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윤석열과 12·12 전두환 심판의 날’ 참가자들은 12일 경남 합천 일해공원 이름돌을 ‘내란수괴 전두환 윤석열 국민은 결코 용서하지 않는다’라고 적은 천으로 덮고, 밀가루와 달걀을 던졌다. 최상원 기자 |
“저런 좋은 집에서 개××가 나와부렀네.”
경남 합천군 율곡면 내천리 전두환 생가에 도착한 오월어머니회 회원들 입에서 탄식이 쏟아져 나왔다. “워메! 생때같은 내 새끼 내 남편을 군홧발로 죽인 놈 집을 이렇게 잘 꾸며놨구나.”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가족을 잃은 어머니들이 털썩 주저앉았다.
‘12·3 윤석열과 12·12 전두환 심판의 날’ 행사가 12일 전두환의 고향 경남 합천에서 열렸다. ‘생명의숲 되찾기 합천군민운동본부’ 등 합천지역 시민단체들은 물론 5·18기념재단, 5·18부상자회, 옛 전남도청 원형복원지킴이 어머니회, 박정희 우상화사업 반대 범시민운동본부 등 전국 곳곳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참가했다. 참가자들은 전두환 생가, 전두환 아호를 이름으로 붙인 일해공원, 1980년 9월5일 전두환이 심은 나무와 표지석이 있는 합천군청 등을 둘러봤다.
경남 합천 전두환 생가 내부 모습. 전두환을 찬양·미화하는 사진들이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최상원 기자 |
전두환 생가는 1988년 11월11일 영남대·경북대·계명대 학생 6명이 불태운 것을 합천군이 복원한 것이다. 생가 안내판에는 ‘1979년 10월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이 발생하자 합동수사본부장을 맡게 됐는데, 그 수사 과정에서 12·12 사태가 빚어졌다’ ‘40년 헌정사에 임기를 마치고 스스로 물러난 최초의 대통령이 됐다’라며 전두환을 미화하는 글이 적혀 있었다.
전두환·이순자 부부 처벌을 촉구하며 전두환 생가를 불태운 혐의로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받았던 남태우(58)씨는 “전두환은 1979년 12월12일 군사반란을 일으키고, 1980년 광주시민들을 학살했으며, 1987년 시민항쟁으로 쫓겨났다. 이 사실을 완전히 숨기고 찬양·미화하는 전두환 생가는 한국판 야스쿠니신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해공원을 방문한 참가자들은 전두환 친필을 새긴 공원 이름돌을 ‘내란수괴 전두환 윤석열 국민은 결코 용서하지 않는다’라고 적은 천으로 덮고, 밀가루와 달걀을 던졌다.
합천군은 합천읍 황강 근처에 있던 ‘새천년 생명의 숲 공원’ 이름을 2007년 1월19일 합천군 출신인 전두환의 아호를 따서 ‘일해공원’으로 바꿨다. 이름돌 뒷면에는 ‘이 공원은 대한민국 제12대 전두환 대통령이 출생하신 자랑스런 고장임을 후세에 영원히 기념하고자 대통령의 아호를 따서 일해공원으로 명명하여 이 표지석을 세웁니다’라는 글이 들어갔다.
한강 작가의 소설 ‘소년이 온다’ 주인공인 고 문재학군의 어머니 김길자(84)씨는 “전두환 호를 공원 이름으로 정하다니, 생각이 없어도 어찌 이리 없을 수가 있소”라며 “합천군수가 일해공원 이름돌을 안 뽑으면 내가 포클레인 가져와서 뽑을라요”라고 말했다.
경남 합천군수 사무실 앞에서 가로막힌 ‘12·3 윤석열과 12·12 전두환 심판의 날’ 참가자들이 바닥에 앉아서 항의하고 있다. 최상원 기자 |
참가자들은 마지막 일정으로 합천군수를 만나러 합천군청을 방문했으나, 김윤철 군수는 자리를 비워 이들을 만나지 않았다. 참가자들은 군수 면담을 요구하며 군수실 앞에서 농성하다가, 열흘 안에 면담하겠다는 약속을 받고 저녁 7시께 해산했다. 또 합천군청 정원에 있던 전두환 기념식수의 기념비를 뽑아냈다.
이명자 옛 전남도청 원형복원지킴이 어머니회 회원은 앞길을 막는 합천군 직원들에게 “니들이 5·18을 모른다지만, 지금 니들이 이러면 니들도 전두환이 되고 윤석열이 되는 것이여”라며 꾸짖었다. 변대근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경상·강원지부 사무국장은 “오늘 합천에 오던 도중 윤석열의 담화를 들었다. 오늘 물러나겠다는 발표를 하려는 줄 알았다. 그런데 반성은커녕 국민을 상대로 끝까지 싸우겠다고 하더라”라며 “윤석열은 정신병자였다. 정신병자에게 우리나라를 맡겨뒀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고동의 ‘생명의숲 되찾기 합천군민운동본부’ 간사는 “오늘 우리 모습을 보고 내란 사범은 어떻게 단죄받는지 윤석열은 똑똑히 기억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12·3 윤석열과 12·12 전두환 심판의 날’ 참가자들은 12일 합천군청 정원에 있는 전두환 기념식수의 기념비(왼쪽)를 뽑아냈다. 오른쪽 사진은 기념비를 뽑아낸 이후 모습. 최상원 기자 |
1979년 10월26일 박정희가 총에 맞아 죽었을 당시 국군보안사령관이었던 전두환은 합동수사본부장을 맡았고, 같은 해 12월12일 군사 반란을 일으켜 정권을 장악했다. 전두환은 1980년 5월17일 전국으로 비상계엄령을 확대하고, 광주시민들의 민주화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했다. 이어 8월27일 대통령에 취임했다. 합천군민운동본부는 지난달 15일 ‘전두환 기념사업·기념물 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국민동의청원서를 국회에 냈다. 30일 이내에 5만명 이상 동의를 받아야 국회에 청원이 접수되는데, 동의 수가 12일 이미 10만명에 이르렀다.
최상원 기자 cs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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