 때문이다.
경찰은 김씨를 연행한 뒤 잠을 자지 못하도록 하는 등 보름 남짓 가혹 행위를 하며 자백을 강요했다. 가족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심한 고문을 받았고 북한을 찬양한 간첩으로 몰렸다.
결국 김씨는 국가보안법과 반공법 위반으로 기소됐다. 김씨는 법정에서 고문으로 허위 자백했다며 피해 사실을 호소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1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3년, 항소심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한국전쟁 당시 참전용사로 머리를 다치기도 한 김씨는 세상을 떠난 뒤인 2007년 6·25 참전 국가유공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앞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진화위)는 지난 2023년 12월 김씨의 인권침해사건에 대한 진실규명 결정과 함께 재심을 권고했다. 진화위 조사 결과 김씨에 대한 영장이 1982년 8월5일 발부됐으나, 실제로는 7월20일 불법체포돼 구금과 고문 등의 인권침해가 있었다고 결정했다.
재판부는 이날 “불법 구금과 고문 등 인권침해로 강요된 자백은 증거로서 능력이 없고, 허위 진술 강요는 재판부의 오판을 야기한다. 고문 등 불법행위에 따른 피고인의 허위 자백 말고는 공소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가 없다”고 무죄 선고 이유를 밝혔다. 재판이 끝난 뒤 병현씨는 “늦었지만 아버님이 간첩 누명을 벗을 수 있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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