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조선디자인랩·Midjourney |
그것 때문에 딴소리를 못 쓰겠다. 역사적 대사건이 생겼을 때 칼럼은 더 안 써진다. 다른 걸 쓰려 해도 그것만 떠오르는 탓이다. 사람들 관심이 그것밖에 없을 땐 딴소리 써봐야 읽히지도 않는다. 맙소사. 지금 나는 계엄을 계속 ‘그것’이라 쓰고 있다. 계엄이 무슨 볼드모트도 아니고 말이다.
어쨌든 딴소리를 쓰기로 했다. 계엄만큼 싫어하는 단어 이야기다. ‘썸’이다. 2010년대 중반부터 사람들이 “썸탄다”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연인은 아니지만 단순한 호감은 넘어서는 뭔가(some)가 있다는 소리다. 대학 시절 목 놓아 불렀던 피노키오의 ‘사랑과 우정 사이’도 요즘 발매됐다면 그냥 ‘썸’이라는 제목이었을 것이다.
썸을 처음 들었을 때 생각했다. 요즘 친구들은 책임감이 없어.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닌 거지. 내 젊은 시절에는 길을 걷다가도 “어이 어여쁜 아가씨 다방에서 커피나”. 아니다. 이건 아버지 젊은 시절 이야기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자신을 더 옛날 사람으로 착각하는 버릇이 생긴다. 지금이 1979년도 아니고 무슨 다방인가.
나는 썸 앞에 이미 굴복했다. 어머니도 “썸타는 사람 없냐?” 묻는 시대다. ‘썸이라는 단어는 관계의 책임감을 거부하며 간만 보려는 시대의 산물’ 따위의 문장은 쓰지 않겠다. 한국만의 유행어도 아니다. 요즘 미국은 시추에이션십(situationship)이라는 단어가 유행이다. 릴레이션십을 변용한 이 단어의 의미는 결국 썸이다. 뭐든 한국이 먼저인 시대가 왔다.
뭔가를 책임진다는 것의 의미는 점점 무거워진다. 요즘은 연애도 결혼도 조건이 너무 많다. 상처받지 않으려면 자기방어가 필요하다. 썸은 편안하다.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못해도 좌절할 필요 없다. 그냥 ‘썸타다 엎어졌어’ 하면 그만이다. 그래서 그러나. 정치인들도 요즘은 썸만 탄다. 그러다 썸 잘못 타면 냅다 엎어버리곤 하는데, 아니다. 이건 계엄 이야기가 아니다. 아니다. 혹시 나는 지금 계엄 이야기인 듯 아닌 듯 편집부, 독자와 썸을 타고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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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훈 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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